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전면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7월로 시행 2년을 맞았다. 가장 큰 변화는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이 바뀌고,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질병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가 신설됐다는 점이다. 개정 산재보험법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산재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본연의 취지에 부합할까.
보통 사회가 발전하면 사고성 재해는 줄어들고, 질병은 늘어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 업무상사고가 증가하고, 업무상질병이 감소하고 있다. 산재보험법상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되는 건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매일노동뉴스>가 세 차례에 걸쳐 업무상질병이 줄어드는 이유와 질판위 도입 2년의 성과와 과제를 짚어 보고, 업무상질병 인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살펴본다.<편집자>


[게재 순서]    
1. 치솟는 뇌심혈관질환 업무상질병 불승인율    
2.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도입 2년    
3. 업무상질병 인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지난 8일 발표된 통계청의 ‘한국 남녀 사망원인별 사망률(2008년)’에 따르면 뇌혈관질환이 각종 암을 제치고 남녀 모두 사망원인 1위를 차지했다. 여성의 경우 허혈성 심장질환이 사망원인 2위였다. 뇌심혈관질환은 고혈압과 당뇨·고지혈증 같은 기존 질환과 과로나 스트레스와 같은 업무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심혈관질환의 주요 발병원인은 과로와 스트레스다. 그만큼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국민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뇌심혈관질환은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부산에 있는 주방용품 제조업체인 A사에서 일하던 강아무개(여·70)씨. 그는 지난해 2월 오전 상자를 접는 일을 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작업을 시작한 지 2시간30분 만의 일이었다. 동료들이 119구조대를 불렀고, 강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다시 종합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자발성 뇌지주막하출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주막(뇌 실질을 감싸고 있는 뇌막) 아래에 있는 혈관이 터진 것이다.

A사는 20~30명이 일하는 영세업체였다. 강씨는 제품을 조립하거나 세척·포장하는 일을 했다. 평소 근무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지만 토요일에도 평일처럼 일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하루 3시간 이상씩 잔업을 했다. 쓰러지기 2주일 전부터는 매일 잔업을 했다. 주문량이 밀렸기 때문이다. 사고 전날인 일요일에도 특근을 했다. 사고 전 16일간 쉰 날은 고작 하루였다.

냄비 같은 주방용품을 만들려면 밀링(절삭) 작업을 해야 하는데, 기계소음이 심했다. 노동자들끼리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세척을 할 때 각종 화학약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악취가 코를 찔렀다. 영세업체이다 보니 냉난방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강씨가 쓰러진 날은 그달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강씨의 가족들은 극심한 과로에 시달리다 쓰러졌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했다.

공단은 그러나 지난해 6월 요양신청을 불승인했다. 공단 산하 부산지역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발병 전 연장근무 사실은 확인되나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유발했다고 보기 어렵고, 고혈압 등 기존 질환의 자연경과적 악화로 발병했다고 판단된다”며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점점 감소하는 업무상질병 승인율
 
2008년 7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 제도가 도입된 뒤 업무상질병 승인율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공단 자료에 따르면 질판위가 도입되기 전인 2006년과 2007년 업무상질병 불승인율은 각각 45.7%, 54.6%였는데, 질판위가 도입된 2008년에는 56.5%, 지난해는 60.7%까지 치솟았다.<표1 참조>
특히 강씨처럼 뇌심혈관질환 불승인율은 다른 질병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아졌다. 2006년 59.9%, 2007년 59.8%로 비슷한 수준을 보이다가 2008년 67.8%, 지난해 84.4%로 급증했다.
예컨대 10명이 뇌심혈관질환으로 요양을 신청하면 그중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채 2명도 안 된다는 뜻이다. 강씨가 사는 부산지역의 뇌심혈관질환 불승인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90.3%를 기록했다.
뇌심혈관질환은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와 모두 관련돼 있다. 고혈압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관련이 높아 2차적으로 뇌심혈관질환을 일으킨다.
고혈압의 원인이 되는 질환은 대개 과로와 관련돼 있다. 대법원은 지난 91년 “근로자가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정도의 기초 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있었고, 그 질병이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었더라도 업무상의 과로로 인해 그 질병이 급속히 악화되거나 새로운 질병이 유발된 경우, 또는 이로 인해 사망한 경우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고혈압이 있었던 강씨도 과로로 쓰러졌을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도 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했을까.
 
