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달 1일부터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에 관한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시행됨에 따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조합은 ‘노사자율 보장’을 외쳤다. 개정 노조법의 타임오프 제도는 노사자율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노사자율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한겨레·경향 등 친노동 언론도 노사자율 보장을 사설로써 말하고 있다. 민주당 등 야5당도 노사자율을 보장하라고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노사자율 보장이 노동운동의 구호가 됐다. 그럼 필자도 외쳐 보겠다. “노사자율 보장하라.”

2. 개정 노조법은 그동안 단체협약 등에 의해 노사합의로 보장됐던 전임자급여 지급을 금지했다. 그리고 예외적으로 고시된 타임오프 한도에서만 허용했다. 그래서 지금 노동운동의 구호는 ‘노사자율 보장’이다. 개정 노조법 시행 이전처럼 전임자급여 지급에 관해 노사합의로 정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외친다. 전임자급여 지급을 금지한 노조법을 폐지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필자는 함께 외쳐 본다. “노사자율 보장하라.”

그런데 많은 사업장에서는 고시된 타임오프 한도 범위에서 사용인원과 사용시간에 관해 사용자와 교섭을 진행하다가도 “노사자율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노동부 매뉴얼과 노동부 지도감독을 내세워 사용자가 타임오프에 관한 교섭에서 노조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는 “노사자율 보장”을 외친다. 그동안 제공해 오던 노조에 대한 각종 편의제공을 거부하고 근무시간 중 유급 조합활동을 보장하지 않겠다고, 개정 노조법 시행을 계기로 노조가 확보한 조합활동 권리를 폐지하겠다고 사용자들이 개악안을 들고 나왔다. 이에 관해 노동부가 매뉴얼로 작성·배포해서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노조는 ‘노사자율 보장’을 교섭장에서 소리 높여 외친다.

지난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타임오프 제도의 법적 문제에 관한 토론회를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타임오프에 관한 개정 노조법에 관한 해석과 노동부 매뉴얼에 관한 비판을 위한 자리였다. 여기서도 ‘노사자율 보장’을 발제하고 토론했다.

3. 지금 어디에서나 노동조합은 ‘노사자율 보장’을 외친다. 노사자율 보장이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한다. 그래서 지금 모두가 노사자율 보장을 외쳐 댄다. 노동조합의 권리는 ‘노사자율 보장’을 외쳐야 보장된다고 하늘 높이 외쳐 댄다. 나아가 노동기본권도 노사자율 보장을 외쳐야 쟁취된다고 땅이 꺼져라 외쳐 댄다. 그런데 그럴까. 과연 그런 것일까. 노동기본권은 노사자율 보장에 의해 보장되거나 쟁취되는 것일까.

지금 노사자율 보장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도 함께 외치는 구호다. 개정 노조법에 관한 교섭을 진행하면서 노동부 감독을 받는 사업장의 사용자들조차 노조 교섭대표들에게는 노사자율 보장이 자신들의 원하는 것이라고 귓속말하고 있다. 누구나, 노조든 사용자든 노자의 계급적 이해와 무관하게 외쳐 대는 구호가 ‘노사자율 보장’이다. 국가권력에 대해 노사가 함께 외칠 수 있는 구호가 ‘노사자율 보장’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노사자율 보장을 외친다.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노사자율 보장을 외친다. 바로 이것이 우리 노동운동이 서 있는 위치를 말해 준다. 우리 노동운동은 ‘노사자율 보장’을 자신의 요구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호에는 계급이 없다. 이 요구에는 계급적 이해가 없다. 노사가 공존하는 사업장과 그 위에 서 있는 노동조합만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노사자율 보장’을 외칠 수 있다. 그래서 과거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일명 로드맵)으로 노조법 개악을 추진했던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노사자율 보장’을 외칠 수 있다. ‘노사자율 보장’을 외쳐서 보장되는 것은 무엇인가. 노사자율을 침해하는 노동부의 타임오프 매뉴얼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되고 나아가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한 개정 노조법이 폐지되는 것이다. 지금 전임자급여 지급금지 등 노동기본권 행사의 제한을 제한하게 된다. 노동기본권 행사의 보장을 위해 노동운동은 한걸음 전진하게 된다. 그렇다면 ‘노사자율 보장’은 노동운동의 실용적인 구호일 수 있다.

