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개발촉진지역 선정 불구, 체감 경기·고용은 밑바닥

지난 19일 평택 시내에서 가장 큰 번화가로 꼽히는 평택역 앞 먹자골목. 밤 10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거리는 한산했다. 패스트푸드 가게 같은 체인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다. ‘빈차’라고 적힌 빨간 불을 켠 택시들만 근처 도로를 빠르게 지나갔다.
먹자골목은 한때 새벽 2~3시까지 불야성을 이루면서 ‘소비도시’ 평택을 상징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밤 10시만 되면 상가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10시가 통금시간”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곳에서 6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정아무개(50)씨는 “지난해 쌍용자동차 파업도 끝나고 경기가 풀리면서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는데, 평택 사람들이 여전히 돈을 쓰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매출액이 지난해보다 10% 정도 떨어졌다고 한다.

앞서 저녁 7시30분께 둘러본 세교동 먹자골목의 상황도 비슷했다. 주변에 쌍용차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지난해만 해도 퇴근하는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로 북적거렸을 시간이지만 상가 중 3분의 2가 손님을 한 테이블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점포임대’라는 안내문을 붙인 가게도 심심찮게 보였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 돼 일주일에 서너 곳은 업종을 바꾸고 떡을 돌린다”고 입을 모았다.
5년째 횟집을 하고 있다는 이한덕(51)씨는 “쌍용차에서 해고된 사람들은 발길을 끊었고, 공장에 남아 일하는 사람들도 월급이 줄고 일은 많아지다 보니 회식을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용지표만 급상승 … 현장은 “글쎄”
 
다음달 6일이면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의 구조조정 반대 파업이 끝난 지 1년이 된다. 같은달 13일이면 평택이 국내 최초로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선정된 지 1년이 된다. 각종 정부 지원이 다음달 12일 중단되는 것이다.

최근 평택시는 촉진지역 선정기간을 1년 연장할 것을 고용노동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경기회복과 함께 고용지표가 크게 개선된 상황에서 더 이상 지원하는 것은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각종 통계만 놓고 본다면 평택의 고용은 급격히 회복되고 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평택지역의 실업급여 신규신청자는 2천667명으로 지난해 같은달(4천637명)보다 42.5%나 줄었다. 실업급여 지급자와 지급액은 각각 34%, 39%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보다 감소 폭이 훨씬 컸다. 전국 통계를 보면 지난달 실업급여 신규신청자와 지급자는 각각 14.5%, 16.2% 감소했다. 지급액은 20.4% 줄었다.
취업자수를 보여 주는 고용보험 피보험자수도 대폭 증가했다. 평택의 지난달 고용보험 피보험자는 9만96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만4천65명)보다 8.2%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증가율(4.1%)보다 두 배가 높다. 그러나 평택에 사는 노동자와 상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정부 통계와 딴판이었다. 7년째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는 황성만(48)씨는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앞차의 승객을 가로채는 등 택시업계의 상도의가 무너지고 있다”며 “매출은 지난해보다 30% 떨어져 택시를 몬 뒤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말했다.

평택 시내에서 인력소개업을 하고 있는 김아무개(48)씨는 “정부 말대로 일자리가 늘었다면 우리 업소들이 직업을 소개하는 일이 늘어나야 정상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최근 미군부대 공사 때문에 건설 인력수요가 늘어나긴 했지만 다른 직종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849명 취업에 그친 정부지원
 
특히 고용개발촉진지역 선정 효과를 체감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평택고용센터에서 만난 현상규(51)씨. 그는 6개월째 실업상태에 있다고 했다. 현씨는 “뉴스에서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선정돼 정부 지원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거나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지난해 8월 평택이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선정된 뒤 정부는 다른 지역에 비해 고용유지지원금 혜택 규모를 확대했다. 해고를 피하기 위해 휴업·휴직·훈련을 실시하는 사업주에게 지원되는 고용유지지원금은 다른 지역의 경우 수당의 66.7~75%밖에 지원하지 않지만 평택은 90%까지 지원했다. 또 일자리 창출을 위해 평택시에 사업을 이전하거나 신·증설하는 사업주에게 노동자 임금의 3분의 1에서 절반을 ‘지역고용촉진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지급했다.

