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물질 노출기준은 동물실험 결과 사람에게서 나타난 건강영향의 증거들, 유해물질 독성자료, 그리고 역학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노동부는 작업현장에서 위험한 물질을 취급할 때 작업환경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관리하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노출기준’을 제정해 작업환경을 관리하도록 한다. ‘화학물질 및 물리적인자의 노출기준’이라는 이름으로 약 700종에 이르는 화학물질과 각종 분진류·소음·온열과 같은 유해인자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출기준은 안전한 기준일까. 그렇지 않다. 노동부도 고시에서 “유해인자에 대한 감수성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노출기준 이하의 작업환경에서도 직업성 질병에 이환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신중히 적용하라”고 제시했다. 노동부의 노출기준이 참고한 미국정부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American Conference of Governmental Industrial Hygienists, ACGIH)의 노출기준(Threshold Limit Value, TLV) 서문에도 TLV는 대다수 노동자들이 매일 노출돼도 건강영향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믿어지는 수준이지만 안전한 상황과 위험한 상황을 가르는 기준은 아니라고 명확하게 밝혔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이 기준을 안전과 위험을 가르는 절대선으로 여기고 측정 결과 기준 이하의 농도로 확인되면 면죄부 기능을 하는 일이 많다. 노출기준 미만이라는 평가는 측정대상 공간을 ‘환경개선 대상’ 목록에서 ‘개선 열외 대상’으로 좌천시키는 추천서 같은 기능을 한다. 그래서 다음처럼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소음 측정 결과, 90 가청데시벨(dBA)이었는데 이 경우 기준 초과인가. 아닌가."(노동부의 소음 노출기준은 90dBA)
“90dBA는 90dBA 이하이므로 초과가 아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면.

이 에피소드의 핵심은 소음의 크기가 이미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측정결과가 노출기준의 선을 넘었는지에만 관심이 집중돼 소음으로 발생하는 현재 위험의 크기와 심각성을 파악하려는 문제의 본질을 놓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례들이 현장 곳곳에서 유사하게 재연되고 있다. 노출기준을 초과하지 않는 한 환경개선의 여지는 아득히 멀어진다.

유해물질 노출수준과 노출기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현실에 어떻게 적용시키는 것이 합리적일까. 앞서 노출기준은 다양한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결정된다고 했지만 실은 과학적 사실 이외에도 당시의 정치·경제 변수들이 고려돼 최종적으로 노출기준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석면 노출기준 설정이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 86년 석면 노출기준을 0.2개/세제곱센티미터로 하향 조정할 때 그 수준에서도 석면 관련 암 사망이 여전히 위험한 수준이라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미국 노동부는 경제·기술의 어려움으로 그 이하로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각계의 비판을 검토해 0.1개/세제곱센티미터로 낮췄지만 이 수준에서도 1천명 중 2명의 석면 관련 암 사망이 예측되는 위험한 수준이기는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단기간 기준의 추가 설정과 석면 관련 작업절차 마련 같은 추가 기준을 통해 불완전한 노출기준을 보완했다.

이처럼 유해물질 노출기준은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지만 그것을 지켜 낼 수 있는 현실 여건을 고려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안전과 위험을 가르는 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미국 등에서 적용하는 액션 레벨(Action Level)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액션 레벨은 노출기준의 절반 수준을 의미하는 기준이다. 유해물질의 농도가 노출기준의 절반이라는 것은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향후 노출기준을 초과할 수 있는 위험이 충분하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노출수준을 줄이려는 실천이 필요한 수준을 액션 레벨이라는 이름으로 설정해 둔 것이다.

위의 에피소드에서 “90dBA는 이미 소음의 측면에서 위험한 상황이므로(소음 90dBA의 절반 수준은 85 dBA) 소음을 줄이기 위한 액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유해물질의 노출기준은 위험이 시작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지켜보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위험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상황을 미리 판단하고 예측해 유해물질로부터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노출기준에 얽매이다 보면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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