그러나 ‘노사자율 보장’이 노동운동의 올바른 구호일 수 있을까. 개정 노조법에 의해 무엇이 침해되는가, 당신의 눈에는 무엇이 침해되는 것이 보이는가. 노동자와 노조가 아닌 자의 눈에는 국가 입법에 의해 노사자율이 침해되는 것이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동자와 노조의 눈에는 노동조합 활동 보장이, 노동기본권 행사의 보장이 침해되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 노사 당사자가 아닌 교수와 변호사는 노사자율 보장을 침해한다고 학설과 변호를 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주 토론회에서 그랬다. 노사정의 공동기구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는 개정 노조법과 관련해 노사자율의 침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 실제로 개정 노조법에 관한 논의에서 그랬다. 노사정의 국제공동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는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한 노조법이 노사자율을 침해한다고 권고할 수 있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는 한국정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노동자와 노조는 아니다. 그렇게만 보여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다. 헌법은 노사자율 보장을 위해서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다. 수많은 교수·변호사 등 전문가들은 노동자의 단결을 통한 노사자치 보장 운운하면서 헌법의 노동기본권을 훼손했다. 노사자치·노사자율·협약자치 등 다양한 언사로써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은 노사 자율적인 합의 보장으로 추락했다. 노동자와 노조는 노사자율 보장을 위해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것이라고 이들에 부화뇌동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의 노동기본권은 1948년 보장된 것이지만 적어도 150년 이상의 국제노동운동과 세계 노동자의 투쟁이 담겨 있는 것이다. 비록 대한민국의 노동자의 투쟁에 의해 쟁취된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노동자에게 보장됐다. 바로 이것은 국제노동운동에, 세계 노동자들에게 우리 노동자들이 빚지고 있는 것이다. 헌법이 노동기본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고 노사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노사자치·노사자율·협약자치 등이 노사관계법 질서의 주요한 해석원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그보다 더 나갔고 그렇게 대한민국은 수립됐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는 국가는 단순히 노사자율 보장하기 위해 노조법 등을 입법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기관은 입법하고 집행해야 한다. 그러나 노조법을 통해 국가권력은 전임자급여 지급을 금지하고 고시된 타임오프 한도로 노동조합 활동을 제한했다. 헌법이 보장한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제한했다. 따라서 노동기본권 행사의 보장을 위해서는 개정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 노사자율 보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기본권 행사의 보장을 위해 노조법의 제한은 제한돼야 한다.

4. 지금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와 타임오프에 관한 개정 노조법 시행 등에 맞서 노동기본권 사수를 위해 단식농성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요구는 개정 노조법의 개정을 통해 쟁취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단식농성이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한 노조법을 제한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는 민주노총의 투쟁, 이 나라 노동운동에 달려 있다. 개정 노조법의 개정을 위해 ‘노사자율 보장’을 외칠지 ‘노동기본권 보장’을 외칠지, 단순히 ‘노사자율 보장’을 넘어 ‘노동기본권 보장’으로 나아갈지는 이 나라 노동자들의 투쟁에 달려 있다. ‘노동자’가 외치지 않는다면 ‘국민’을 부를 수밖에 없다.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기본권의 행사 보장을 위해 ‘노사자율 보장’을 말하고 ‘국민’에게 호소해도 노동자는 뭐라 할 말이 없게 된다. 그러나 노동자가 아닌 ‘국민’이 쟁취하고 지켜 낸 노동기본권은 노동자가 그리는 노동자의 기본권이 아닐 수 있다.

5.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한 노조법은 97년 노조법 제정을 통해 입법됐고 2003년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의 발표와 그에 따른 입법논의를 거쳐 2010년 1월1일 노조법 개정을 통해 지난 7월1일부터 시행됐다. 97년 신한국당에 의해 입법화됐고, 2003년 새천년민주당, 그 뒤 열린우리당은 2007년부터 시행한다고 했다가 2006년 말 다시 2010년부터 시행하기로 했고, 2010년 한나라당에 의해 시행됐다. ‘국민’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은 역시 ‘국민’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한 노조법을 가지고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농락했다.

이제 다시 민주당은 집권을 위해 노동자를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하기 위해 “노사자율 보장하라”고 외치며 노조법 개정을 말하고 있다. 노동자는 ‘국민’이 아닌 ‘노동자’로 조직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사자율 보장’을 내세워 노동기본권 행사는 제한될 수 있다. 민주당 정권에서 합리적 노사관계 구축을 내걸고 로드맵, 즉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을 통해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하고자 했던 것처럼. 그래서 “노사자율 보장하라”고 지금 노동운동이 외치는 대로 따라 외쳐 댔지만 필자는 자꾸만 의심스럽고 두렵다. 당시 로드맵안을 만들었던 교수들이 오늘 개정 노조법을 비판하는 것을 볼 때면 ‘노사자율 보장’이 자꾸만 의심스럽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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