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 15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여기에는 노사 어느 한 당사자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홍 의원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단체협약 해지권이 최근 노사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단체협약 해지를 둘러싼 노사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법 손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여기에는 김성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도 힘을 보탰다. 김 위원장은 최근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하반기 정기 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을 포함해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매뉴얼 개정을 함께 다루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발언을 보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대신 도입된 타임오프가 수술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용자측이 타임오프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온 단체협약 해지권도 함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노조법 제32조3항(단체협약 유효기간)에는 단체협약 해지가 단서조항에 명시돼 있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경과한 후 노사 당사자 일방이 6개월 이전에 상대방에게 통보할 경우 종전의 단체협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조항은 지난 98년 2월 노조법이 개정되면서 신설됐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부당하게 장기화되거나, 새 단체협약 체결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노사 당사자 누구나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할 수 있도록 했지만 주로 이 조항을 활용한 것은 사용자였다. 주로 민간기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지난 2003년 두산중공업 단체협약 해지는 그 후유증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당시 두산중공업은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후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해 노사갈등이 불거졌다. 노조 대의원이었던 배달호씨는 분신자살을 통해 회사측 조치에 항의했다. 단체협약이 해지되면 근로조건과 관련한 규범적 조항은 유지되지만 노조의 권리·의무에 관한 채무적 조항은 효력이 사라진다. 노조가 반발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단체협약 해지는 노조와 조합원에 대한 사용자측의 손해배상청구·가압류와 함께 노조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여겨지게 됐다.

격한 노사대립을 불러 온 단체협약 해지는 두산중공업 사태를 고비로 줄어드는 추세였다. 단체협약 해지가 다시 급증한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부터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을 필두로 공공기관에서 단체협약 해지 바람이 불면서 민간기업으로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공공기관에선 종전 노동조건과 임금체계 변경, 구조조정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달부터 노조 전임자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대신 타임오프가 시행되면서 단체협약 해지카드를 꺼내 든 사용자들도 있다. 한국가스공사와 국민연금관리공단 노사는 단체협약을 잠정합의했다가 사용자측이 이를 번복하고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해 갈등이 장기화된 사례다. 지난해 철도공사는 단체협약 해지를 노조의 파업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민주노총은 최근 3년간 사용자측이 단체협약을 해지한 사업장은 50여 곳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렇듯 단체협약 해지는 장기간 노사분규와 무단협 상태를 불러오고, 결국 노조가 와해되거나 무력화되는 수순을 밟는다. 단체교섭을 다시 벌인다 하더라도 노조가 대폭 양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노조에겐 불리하고, 사용자에겐 유리해 악용될 소지가 큰 셈이다.

무엇보다 단체협약 해지는 노조법에 근거해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노조의 반발을 제외하곤 사용자측의 부담이 없다. 때문에 단체협약 해지를 둘러싼 법정 공방도 드물다. 갈등을 줄이려면 입법적인 해결책밖에 없는 셈이다. 홍 의원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은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노사 중 어느 일방의 교섭 노력에도 상대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단체교섭이 진행 중일 경우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없도록 했다. 단체협약이 해지된 경우라도 새 단체협약이 체결될 때까지의 노동조합 활동과 종전의 단체협약 효력은 유지되는 것으로 명문화했다. 최근 단체협약 해지 사례를 고려할 때 개정안의 내용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무단협 기간에는 노조 활동과 지원이 차단되는 세태를 고려할 때 노사 간 분쟁의 소지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체협약은 수년간 노사가 협상을 통해 쌓아올린 성과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행사의 결과물이다. 단체협약 해지권은 이를 살리는 것이지 깡그리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새 단체협약 체결이 지연되거나 종전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부당하게 장기화되는 것을 막는데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 취지를 살리기 힘들다면 단체협약 해지권을 손질하는 것이 맞다. 홍 의원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이 하반기 정기 국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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