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KBS파업은 중단됐다. 사측, 즉 한국방송공사와의 노사합의에 따라 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달 30일부터 파업을 중단했다. 노사는 사측이 공정방송위원회 설치 등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적극 노력하기로 합의하고 조합원들은 업무에 복귀했다. KBS본부는 수신료 현실화를 지지하고 사회적 합의의 실현을 위해 노사가 함께 노력하기로 하고 파업을 잠정 중단했다. ‘시민과 함께 하는 KBS개념탑재의 밤’으로, 연일 계속된 KBS 파업집회로 뜨거웠던 7월은 이렇게 끝났다.

2. KBS파업은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것이었다. 공정방송위원회 설치 등 방송 노동자 근로의 특수성에 따른 요구까지 포함해 조합원을 위해, 조합활동을 위해 노동조합은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언론노조 KBS본부가 설립된 뒤부터 사측은 이 ‘새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조법에 의해 설립 금지된 복수노조에 해당한다며 단체교섭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은 사측을 상대로 단체교섭응낙가처분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신청했다. 법원은 지난 3월10일 노동조합의 신청을 인용해 사측에 단체교섭에 응하라고 결정했다. 다음날 KBS본부는 출범식을 개최하는 등 승리를 자축했다. 그 직후부터 사측은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사측은 가처분결정에 관해 이의신청을 했다. 4월14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본래 가처분결정을 그대로 인가했다. 다시 사측은 이 가처분결정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에 항고했다. 노사 간 단체교섭은 공정방송위원회 설치 등을 포함해 80여개 미합의사항을 남겨둔 채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절차로 넘겨졌다. 사측은 더 이상 노조와 교섭을 통한 의지가 없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가처분결정을 파기할 것만을 기다렸다. 노조는 7월1일부터 공정방송위원회 설치 등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파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서울고등법원은 7월22일 사측의 항고를 기각했다. 마침내 사측은 본부와의 단체협약을 재개하고 공정방송위원회 설치 등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적극 노력하기로 노사합의했다. 이 노사합의와 법원의 단체교섭응낙가처분결정이 사측을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나서도록 했다. 파업집회에서, KBS개념탑재의 밤에서 외쳤던 단체교섭의 요구에 대해 법원은 판결로 응답했다. 그리고 사측은 노사합의서로 수용했다.

3. 언론노조 KBS본부는 노조법에 의해서 설립 금지된 복수노조는 아니라고 판단됐다. 법원은 위 가처분사건에 관한 결정을 통해 그렇게 판시했다. KBS 조합원들이 가입한 언론노조는 산별노조이고 기존 KBS노동조합은 기업별노조여서 노조법 부칙에서 설립 금지한 복수노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미 대법원이 그렇게 판시하였기 때문에 서울남부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당연한 결정을 했다. 그러나 이 당연한 결정은 당연하지 않았다. 언론노조가 산별노조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 소속 KBS본부가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조직이 아니냐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았다. 독자적인 규약 및 집행기관을 가지고 독립된 단체로서 활동하면서 단체교섭권 및 체결권을 가진 조직이라면 판례는 본부·지부·분회 등이라도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것으로 본다. 이것이 문제였다. KBS본부는 운영규정이라는 규약이 있고, 자체적으로 구성하는 본부장 등 집행기관이 존재한다. 언론노조에서 탈퇴한 기존 KBS본부(현 KBS노동조합)는 위임받지 않고서도 제멋대로 사측과 단체교섭권을 행사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했었다고 사측은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KBS본부는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조직이 아니라고 사측의 이 주장을 반박해야 했다.

1997년 노조법이 제정된 뒤 하나의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는 경우 그와 조직대상을 같이 하는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도록 한 부칙 제5조 제1항을 기존에 기업별노조가 조직돼 있는 경우에 새로이 기업별노조가 설립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주장했다. 그리고 이것이 법원에서 판례로 정리됐다. 판례는 기업별노조뿐만 아니라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조직도 포함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산별노조는 기업별노조가 조직돼 있는 사업장 노동자를 얼마든지 가입시켜 지부·지회·분회 등을 설치한 후 사측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사측이 거부하면 법원에 단체교섭에 응하라는 신청을 하고 그 결정을 받아 단체협약을 체결해왔다. 금속노조에서만 수십 개의 법원의 가처분결정을 받았고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 지부·지회·분회 등이 단체교섭권 및 체결권을 가지고 있다면 법원은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조직으로서 노조법에서 설립 금지된 복수노조에 해당하고 가처분신청은 기각되고 만다.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지부·분회 등 조직이란 지부·분회 등이 기업별노조에 준할 정도의 조직실체를 갖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지부·분회 등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단위노조로서 조직 운영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 자체가 하나의 단위노조로서의 법적 지위가 인정된다는 것이 판례이다. 판례 법리는 단순하다. 하나의 단위노조로서의 실체가 인정되는 조직이라면 법적으로 하나의 단위노조라는 것이다. 복수노조 설립금지에 있어서는 법은 기업별노조의 복수노조 설립을 금지했으므로 기업별노조로서의 실체가 인정되는 조직이라면 지부·분회 등 어떠한 명칭의 조직이라도 법적으로는 하나의 기업별노조에 준하여 본다는 것이다. 산별노조의 지부·지회·분회 등이 하나의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조직 실체를 가지고 있다면 법원은 기업별노조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산별노조체제는 부서지고 만다. 산별노조의 지부·분회 등 조직이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KBS본부 사건에서는 언론노조가 단체교섭 주체로서 지위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됐다. KBS본부가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경우라면 기존에 KBS노동조합이 존재하기 때문에 KBS본부가 노조법 부칙에 의해 설립 금지된 복수노조에 해당하므로 언론노조는 사측과 단체교섭을 진행할 지위에 있지 못하다. 언론노조에 가입한 KBS 조합원은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KBS 조합원의 파업은 불법이 되고 파업참여 조합원은 징계될 수 있다.

