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지난 2009년 한국 노사관계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임금삭감이었다. 경제위기라는 이유로 직접적으로는 임금 동결 내지 일정 임금액 반납, 상여금 지급률 축소 내지 반납, 신입사원 기본급 인하, 일자리 나누기 등을 이유로 한 근로자들의 실질적인 임금 삭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임금삭감이 이루어졌다. 경영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회사들까지도 대거 근로자들의 임금을 축소하거나 동결했다. 결국 자본과 정부가 내어놓은 이번 위기의 해법도 노동자들의 양보와 희생이었던 것이다.
이번 리뷰의 대상판결은 근로자들의 동의각서 내지 노사협의회의 의결을 통한 임금 삭감이 단체협약에 배치되는 경우의 문제다. 단체협약이 존재함에도 개별 근로자들에게 임금 삭감 동의각서를 받아 임금 삭감을 시행한 경우 그 효력을 살펴보도록 하자.

2. 대상판결의 기초 사실관계

이 사건 원고들(이하 ‘근로자들’이라 한다)은 모두 피고 회사에서 운전직으로 근무하는 자들로,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인천지역노동조합(이하 ‘노동조합’이라 한다)의 조합원들이고, 피고(이하 ‘회사’라 한다)는 여객 운송업을 하는 법인으로 인천버스운송사업조합(이하 ‘사업조합’이라 한다) 소속이다.
2002년 노동조합과 사업조합은 단체협약을 통해 상여금을 삭감하기로 합의했는데, 그 시행기간은 2002년 6월1일부터 2004년 5월31일까지 적용하기로 했다.
이후 2004년 5월 노동조합은 사업조합과 단체협약을 갱신했는데, 갱신된 단체협약에는 상여금이 삭감된다는 내용이 없었으며, 상여금과 관련해서는 동일한 내용으로 2006년 6월, 2008년 5월에 각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2009년 1월31일 단체협약이 만료된 이후 2009년 9월 유효기간을 2009년 8월1일부터 2010년 7월31일까지로 하는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이전 단체협약 부칙에는 “본 협약 만료 후 갱신체결 시까지 본 협약을 적용하며 단체협약 해지권은 노사 쌍방의 합의에 의해서만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었다.
한편 회사의 노사협의회는 2004년 8월31일 2002년 단체협약에서 정한 상여금 삭감과 동일한 내용을 2004년 6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시행하기로 합의를 했고, 피고 회사는 2004년 9월9일 근로자들에게 상여금 삭감과 관련한 동의각서를 받았다. 동의각서의 내용은 ① 본 동의서가 2004년 5월 체결된 단체협약 및 합의서의 상여금 조항에 준용한다는 것 ② 상여금 지급 해당 시 각 대상자는 상여금의 일정비율 삭감에 동의한다는 것(회사와 노사협의회가 합의한 상여금 삭감 내용과 동일하다) ③ 동의서의 유효기간은 2004년 6월부터 2005년 12월까지로 하고, 인천광역시 버스공영제 시행시점에 따른 합의서의 조기 파기 및 연장과 관련한 사항은 노사협의회 합의사항을 따르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회사와 노사협의회는 2006년 1월13일, 2007년 6월29일, 2007년 12월28일 각 상여금 삭감 합의사항을 위 2004년 8월 합의와 동일하게 합의해, 인천지역버스 준공영제가 시행되지 않는 경우 그 효력이 2009년 12월31일까지로 돼 있었다.
근로자들은 상여금 삭감 대상 호봉에 도달한 2006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상여금이 삭감되자 인천지방법원에 회사를 상대로 해 2006년 이후 삭감된 상여금의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3. 사건의 쟁점 및 1심 법원의 판단