뇌심혈관질환 불승인율 가장 높아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인정기준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34조) 별표에 나와 있다. 업무상질병 결정에 필요한 사항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따로 고시한다. 시행령 별표에 따르면 노동자가 업무로 인해 뇌실질내출혈·지주막하출혈·뇌경색·심근경색증·해리성 대동맥류에 걸리면 업무상질병으로 본다.

노동부 고시는 더 까다롭다. 발병 전 24시간 이내에 업무에 관련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이 발생했거나, 발병 1주일 이내에 업무량이나 업무시간이 일상 업무보다 30% 이상 증가해야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또는 발병 전 3개월 이상 연속적으로 일상적인 업무에 비해 과중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발생시켰다고 인정되는 업무적 요인이 객관적으로 확인됐을 때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된다.<표2 참조>
이러한 기준은 노사정이 참여하는 업무상질병인정기준위원회에서 마련됐다. 현행 시행령은 2007년 개정돼 2008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노동부도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고시를 발표했다.
 
까다로워진 ‘업무상 뇌심혈관질환 인정기준’
 
산재보험법 시행령이 개정되기 전에는 업무수행 중에 발생한 뇌심혈관질환은 모두 업무상재해로 인정됐다. 그러나 법이 개정되면서 업무수행 중 발병했더라도 질병과 업무의 관련성, 즉 과로 여부를 따지게 됐다. 법 개정 전이었다면 강씨는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개정 전에는 과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뇌실질내출혈과 지주막하출혈 등이 업무수행 중에 발병하거나 사망하면 공단이 업무관련성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업무수행 중 발생한 뇌심혈관질환을 모두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던 조항이 삭제된 것이 불승인율을 높인 1차 원인이 됐다. 원종욱 연세대 교수(산업의학)는 2008년 노동부의 용역을 받아 실시한 ‘뇌심혈관계질환 과로기준에 관한 연구’에서 업무수행 중 뇌출혈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뇌심혈관질환에서 산재 노동자가 최소 45.9%에서 최대 69.3%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시행령보다 하위 규정인 노동부 고시가 시행령보다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부 고시는 사실상 질판위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고시에서 단기간 업무 부담 증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발병 전 1주일 이내 업무량이나 업무시간이 일상 업무보다 30% 이상 증가했느냐 여부다. 여기서 업무시간은 법정근로시간이 아닌 통상근로시간을 말한다. 평소 일을 많이 했던 노동자들은 일상 업무에 비해 1주일 업무시간이 30% 이상 증가하는 경우가 드물다. 원래 장시간노동을 했던 노동자들은 업무상질병을 인정받기가 오히려 어려워진 것이다.

가령 매일 밤 10시까지 일상적으로 야근한 노동자는 업무상재해가 불승인되고, 매일 ‘칼퇴근’을 하다 1주일간 밤 10시까지 야근한 노동자는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노동부 고시, 시행령보다 엄격해
 
이에 따라 보편적으로 장시간노동을 하는 택시 등 운수노동자와 경비원·건설노동자, 다음 교대자가 있어 업무시간이 30% 이상 증가할 수 없는 교대근무자는 업무상질병을 인정받기 쉽지 않다.

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택시노동자는 91.5%, 경비원노동자는 89.9%가 뇌심혈관질환 요양신청을 했다가 불승인됐다. 택시노동자의 불승인율이 이전부터 높았던 것은 아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2002년 산재보험으로 처리된 뇌심혈관질환 발병 택시노동자를 추린 결과 일반노동자의 세 배가 넘었다. 야간작업을 많이 하는 데다, 일할 때 긴장도가 높은 운수업은 외국에서도 뇌심혈관질환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현재 뇌심혈관질환 인정기준에는 이들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할 만한 조항이 거의 없다.

교대근무자들은 다른 업종 종사자에 비해 심혈관계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 교대근무로 생체리듬이 교란되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 생산직 노동자들을 14년간 추적한 결과 교대근무자들이 비교대근무자들에 비해 허혈성 심장질환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상대적으로 심혈관계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지만 노동부 고시를 적용하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기 매우 힘들다.

건설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이 잦아 출퇴근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 업무시간 증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출퇴근 자료가 필수인데, 이것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김용규 가톨릭대 교수(산업의학)는 “건설 등 일부 업종은 보건관리자 선임의무도 없어 평상시에도 건강관리를 해 주지 않는다”며 “예방 측면에서도 관리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보상도 제대로 못하는 취약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뇌심혈관질환으로 쓰러지면 당사자가 불구가 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회사측 자료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것이 불승인율을 높이기도 한다. 회사측이 산재노동자에게 유리한 자료를 내줄 리 없기 때문이다.
 
