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남대병원 노사는 이달 15일 정년연장·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가 제동을 걸고 나서자, 병원측이 재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 노사는 전임자 문제 등에 어렵게 합의했지만 공사측이 고용노동부와의 협의를 이유로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12월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지만 올 들어 전광우 공단 이사장이 돌연 합의를 번복했다. 한국가스공사 노사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쳤다.
게다가 감사원은 공공기관에 대한 특별감사를 통해 단체협약 시정을 권고하고 불이행시 불이익 처분을 경고했다. 정부가 공공기관 노사의 자율교섭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수원지법은 지난 26일 가스공사측에서 노사합의를 백지화한 것과 관련해 “노사가 서명한 단체협약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정부의 노사관계 개입, 이대로 두고 봐야 하나.



“정부 개입하면 사용자와 교섭할 이유 없어”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


타임오프든 단체협약이든 노사가 자율적인 교섭으로 합의한 내용에 대해 담당부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개입이다. 전남대병원은 노사가 자율로 합의한 사항을 교과부가 검사하고 나선 것이다.
병원 사업장들은 보건복지부나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교육과학기술부 등 정부의 여러 부처가 관여하고 있다. 보훈병원과 원자력의학원 같은 공공병원은 기재부가 다른 공공기관처럼 기관장 평가 때 연봉제·성과급제 도입, 임금삭감 같은 효율화 방침을 얼마나 반영했는지 평가한다고 한다. 단순히 효율적 운영이라는 이유로 인건비를 줄이고 성과급제를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임단협 과정에서 병원측은 정부의 방침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병원 사업장의 업무는 모두 사람 손이 가는 일이다. 인력에 따른 서비스 정도가 환자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공병원의 특성상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공공기관과 같은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도 문제다. 정부가 노사의 자율적인 교섭에 계속 개입한다면 노조가 굳이 병원측 사용자와 교섭을 할 이유가 없다. 정부 산하에 병원 사업장을 관할하는 직속기관을 둬서 노조와 직접 교섭하는 게 낫다.


“정부, 과도한 공기업노조 옥죄기 중단해야”
박준형 공공노조 정책기획실장




최근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와 관련해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매뉴얼을 준용하고 이를 근거로 경영평가를 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 매뉴얼은 법적 근거가 없는 지침일 뿐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도 아닌 정부 부처의 지침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은 자율적인 노사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통제하겠다는 뜻이다.
경영평가뿐만 아니라 감사원 감사를 통해서도 노사관계 개입과 통제는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한 공기업의 경우는 감사원으로부터 노조 사무실이 넓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하는 것은 과도하다. 법적인 근거도 없다. 특히 타임오프 시행 이후 정부의 공기업 노사관계 통제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법을 안착시킨다면서 공기업 노사관계를 통제해 이를 민간기업으로 확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공기업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통제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자율적인 문제 해결 문화를 해치고 공기업 노사나 노정갈등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정부는 공기업 노사관계에 대한 과도한 개입을 중단해야 한다.


"불합리한 노사관계 지도, 정부의 당연한 책무"
이정한 고용노동부 공공기관노사관계과장


적법하고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노사자치주의 원칙이 존중돼야 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확고하다. 다만 공공기관의 경우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등 다른 민간기업과는 다른 공익적 특성이 있다. 또 법령·예산·정부정책에 따라 기관 운영방향이 영향을 받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간 공공기관에서 경영진의 책임성·전문성 부족 등으로 노사관계에 일부 불합리한 사례가 있었던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불합리 사례는 단순히 해당기관의 경영상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민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적법·합리적인 범위에서 공공기관 노사 자치주의 원칙은 존중하되, 위법·불합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경영진 책임하에 노사가 자율적 교섭을 바탕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지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산과 법령에 근거해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특성상 지도·감독권을 가지고 있는 공공기관 담당부처의 이러한 지원·지도는 법령이 부과한 당연한 책무다. 현재 공공기관 일부 사업장에서 노사 간의 이견으로 갈등이 있으나, 결국 그 갈등의 해결 주체는 해당기관 노사다. 법과 원칙의 테두리 내에서 노사 간 지속적인 대화와 교섭을 통해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란다.


“개입하려면 차라리 직접 교섭에 나서야”
박수근 한양대 법학과 교수


공기업의 경영진은 국가(정부)가 아니다. 정부가 경영평가와 같은 사후평가를 통해 일정한 통제를 하긴 하지만 경영은 엄연히 해당 공기업의 경영진이 하는 것이다. 공기업의 노사관계 주체 역시 노정이 아닌 해당 기업의 경영진과 노조다. 그럼에도 정부가 공기업 노사관계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일반 사기업 노사관계에 정부가 개입한다면 그것은 부당노동행위가 확실하다. 그러나 공기업 특성을 감안할 때 부당노동행위라고 확답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의문을 지울 수 없다는 뜻이다.
노사관계는 법적인 잣대보다는 자율적인 의사결정이 중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정부가 법을 만들고 시행을 감독할 수는 있지만 노사관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사가 맺은 단체교섭이 부적절하거나 과도하다면 경영평가와 같은 사후평가를 통해 조절하면 된다. 경영 역시 마찬가지다. 공기업에 대해 정부가 갖고 있는 권한은 사후 평가지 사전 개입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공기업 특성을 감안할 때 정부가 노사관계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런 논리라면 정부가 노사관계·교섭에 직접 나서야 한다. 노동계가 직접 교섭을 요구하면, ‘우리는 노사관계 당사자가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있는 게 정부다. 앞뒤가 맞지 않다.

“단협은 기관별 특성 반영한 규범”
강호민 변호사(법무법인 새날)




노사의 단체교섭은 노사자치를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노사자치가 사라지고 있다. 최근 공공기관 노사관계를 보면, 사용자가 노동부인 것 같다. 정부의 개입으로 정상적인 노조활동이 불가능하게 됐고, 정상적인 노사관계도 어렵게 됐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공공기관 노사관계 개입을 입증할 수 있는 여러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공공기관 사용자들에게 재량권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공공부문 노사관계를 시끄럽게 하고 이로 인해 정부가 추구하는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불협화음은 민간부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장 민간부문 사용자들이 전임자 문제와 관련해 눈치 보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노사는 오랜 기간 동안 교섭을 벌여 단체협약을 만들었다. 이는 규범으로 정착돼 있는 것이다. 교섭이라는 것은 누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것이다. 노사 모두 합리적인 선에서 양보하고 기관 상황에 맞는 최선의 안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나 정부가 일방적인 잣대로 이를 과도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부는 노조가 아무리 양보해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전임자·휴일·복지 모두를 내놓으면 모를까.
법원도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잘못됐다고 인정하지 않았나. 만족할 순 없겠지만 수원지법의 판결로 정부의 과도한 개입에 제동이 걸릴 것이다. 정부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공공기관 노사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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