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문제가 또 터졌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파문의 중심에 섰다. 주로 공무원과 공기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부패와 부조리를 감시하고 예방하는 곳이다. 그런 곳이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조사하고, 경찰과 검찰에 사법처리까지 요구한 것이다.
특히 민간인 사찰 피해자에 노동계 인사가 포함된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시민단체와 진보단체 주요 인사에 이어 기업인과 노동계 인사까지 사찰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해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국가정보원이 주요 기업과 단체를 통해 자신을 불법 조사하고 다닌다”고 폭로했다. 이번에는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와 배정근 한국노총 공공연맹 위원장이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사찰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2008년 촛불집회 후 사찰을 받았다는 데 있다. 시민단체 주요 인사인 박원순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이었으며, 촛불집회 지지자였다. 국가정보원이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주요 기업을 압박하고, 관련 시민단체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김종익 전 대표의 사찰 사례와 유사하다. 김 전 대표도 촛불집회 후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대상 목록에 올랐다.

배정근 공공연맹 위원장의 사례는 다르다. 배 위원장이 밝힌 사찰 시점은 지난해 12월이다. 그 시점은 정부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을 두고 노동계와 각을 세우던 때였다. 당시 노조법 개정을 밀어붙이던 청와대와 정부가 이를 관철하기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는 게 배 위원장의 주장이다. 실제로 이인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은 공식 보고체계를 무시하고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직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배 위원장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런 정황 탓이다. 이를 고려하면 노조법 개정을 비판해 왔던 한국노총 내 다른 주요 인사들도 사찰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맺은 한국노총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 내의 특정인맥(영일·포항)의 권력 사유화와 전횡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민간인 사찰에 연루된 이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처벌해야 한다. 꼬리 자르기 식으로 몇몇 책임자만 문책하는 방식은 안 된다. 국무총리실에서 관련자 4명에 대해 국가공무원법상 복무규정 위반으로 검찰수사를 의뢰했는데 이는 사안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다. 파문을 축소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특히 검찰은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뒤 김종익 전 대표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혐의를 인정했다는 것인데 이는 검찰조차도 불법 사찰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검찰조차도 어떤 방식으로든 민간인 사찰과 연루된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검찰조사로는 한계가 분명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때문에 시민단체는 이번 사건에 대해 국정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공감한다. 특정인맥의 권력 사유화와 일탈로 사건을 축소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민간인에 대한 불법적인 조사와 감시, 즉 권력의 불법사찰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것처럼 공기관 직원이 민간인을 비밀리에 쫓아다니며 불법적으로 조사하고 감시하는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감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진보네트워크는 정부기관이 인터넷 회선 전체를 감시하는 방식인 ‘패킷감청기술’을 동원해 민간인을 사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패킷감청기술을 이용하면 이메일뿐만 아니라 메신저·블로그·트위터 등 모든 통신내용을 감시할 수 있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지난 3월 한국을 ‘인터넷 검열 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렇듯 사람에 대한 직접적 조사와 감시뿐 아니라 사이버공간에서도 불법사찰이 있었다는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김종익 전 대표나 배정근 위원장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권력기관의 불법 감시와 조사 행태를 낱낱이 밝혀내고, 이를 근절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