최근 법원에서 두 가지 낭보가 전해졌다. 하나는 제조업체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도급과 파견 논란을 정리한 대법원의 판결이다.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실질 사용주가 원청회사인 현대자동차라고 못 박았다. 반면 하청업체는 인력파견업체라고 규정했다. ‘근로자 파견’에 해당해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가 정규직으로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외국인 투자기업의 ‘묻지마’ 정리해고 관행에 제동을 건 수원지법의 판결이다. 수원지법은 외국인 투자기업 (주)파카한일유압의 정리해고(32명)에 대해 정당성이 없다고 봤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판례 모두 상식적인 판단이다. 불법파견과 정리해고가 노사갈등의 핵심 요인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법원이 분쟁의 싹을 제거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대법원의 판례는 당사자인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사내하청을 활용해 온 제조업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다. 대법원 판례가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반면 수원지법의 판례는 최하급심이다. 2심 재판과정이 남아있어 사회적 주목을 덜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만큼 그 의미가 적지 않다.

파카한일유압은 지난해 생산직 노동자 32명을 해고했다. 회사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적자가 발생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라는 정리해고의 요건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적자’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는 노·사의 의견이 엇갈렸다. 노조는 회사측이 물량과 기술을 다른 계열사로 빼돌려 경영사정이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회사측이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감세와 지원 혜택을 받아내기 위해 외국인 전용공단에 새 공장을 만들어 물량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실제 경기도 시흥 시화산업단지 소재 파카한일유압에서 생산되던 제품과 동일한 제품이 장안외국인산업단지 내 (주)파카코리아에서 생산됐다. 법원은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실질적인 본사인 미국의 파카하나핀코퍼레이션이 두 회사를 지배하고 있고, 두 회사에서 동일한 제품을 제조·판매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지자체의 지원 혜택을 받으려 물량을 빼돌리고, 정규직을 해고해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외투기업의 얌체 행각에 쐐기를 박았다.

98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외국인 투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할 것 없이 외국인 투자유치에 목을 맬 정도였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규모는 지난 99년 155억3천달러에서 2005년 115억6천달러로 줄었다. 반면 외국인 투자에 대한 감면 세액규모는 같은 기간 455억에서 5천503억원으로 열 배 이상 늘었다. 외국인 투자기업의 고용규모는 지난 2006년 25만3천명에서 2008년 31만8천명으로 최근 3년간 10% 이상 늘었다. 이는 단위 기업당 순 고용규모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기업 숫자가 늘어난 탓이다. 외국인 투자기업의 배당성향은 35.6%로 국내 기업(17.8%)의 두배에 달한다.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연구개발비는 0.84%로 국내 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외형상 외국인 투자기업이 늘고, 고용규모도 확대된 것으로 보이지만 되레 국부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외국인 투자기업의 인수합병을 둘러싼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외국인 투자기업은 기업 사냥에 성공하더라도 기업 발전을 위한 장기성 투자는 하지 않는다. 반면 단기적 이득을 빼내는데 집중하고, 물량과 기술을 본사나 관계사로 빼돌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기업의 단물을 다 빼먹은 후 매각하더라도 사업부문별로 분리매각하거나 폐업도 불사한다.
이렇듯 외국기업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수원지법의 판례는 사회적 경종을 울린 것이다. 파카한일유압은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상급심에서도 이번 판결이 유지될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노동계는 외국인 투자기업의 투기적 행태에 대한 감시와 견제, 국제적 연대운동을 더욱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외국인 투자기업의 얌체행각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적 개선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독일에는 ‘폭스바겐법’, 미국에는 ‘엑슨-플로리오법’이라는 규제장치가 있다. 외국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위기에 몰린 자국 기업이나 산업을 보호하는 법이다. 우리의 경우 지난 98년 외국인투자촉진법이라는 개별법을 통해 외국자본의 유출입을 규제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일부 업종만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 있을뿐 사실상 제한이 없다. 때문에 국부유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국회에선 ‘한국판 엑슨-플로리오법’을 제정하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또 외국인투자촉진법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변경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국회가 책임있게 논의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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