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식을 확인한 대법원의 판결

이 사건 원고들은 2005년 2월 현대자동차 주식회사의 사내하청업체에서 해고됐고, 지방노동위원회에 현대자동차 주식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원고들의 구제신청이 사용자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했다. 그리고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노동위원회의 이러한 결정이 타당하다는 이유로 원고들이 제기한 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주식회사가 사내하청업체로부터 원고들을 비롯한 근로자를 파견 받아 사용한 것이고, 따라서 사용한 지 2년이 경과한 근로자들은 직접 고용관계가 성립해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고 해야 하므로 현대자동차가 원고들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본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는 ‘근로자파견’이라 함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민법 제664조는 “도급은 당사자 일방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사내하청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현대자동차의 생산공장에서, 현대자동차의 생산설비를 이용하여, 현대자동차가 정한 작업시간․작업속도․작업방식에 따라 현대자동차 생산업무의 일부를 수행한다. 현대자동차 주식회사와 그 사내하청업체 그리고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이러한 관계가 위 법규정 중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 ‘도급’에 해당하는지는 대법관이 아니더라도 위 법규정을 한 번만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위 3자간의 관계가 도급이 아니라 파견이라는 세인들의 상식을 확인한 것이고, 불법파견의 경우에도 직접고용간주 규정이 적용된다는 기존의 판례를 적용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법리적인 면에서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판결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인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한 자동차업계를 비롯해 수많은 제조업체에서 너무나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온 생산방식이어서 그 파급력을 가늠할 수 없기에 대법원이 과연 이를 ‘불법’이라 확인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깨주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판결이다.

2. 어느 사용자보다도 강력한 사용자, 그러나 사용자라 부를 수 없었던 사용자

현대자동차 주식회사는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시간, 근로방식, 휴게시간, 임금액 등 모든 근로조건을 결정했다. 그리고 필요한 인원을 정해 사내하청업체를 통해 고용했고, 해고해야 할 근로자가 있으면 그가 속한 하청업체로 하여금 해고하게 하거나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폐업시키는 방법으로 해당 근로자들을 해고하곤 했다.
따라서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려면 현대자동차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쟁의행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그러한 행위는 불법행위이고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현대자동차 주식회사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현대자동차에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수많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그리고 이들의 투쟁을 지원한 수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로 이러한 이유로 형사처벌됐다. 그리고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를 사용자라 했다는 이유로 현대자동차에서 쫓겨났고 끝내는 목숨마저 건 노동자도 있었다.

필자가 전국금속노동조합 법률원 울산사무소 변호사로 근무하던 2006년 무렵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형사재판을 받고 처벌됐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은 현대자동차 주식회사가 결정하고 있고, 또 2004년에는 노동부가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업체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검찰에 고발조치까지 한 상태이므로(이 노동부의 고발에 대해 검찰은 2년을 끌다가 결국 2006년 무혐의 처분을 했다)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쟁의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쟁의행위를 통해 현대자동차에 미친 손실은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을 통해 수 년 간 이들에게 착취한 노동력의 대가에 비하면 극히 미미하다. 이들의 쟁의행위는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이라는 구조적이고 거대한 불법에 저항한 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변호인이었던 필자가 되풀이 한 변론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예외 없이 처벌됐다. 그리고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현대자동차가 이들의 파업으로 (이들의 사용자인)하청업체의 업무가 아니라 (이들과 아무런 근로계약관계도 없는)현대자동차 주식회사 자신의 업무가 방해를 받았다며 업무방해죄로 고소하면 검찰과 법원은 현대자동차가 고소한 그대로 처벌했다는 것이다. 변호인으로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법률가로서 회의가 들기도 했다.

이렇듯 현대자동차 주식회사는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사용자로서 모든 권한을 행사했고 심지어는 이들을 형사처벌할 때도 이들의 사용자 행세를 하고 또 그렇게 대접을 받았으면서도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전혀 부담하지 않은 것이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고, 몰염치도 이런 몰염치가 없다.

3. 판결에 대한 소회

이번 판결이 선고된 후 당사자인 현대자동차 주식회사뿐만 아니라 같은 생산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제조업체들도 향후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듯하다. 이들은, 이번 판결은 컨베이어벨트에서 정규직 근로자들과 혼재돼 근무하는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만 해당된다거나 또는 자신들의 경우는 이 사건 판결의 사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산과정이 이루어지므로 ‘진정도급’이라며 버틴다. 아니면 국가기관을 이용해 아예 제조업의 직접 생산업무에도 파견을 허용하도록 법률 개정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은 이번 판결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으나 이는 쉽지만은 않은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일 것이다.

이번 판결은 사용자를 사용자라 주장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당한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 그리고 끝내 자신의 목숨을 건 노동자들의 투쟁과 희생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번 판결이 늦게나마 그들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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