대상판결의 소송 목적물은 2006년 이후 삭감된 상여금이고, 사건의 쟁점은 단체협약 상여금 조항에 상여금 삭감 내용이 없음에도 회사가 근로자들의 동의각서 및 노사협의회 의결을 이유로 상여금을 삭감한 것이 유효한지다.
법원은 단체협약의 강행적 효력을 적시하면서, 본 사건 근로자들의 상여금 삭감 동의는 “장래 일정시점 이후부터 현재와 동일한 내용의 근로제공에 대해 종전보다 임금을 낮추어 지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며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고 봤다.
결국 단체협약에 정한 임금의 삭감에 대한 근로자들의 동의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단체협약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대상판결에서는 단체협약 변경 절차를 거쳤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근로자들이 상여금 삭감에 동의했다고 해도 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강행적·보충적 효력에 따라 무효이고, 그 무효로 된 부분은 단체협약에서 정한 기준에 의해야 하므로 피고는 원고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4. 리뷰

노조법 제33조(기준의 효력)는 단체협약의 효력에 대해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1항은 “단체협약에 정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기준에 위반하는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의 부분은 무효로 한다”고 해 강행적 효력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때에 단체협약의 기준에 위반한다는 것은 그 기준에 미달하든 상회하든 그 기준과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고, 무효가 되는 것은 근로계약과 취업규칙 중 단체협약 기준에 위반하는 부분이다. 제2항은 “근로계약에 규정되지 아니한 사항 또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무효로 된 부분은 단체협약에 정한 기준에 의한다”고 해 보충적 효력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강행적·규범적 효력은 근로조건에 대한 부분에만 한정된다.
단체협약의 강행적·보충적 효력은 개별 근로계약의 당사자 중 일방으로서는 불리한 지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근로자들이 그들의 결사체인 노동조합을 통해 보다 평등한 관계에서 근로조건을 정하고, 그 단체협약에 위반하는 개별 근로계약 등을 변경시키도록 하는 것으로,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하여 노동법이 특별히 단체협약만에 부여한 효력이다.
대상판결에서 법원은 근로자들의 동의각서를 근로계약의 일부로 보고, 불이익하게 근로조건을 변경한 근로계약은 단체협약의 강행적 효력에 따라 무효가 된고 단체협약이 적용된다고 보았다. 단체협약의 효력상 당연한 것으로, 단체협약에 반하는 근로계약이 무효이고 그 무효로 된 부분은 단체협약이 적용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여기서 노동조합의 합의와 노사협의회 등 기타 단체의 합의의 효력이 다름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근로계약은 입사시 체결한 근로계약서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수령하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계속적인 종속노동 관계에서는 구두든 문서든 다양한 형태로 근로조건에 대해 합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이것이 개별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합의라면 모두 근로계약이다. 즉, 단체협약이 존재함에도 개별근로자와의 합의를 통해 근로조건을 저하시키려는 모든 경우는 노조법 제33조가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시사하는 바

대상판결은 1심 법원의 판단이다. 이미 고등법원에 항소장이 제출돼 있다. 상급법원에서 종국적으로 어떻게 판단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본 대상판결은 노사협의회를 통한 임금 삭감 합의의 효력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단체협약에 반하는 노사협의회 의결을 통한 임금 삭감의 경우도 당연히 임금 청구권이 인정될 수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초반대인 이 나라에서 대단히 많은 노사협의회가 노동조합의 자리를 대신해 회사와 함께 임금인상률을 결정하고, 근로시간을 정하며, 복리후생을 결정하고 있다. 일부 노사협의회는 버젓이 임금 삭감과 인원정리에 대해서도 합의한다. 노사협의회는 노동조합이 아니다. 따라서 근로조건의 결정에 대해 노동조합과 같은 권한은 가질 수 없다. 노사협의회가 행한 근로조건의 결정이 노동조합 내지 근로자 대표로서의 결정이 아님은 수차 사법부를 통해 확인됐다. 이제 노사협의회가 아닌 노동조합이 그 자리를 되찾을 때도 됐다.
노동조합이 합의한 상여금 삭감 합의의 효력은 어떠할까? 이는 본 사건에서 판단의 대상이 아니었다. 임금채권의 소멸시효가 단기 3년이어서 소송의 목적물이 되지 않았겠지만, 만약 시효 이내에 있었다고 해도 노동조합은 임금 삭감을 당연히 합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확률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노조법상 노동조합이란 “근로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라고 정하고 있다. 즉 근로조건의 개악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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