그 결과 지난달 말 현재 평택 65개 업체 820명에게 고용유지지원금 4억6천400만원이 지원됐다. 지역고용촉진지원금은 144개 업체 849명에게 7억9천800만원이 지급됐다. 평택이 고용촉진개발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나타난 효과를 수치로 따지면 820명이 해고되는 것을 막았고 849명에게 일자리를 준 셈이다. 2008년 하반기에 시작된 금융위기로 쌍용차와 협력업체 노동자만 3천500여명이 거리로 내몰린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미미한 수준이다.

지역고용촉진지원금 제도는 고용개발촉진지역 선정에 따라 실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다. 10개월 동안 900명도 안 되는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향후 일자리 창출 규모는 확대될 것이라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평택고용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이달 2일까지 492개 업체에서 7천827명을 고용하겠다고 신고했다.

고용개발촉진 선정 기간이 끝나더라도, 그 전에 신규채용 계획서와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뒤 1년6개월 안에 신규고용을 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역고용개발촉진 선정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역고용촉진지원금 지급현황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들이 고용계획을 신고한 대로 이행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정부, 기업만 살찌웠나
 
지역고용촉진지원금 제도로 만들어진 일자리의 질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평택고용센터에 따르면 정부 지원금을 받아 신규인력을 채용한 기업의 80%는 상시근로자 3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이었다. 지난 3월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평택시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서도 당시 기준으로 정부 지원을 받은 40개 업체 중 상시근로자수가 100명이 넘는 곳은 5곳에 그쳤다. 반면에 10인 미만 사업장이 25곳이나 됐다.

이들 업체에 취업한 노동자들이 전부 정규직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최근 노동부는 고용보험사업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비정규직을 고용할 경우 지역고용촉진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을 고용해 놓고 정부지원금을 받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평택고용센터에서 만난 한 주부는 “주변에 취업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정부 지원으로 들어간 회사 일자리가 오래 일할 만한 곳이 아니라고 얘기한다”고 귀띔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택이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선정된 뒤 기업들만 혜택을 본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제도를 악용하는 기업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택 시내 한 직업소개소 관계자는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빌려 사람을 고용한 것처럼 꾸미는 편법이 횡행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전했다.
 
소외된 쌍용차 퇴직자들 … 일자리 찾아 평택 떠나
 
평택이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선정된 것은 핵심 사업장인 쌍용자동차가 경영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사실상 평택 지역경제의 ‘전부’였다. 쌍용차에서 해고되거나 희망퇴직한 노동자들은 회사와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에 밀려 희생양이 됐다.

지난해 일자리를 잃은 쌍용차 출신 노동자들은 정부 지원혜택에서도 소외됐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쌍용차에서 정리해고되거나 희망퇴직한 노동자 2천212명 중 51.6%인 1천141명(자영업자 271명 포함)만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정리해고되거나 징계해고된 사람들로 범위를 좁히면 사정은 더 안 좋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5월 정리해고자와 징계해고자 106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생계활동을 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35.8%에 불과했다. 이 중 정규직은 고작 5.3%였고, 전체 월평균 수입도 111만2천원에 그쳤다.

평택에 있는 기업들이 쌍용차 출신 해고자 채용을 꺼리는 것도 주요 이유 중 하나다. 평택고용센터가 최근 지역업체를 대상으로 비공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쌍용차 출신을 채용할 의사가 있는 기업은 100곳 중 1곳에 불과했다. 센터 관계자는 “업체들을 설득도 하고 감독도 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쌍용차 사태로 정리해고를 당했던 김아무개(38)씨는 고용센터의 소개를 받아 여러 업체에 면접을 봤지만 쌍용차 출신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다. 김씨는 현재 낮에는 건설일용직으로, 밤에는 부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잇고 있다.