과로기준 정하기 쉽지 않아
 
과로나 스트레스는 업무의 양이나 시간·강도·책임 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과로의 인정기준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건강상태·업무 스타일에 따라 과로와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2007년 업무상질병인정기준위에서 인정기준을 논의할 당시 한국노총은 “뇌심혈관질환 인정기준이 시간초과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 기존 질환자와 고령자 등 상대적으로 근무여건이 열악한 경우는 제외되는 불합리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뇌심혈관질환의 과로 인정기준을 하향 조정하고, 조정이 어려우면 현행기준을 준용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경총은 기존 인정기준의 ‘업무량 증가 30%’로 과로 여부를 정리하자는 입장을 냈다. 사실 업무량 증가 30% 조항은 개정 전 인정기준(시행규칙)에도 있었다. 노동자의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발병 전 3일 이상 연속적으로 일상업무보다 30% 이상 증가된 경우를 만성적인 과로로 판단한 것이다. 당시에는 업무수행 중 발병한 뇌심혈관질환이 대부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돼 이 조항이 크게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정기준이 개정된 뒤 계량적으로 수치화하기 쉬운 ‘시간’을 중심으로 과로 여부를 따지게 되면서 ‘30%’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개인마다 신체적인 특징이나 성격·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30% 이상 증가’를 기준으로 과로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상업무보다 30% 이상 증가했다는 것이 뇌심혈관질환을 일으킬 만큼의 과로인지 여부도 의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
 

연구용역 결과는 반영되지 않아
 
노동부는 2008년 뇌심혈관질환과 근골격계질환 인정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뇌심혈관질환 연구용역을 맡은 원종욱 교수는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할 때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이 극심한 경우’를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하기 직전의 1주일간 근무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한 경우’로 하자고 제안했다.<상자기사 참조>
원 교수는 또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는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하기 직전 3개월의 근무시간이 월간 209시간을 초과한 경우’로 제시했다. 이 밖에도 대기시간이 긴 직업에 대해서는 대기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하고, 야간 근무자는 야간 근무시간의 20%를 근무시간에 추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같은 용역결과는 경영계가 강하게 반발한 탓에 인정기준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올 들어 노동계를 중심으로 뇌심혈관질환 인정기준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노동부도 최근 개정 논의에 들어갔다. 지난 4월부터 이달 15일까지 각각 두 차례 업무상질병인정기준위 회의와 업무상질병인정기준 개정 관련 전문가회의를 열었다. 

업무상질병인정기준위에는 정부와 노동계·경영계·전문가 등 14명이 참여하고 있다. 임성호 한국노총 안전보건연구소 국장은 “잘못된 업무상질병 인정기준과 제도 운영으로 피해를 보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며 “인정기준 개정 논의를 서둘러 달라고 주문한 상태”라고 말했다.
 
노동계,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개선 요구
 
현재 논란이 되는 것은 만성과로에 대한 부분이다. 만성과로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개선안은 대략 세 가지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일상업무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 만성과로의 판단기준을 정하는 방안 △일상업무에 대한 개념을 별도로 정하지 않고 만성과로의 판단기준을 정하는 방안 △체크리스트 방식을 도입해 참고사항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되 현행과 같이 개별 사안별로 판단하는 방안 등이다.

