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오프 한도  ‘하후상박’ 원칙은 고무줄?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가 시행된 지 한 달이 다 돼 간다. 하지만 현장의 혼란은 좀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사가 최전선에서 노동과 자본 간 대리전을 치르는 가운데 양대 노총 소속을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타임오프 시행을 둘러싼 단체협약 축소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양대 노총 간 타임오프 대응에서 차이점도 보이지만 노동부 매뉴얼 부작용, 사용자의 단협 축소시도는 공통적으로 제기된다. <매일노동뉴스>가 타임오프 제도와 관련한 쟁점을 짚어 봤다.

타깃은 민주노총과 대기업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자 대표적인 대기업인 기아차 노사는 그야말로 ‘노-사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기아차는 타임오프 제도 시행 첫날, 기다렸다는 듯이 전임자 204명에 대해 무급휴직 발령을 내고 그동안 노조에 제공되던 차량과 유류비, 숙소를 모두 회수했다.
기아차는 또 ‘근태관리 매뉴얼’을 통해 “근무시간 중 조합원교육을 무급처리하고, 대의원대회·총회·노사공동위원회도 타임오프 범위를 초과할 경우 근무시간 외에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어 사업장 안에 ‘근로감독관실’까지 만들었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공장에 상주하며 타임오프 교섭을 지도하도록 한 것이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전임자의 임금을 금지하되, 타임오프 한도 내에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단협에서 전임자임금을 제외한 나머지 조항, 예컨대 노조에 대한 편의제공 등은 타임오프 제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기아차는 타임오프 제도를 이유로 노조에 대한 편의제공까지 전광석화처럼 중단했다. 이에 맞서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경영·생산·안전사고 등 각종 노사공동위원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해당 활동을 하다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할 경우 회사측이 무급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작용은 곧 나타났다. 기아차는 지난 14일 화재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빚는 등 곤혹을 치렀다.

현재 기아차를 필두로 현대위아·현대로템·엠씨트·다이모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 두산그룹과 S&T그룹 계열사들이 비슷한 양상으로 교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부도 대기업이 타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노동부는 7월치 임금지급이 끝나면 5천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타임오프 실태를 조사할 예정이다. 임금협약 점검대상에서 제외했던 100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금속노조와 공공기관 사업장을 중심으로 타임오프 협약을 점검할 계획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타임오프 제도의 원칙은 중소기업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되, 대기업노조는 자체 재원으로 전임자임금을 부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은 줄이고, 중소기업은 묶고?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요. 타임오프 한도는 인정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애초 타임오프 합의 취지는 하후상박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 유급전임자수는 줄이는 데 혈안이면서 중소사업장에서는 한도만큼도 늘려 주지 않아요.”(노동부 산하기관 노조 관계자)
노동부에 따르면 이달 19일 현재 상반기에 단협이 만료된 100인 이상 유노조 사업장 1천320곳 중 타임오프 한도에 합의한 사업장은 682곳(51.2%)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천인 이상 대기업(60곳)의 절반 이상인 53.3%가 기존 유급전임자수보다 축소됐다. 반면 300~999인(352곳) 사업장의 60.9%, 300인 미만(812곳)의 69.8%가 현행수준을 유지했다. 유급전임자가 기존보다 늘어난 곳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한 자릿수에 그쳤다. 대기업은 6.7%, 중소기업은 300~999인 9.9%, 300인 미만 8.4%에 머물렀다.
노동부가 타임오프와 관계없는 단협 조항에 대해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경기지역의 50~99인 한 사업장에서 유급전임자 1명을 쓰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노동부가 체결된 단협에서 ‘별도로 보장하는 유급시간은 타임오프 한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조항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라고 요구했어요. 노동부 때문에 교섭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겁니다. 노사가 이미 합의했는데도 말입니다.”(화학노련 관계자)
플랜트건설노조는 황당한 상황에 직면했다. 사측이 타임오프 시행을 이유로 단협 축소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측은 지금까지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준 적이 없다. 사용자가 타임오프 제도를 악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투쟁”, 한국노총은 “협상”
타임오프 제도와 관련해 양대 노총은 상반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경우 김영훈 위원장이 12일간 단식농성을 진행했고,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파업투쟁에 나섰다. 파업을 준비하는 조직도 여럿이다.