4. 노조법 개정으로 2011년 7월1일부터 기업단위에서도 복수노조는 허용된다. 따라서 더 이상 이번 KBS본부 사건과 같은 사례는 발생할 수 없다. 법원은 더 이상 KBS본부사건과 같은 사례로 판결을 할 필요가 없다. KBS에서, 그리고 이 나라의 모든 사업장에서 기업별노조가 존재하더라도 새로운 기업별노조조차도 얼마든지 설립할 수 있다. 산별노조의 지부·분회 등을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조직으로 설치할 수도 있다. 그래도 사측은 노조법에 의해 설립이 금지된 복수노조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산별노조는 지부·분회 등을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실체로 조직해도 되는가. 언론노조는 KBS본부 등 소속 본부·지부 등을 그 자체가 기업별노조인 것처럼 위임 없이 단체교섭권과 체결권을 행사하도록 방치해도 되는가. 산별노조는 기업별노조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노조운동의 조직전망에 의해 추진돼 왔다. 산별노조의 본부·지부·분회 등이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실체로서 조직되는 것은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의 노조운동의 조직전망이 아니다. 기존 기업별노조체제에다가 단지 산별노조라는 껍데기만 씌운 것일 뿐이다. 아무리 껍데기로 덮어씌워도 껍데기는 껍데기 일뿐이다. 지금까지처럼 법원은 산별노조의 본부·지부·분회 등이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경우에는 이를 기업별노조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경우 산별노조는 사업장별로 본부·지부·지회·분회 등 조직을 두고 있다. 이 사업장별 조직은 그 동안의 기업별노조운동과 사업장단위의 단체협약 체결에 따라 노조의 활동과 투쟁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기업단위 조직의 강력한 조직적 집중성 때문에 산별노조는 하나의 노동조합으로서의 중심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직과 활동에서 끊임없이 모색하고 추진해야 한다. 지금 우리 노조운동은 산별노조가 투쟁의 중심이 아니다. 어떠한 산별노조라도 그 투쟁은 사업장의 교섭에 집중되고 그 교섭 쟁취를 위한 것이다. 산별교섭틀을 만들고 산별협약을 체결하기도 하지만 산별노조 활동 보장과 조합원의 근로조건에 관한 기본사항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사업장 교섭은 해당 사업장의 노조조직이 실제로 장악하고 있다. 산별노조로서의 높은 중심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금속노조에서조차도 금속노조가 아닌 현대자동차지부가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임금 인상 등 단체협약을 위한 교섭을 하고 지부가 교섭 쟁취를 위해 투쟁 일정을 실질적으로 정한다. 산별노조 임원 한두 명을 포함시키고 산별노조가 지부에 교섭권을 위임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산별교섭이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그 실질은 변함이 없다. 형식이 아닌 내용은 사업장 조직이 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껍데기를 벗기면 실체는 사업장 조직이라는 것을 드러난다. 이와 같이 취약한 우리의 산별노조체제에서 본부·지부·지회·분회 등을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경우로 조직 운영하게 된다면 산별노조 조직은 부서지고 만다. 법원은 그러한 본부·지부·지회·분회 등의 조직형태변경을 적법하다고 판결할 수 있다. 과거 하급심법원은 금속노조의 강원산업(현대제철 포항)사건에서 기업별노조로 조직변경에 관해 금속노조가 강원산업지회가 위임 없이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을 금속노조가 묵인했던 사실을 들어 조직형태변경의 유효성을 인정한 바 있다. 아무리 법원의 판결을 비난해도 소용없다.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조직이므로 기업별노조처럼 법적 지위를 인정한다고 법원은 판결로서 답변할 것이다. 결국 이번 KBS 가처분사건에 관해 법원은 사용자인 한국방송공사뿐만 아니라 신청인인 언론노조에 대하여도 결정한 것이다. 법원은 이 나라의 모든 산별노조에 대하여도 결정한 것이다. 산별노조는 기업별노조로서 조직 운영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법원은 이번 가처분결정으로 산별노조에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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