첫 번째 안은 일상업무를 통상적인 소정근로시간(1개월당 209시간) 내의 소정업무로 정하고, 3개월 동안 근무시간 또는 업무강도가 일상업무의 20%(근무시간의 경우 250시간)를 초과한 달이 3개월 연속되면 만성과로로 보자는 것이다. 이처럼 객관적 판단기준을 제시하면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하기 쉬워진다. 또 택시·경비 등 장시간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시간적 개념만 대입해도 대부분 업무상질병으로 승인될 수 있다. 반면 제시된 일상업무보다 짧은 시간을 근무하는 종사자에게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두 번째 안은 뇌심혈관질환 발생 이전에 적어도 3개월의 근무시간이 월간 225시간을 초과한 경우를 만성과로로 보자는 것이다. 대기시간이 긴 작업에 대해서는 대기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하고, 야간근무자는 야간근무시간의 20%를 근무시간에 추가한다.
이 방안 역시 객관적 판단기준이 제시돼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하기 쉬워진다. 그러나 장시간 업무 종사자들의 승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경영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세 번째 안은 만성과로를 판단할 때 △전 사업 노동자의 평균 근로시간 △업종별 노동자의 평균 근로시간 △일상업무에 비해 늘어난 근무시간 및 업무강도 등을 개별 사안별로 판단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장시간 노동자들이 지금과 마찬가지로 업무상질병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뇌심혈관질환 인정기준 재논의 시작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만성과로를 판단할 수 있는 정량적 수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노동부와 경영계는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계는 내심 지금의 기준을 원하는 분위기다.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팀장은 최근 관련 토론회에서 “업무상질병판정 제도 도입 이전보다 뇌심혈관질환 불승인율이 늘어난 부분에 대해서는 원인 조사가 필요하다”며 “조사를 바탕으로 인정기준 자체가 모호한 것인지, 기준을 적용할 때 운영상의 어려움인지를 다각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 팀장은 “불승인율이 늘었다고 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정기준 자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은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이에 대해 “인정기준 개정을 놓고 경영계에서 반발이 심하다”며 “아예 2008년 개정 이전 기준으로 돌아가 원점에서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세 가지 방안 중 하나로 만성과로 기준이 결정되더라도 고시 또는 지침으로 운영하기보다는 내부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사 간 절충점을 찾기 어려운 데다,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개정작업이 지연될 수도 있다. 김용규 교수는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포괄적으로 업무상질병을 인정해 주는 게 맞다”며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을 포괄적으로 늘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업무시간 증가 30%를 정하는 기준을 통상근무시간이 아닌 법정근로시간으로 바꾸고, 모든 업종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지 말고 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인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결국 노사가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며 “이를 위해 논의 과정을 공론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장시간노동’의 비애
지난 2008년 한국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천256시간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천764시간이다. 연간 노동시간이 2천시간이 넘는 국가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과로사는 OECD 회원국 중 ‘장시간노동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한국의 특수한 업무상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업무상 뇌심혈관질환 인정기준을 갖고 있는 나라도 우리나라와 일본·대만밖에 없다. 일본과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은 사망 6개월 전 평균적으로 매달 45시간 이상의 초과근무를 하거나, 1개월 전 100시간 초과근무, 2~6개월까지 매월 80시간 초과근무를 했을 경우 만성과로로 판단한다.
일본은 발병 전 1~6개월에 걸쳐 초과근무시간이 대략 45시간을 초과하지 않을 경우 업무관련성이 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45시간을 초과해 초과근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업무관련성이 강하다고 판단한다.
발병 전 1개월 간 대략 100시간 또는 발병 전 2~6개월에 걸쳐 매월 대략 80시간을 초과근무했을 경우 만성과로로 인정된다. 조현미 기자


과로사 원인은 뭘까
과로사와 과로성 질병(뇌심혈관질환)의 원인으로는 △몸의 리듬을 깨는 장시간노동 △주야로 반복되는 교대근무 △정신적 스트레스 △과중한 육체노동 △기온변화 △정신적·육체적 긴장을 동반하는 자동차 운전 등이 꼽힌다.
과로사가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는 과로가 직접적인 사망원인이 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평소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같은 질병을 갖고 있다가 업무상 과로 등을 이유로 뇌혈관질환이나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발전해 사망하는 등 다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노인성 질병으로 인식됐던 뇌출혈 같은 뇌혈관질환이 최근에는 청·장년층에서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원종욱 연세대 교수(산업의학)의 ‘뇌심혈관질환 과로기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그동안 과로 관련 연구결과를 종합한 결과, 하루 노동시간이 11시간 이상인 노동자가 7~9시간 일하는 노동자보다 심근경색 발생위험이 2.9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 발생 1개월 전 주당 근무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1.9배 발생위험이 높았다. 또 휴일이 월 2일 미만인 노동자의 경우 심근경색 발생위험이 2.9배 높았고, 주 5시간 이상 초과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5년 이내 사망위험이 두 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조현미 기자

[Tip]업무상질병인정기준위원회와  업무상재해

근골격계질환과 뇌심혈관질환 등 주요 업무상질병에 대한 관련기준과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근로복지공단 본부에 설치된 위원회다. 우리가 흔히 산업재해로 부르는 업무상재해는 업무상사고와 업무상질병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노사정은 2006년 12월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통과된 ‘산재보험제도 개선에 관한 노사정회의’에서 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데 합의했다. 노동부와 공단 관계자 4명, 양대 노총 관계자 2명, 한국경총·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영계 관계자 2명, 임상의학의 3명, 산업의학의 3명이 참여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