이에 반해 한국노총은 최대한 교섭 과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중앙 차원의 정치협상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노동부에 따르면 이달 16일 현재 한국노총 사업장의 56%, 민주노총 사업장의 36.9%가 각각 타임오프 도입에 합의했다. 또한 타임오프 한도를 넘어선 합의는 4.4%(30곳)에 그쳤는데, 민주노총 사업장이 28곳에 달했다. 주로 민주노총 사업장이 교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노총은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한 합의와 기존 전임자수 유지에 무게를 싣고 있다. 금속노조는 노동부 통계가 발표되자 “소속 사업장 101곳에서 기존 전임자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반박했다.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한 사업장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현재 민주노총 사업장은 교섭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며 “병원사업장의 경우 전남대병원을 제외하면 예년에 비해 교섭타결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타임오프로 인한 노사갈등이 잇따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상급단체 파견전임자 임금 어떻게 되나
반면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들은 LG전자처럼 타임오프 한도 내에서 조용히 타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업장 단위에서 원만하게 합의한 뒤 중앙 단위 정치협상에 기대를 걸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인 것이 상급단체 파견전임자 임금 문제다. 한국노총은 타임오프 관련 노사정 합의 과정에서 경영계의 기부로 기금을 조성해 2년간 한시적으로 상급단체 파견전임자 임금을 보전하는 방안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계가 노사발전재단에 기금을 위탁하면, 재단이 이를 사업발주 형식으로 상급단체 파견전임자에게 지원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임태희 전 고용노동부장관(현 대통령실장)은 최근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노총도 원하면 노사발전재단 사업을 통해 상급단체 파견전임자 임금을 한시적으로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영계가 아직 기금을 출연하지 않고 있는 데다, 타임오프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민주노총이 상급단체 파견전임자들의 임금보전을 요청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타임오프 간담회’ … 반응은 ‘시큰둥’
지난달 26일과 이달 14일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과 임태희 전 노동부장관이 긴급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장 위원장은 “노동부의 과도한 타임오프 매뉴얼 해석으로 인해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이후 노동부는 지난 16일과 20일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타임오프 매뉴얼 보수교육(재교육)을 실시했다. 또 이달 21~22일 한국노총·한국경총과 함께 지역별 간담회를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한국노총은 노동부 질의회시를 통해 현장에서 답답해하는 문제를 법률적으로 해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간담회와 질의회시가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기두 한국노총 조직본부장은 “노동부는 간담회에서 갈등해소와 왜곡교정이 아니라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였다”며 “노동부 보수교육도 소용이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9월에 근면위 소집될까
전문가들은 타임오프를 둘러싼 현장의 혼란과 관련해 “9월 이후를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양대 노총 모두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데다, 야당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지난 20일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기국회에서 노조법 개정과 타임오프 매뉴얼 개정 문제를 함께 다루겠다”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한국노총은 9월께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 소집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 고시에 ‘사업장별 특성을 반영한다’는 부칙이 삽입돼 있는 만큼 전국 분포도와 교대제 근무 등 사업장 특성을 반영해 타임오프 가중치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체신노조·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와 같은 전국에 사업장이 산재해 있는 노조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애초 보수교육이나 노사정 간담회는 그동안 노사가 잘못 해석하거나 노동부 매뉴얼로 인한 혼란을 분명히 바로잡자는 것이었지 노동부의 입장이 변한 것은 없다”며 “고시 부칙에 명시된 대로 근면위에서 논의할 수 있지만 그 시기는 타임오프 제도를 더 운영해 본 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타임오프는 매뉴얼이 문제”
  정부 과도한 개입, 사용자 악용사례 잇따라
#1. 노조 조합원이 300명을 약간 웃도는 정부 산하기관 A사. 이 회사 노사는 최근 타임오프 한도에 맞춰 유급전임자수에 합의했다. 그런데 단체협약 문구를 정리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사측이 단협 문구를 ‘노동부 타임오프 적용 매뉴얼’대로 정리하자고 요구하고, 사용계획서 제출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결이 늦을 경우 전임자임금을 소급적용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흘리고 있다. 소급적용은 노동부 타임오프 매뉴얼에도 명시돼 있다.
#2. B그룹 산하로 각각 독립법인이었던 C사, D사, E사는 지난해 말 하나의 법인으로 통합됐다. 3개사 노조는 모두 별도로 관리부서와 단협을 갖고 있다. 노동부 타임오프 매뉴얼을 적용하더라도 각각 별도로 타임오프 합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사측은 ‘같은 법인’임을 들어 3개사가 타임오프 한도를 N분의 1로 나눠 쓰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C사의 경우 타임오프 한도로 2.5명까지 가능한데도 1.5명만 인정하겠다는 식이다. B그룹은 그룹 내 F사와 G사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유급전임자 축소를 시도하고 있다.
두 가지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은 고용노동부의 타임오프 매뉴얼에 대한 불만이다. 이를 적용하는 과정에서의 노동부와 재계의 태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분란의 핵심은 ‘노동부 매뉴얼’이다.
이는 노동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최근 노동부의 한 고위간부는 재계가 주최한 설명회에 참석해 “타임오프 제도를 적극 활용해 대립적 노조활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노조와 전임자제도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한국경총이 회원사에 배포한 지침에서 “조합원과 비전임 간부들의 활동시간(총회·대의원대회·교육 등)도 타임오프 한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것은 노동부 매뉴얼을 악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경총의 지침이 현장에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노동부 관계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기획재정부가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는 “개정 노조법에 따라 기존의 공공기관 전임자 지침은 폐기됐다”면서도 “개정 노조법 준수현황을 점검해 결과를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벌써부터 ‘경영평가’에 민감한 공공기관이 노사 자율교섭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최삼태 한국노총 기획정책실장은 “기재부는 개정 노조법대로 하라는 것인데, 경영평가에 반영된다고 하니까 사용자들이 지레 겁을 먹고 있다”며 “매뉴얼이나 지침에 구애받지 말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상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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