지역 기업들이 외면하다 보니 아예 다른 지역에서 직장을 잡는 사례도 적지 않다. 쌍용차 정리해고자인 박아무개(35)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조그만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회사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했는데, 밀린 임금을 달라는 박씨에게 돌아온 대답은 “쌍용차 출신이라서 말이 많다”는 비난이었다. 결국 박씨는 5월부터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천안의 한 공장에 취업해 일하고 있다. 그는 “평택에서 일할 때보다 월급은 적지만 회사에서 쌍용차 이력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쌍용차를 다닐 때보다 적은 급여 때문에 선뜻 취업을 못하거나 취업을 해도 곧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평택고용센터 관계자는 “우리 지역 기업체의 월평균 임금이 150만원인데, 적어도 340만원 이상을 받았던 쌍용차 출신들이 선뜻 취업하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만족스러운 직장을 찾지 못한 이들이 주로 선택하는 것은 사업이나 자영업이다. 이마저도 경험부족과 더딘 경기회복 등으로 쉽지가 않은 실정이다. 지난해 8월부터 희망퇴직 위로금을 종자돈으로 대리운전업체를 차려 운영하고 있는 정아무개(37)씨는 최근 손님이 급격히 줄어들자 취업전선에 다시 뛰어들었다. 그는 “현재 평택지역 대리운전업체들 중 절반 이상은 쌍용차 출신이 경영하고 있다”며 “경기가 나쁜 건지 경쟁이 치열한 건지 지난해보다 손님이 30%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희생자 직접 지원 필요”
 
쌍용차 출신 노동자들이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지역기업의 외면이나 취업의 눈높이 차이도 있지만 무엇보다 고용개발촉진지역 선정을 비롯한 지역고용 관련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일정한 수준에 있던 노동자들의 소득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하고, 그들의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제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으로 희생당한 노동자를 직접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평택이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선정되면서 평택시는 쌍용자동차와 협력업체 출신 실업자를 위한 직업훈련이나 창업지원 등을 위해 1천278억7천100만원의 추가특별지원금을 노동부에 요청했다. 지역고용유지지원금이나 지역고용촉진지원금처럼 사용자를 통해 간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부는 기존 일자리 사업과의 중복과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

노동부 관계자도 사견임을 전제로 “쌍용차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제도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는 딜레마가 있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충격을 받는 특정 업종이나 기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고용보험 규모 확대 등 고용안정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난해 평택이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선정되는 과정에 참여했던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1년을 지나고 보니 쌍용차 해고자들의 고통이 가장 컸다”며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지역고용개발촉진 제도를 비롯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학태·평택=김은성 기자
    
실직자 직접지원과 형평성의 딜레마
지난해 8월 평택이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선정될 때부터 실직자들에 대한 직접지원 방안이 없다는 것이 한계로 지적됐다.
고용개발촉진지역 선정제도의 근거가 되는 고용정책기본법 제28조에는 ‘실업대책 사업의 실시’ 조항이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해당 지역의 실업자에 대한 직업훈련은 물론 생계비·생업자금·의료비·사회보험료·학자금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실업자에 대한 직접지원을 지원항목에 넣지 않았다.
고용개발촉진지역 제도가 고용보험기금 사업의 일환인 만큼 전국적으로 공통적인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고용보험 사업에 예외를 두기 힘들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김영중 고용노동부 인력수급정책과장은 “평택의 특수한 경제사정을 고려해 다른 지역에도 적용되는 고용보험 사업을 조금 더 확대해 지원한 것”이라며 “특정 지역이나 특정 기업 출신 실직자들에게만 혜택을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하니까 형평성 논란이 발생하고, 특정 기업이 무너지면 해당 지역의 경제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고용개발촉진 제도로는 쌍용차 구조조정과 같은 큰 위기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지역 노사정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예컨대 지역 노사정 협의를 통해 쌍용차 출신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인센티브를 주거나, 쌍용차 퇴직자들의 창업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노조가 참여하는 지역고용협의회를 통해 쌍용차를 대체할 수 있는 기업 창출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학태 ·평택=김은성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