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가 1일 시행됐다.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타임오프 무력화 투쟁을 선언했고, 금속노조 다이모스지회 등 일부 사업장에서는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 한국노총 사업장에서도 갈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의 타임오프 강요'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계 내에서는 벌써부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재개정 요구가 나온다. 정부와 경영계는 노동계의 투쟁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중하게 대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타임오프 제도’에 관한 노사정의 입장을 들어본다.


“타임오프 제도, 노조무력화 도구로 활용돼”
한광호 화학노련 위원장




50인 미만의 힘없는 작은 사업장에 대해 사측이 무차별 공격을 하고, 가장 활발히 활동했던 300인 안팎의 중간 규모 노조들도 쟁의조정 신청을 고민하는 등 갈등에 휩싸여 있다. 심지어 노사관계가 좋았던 사업장조차 타임오프로 인해 없던 갈등이 새롭게 생기는 등 현장이 극도의 혼란으로 빠져 들고 있다. 사측도 노동청의 무리한 관리감독으로 인해 부담을 호소하는 곳이 적지 않다.
타임오프 제도는 전임자임금 지급을 금지하면서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현장에서는 타임오프를 빌미로 사측이 단체협약 해지 등을 요구하며 노조 무력화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타임오프 제도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법리적 해석이 정리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타임오프 제도로 인해 노사갈등이 계속 불거질 것이다.
유럽의 타임오프 제도처럼 노조 활동에 대해 최소한의 하한선을 정하고 나머지는 노사 자율에 맡겼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타임오프 제도로 인해 노조활동의 근간조차도 위태로워질 지경이다. 기존에 전임자가 있었던 건 사측도 전임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한국 특유의 노사문화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단계적으로 제도를 시행해야 하는데 정부는 한꺼번에 모든 걸 다 바꾸겠다는 태세로 달려들고 있다. 현재 상급단체 파견전임자 임금을 노사발전재단이 후원금을 받아 지원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 또한 말이 안 된다.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노조법 재개정이 가능하다면 노조 활동을 제약하지 않고 노사 자율로 협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노조 무력화 매뉴얼이 ‘법대로’인가”
송성호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부지부장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지부·지회 전임자들은 7월1일부로 무급휴직으로 처리됐다. 총회·대의원대회·임원선거 같은 일상적인 조합 활동도 회사측에 사전 허락을 받아야 무급으로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노무주관팀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해당 조합원은 무단이탈로 간주돼 징계대상에 오른다. 노사 합의를 통해 지부·지회에 제공됐던 각종 지원도 이날부로 모두 끊겼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금지했을 뿐이다. 노사가 해를 거듭하며 합의해 온 각종 합의사항을 파기하라고 명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일상적 조합활동까지 심각하게 제약하는 타임오프 매뉴얼을 내놨고, 회사측은 이를 바탕으로 ‘근태관리 매뉴얼’을 작성했다. 회사는 “법대로”를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지금의 상황은 법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노조의 존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지부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투표자 대비 71.9%, 재적 조합원 대비 65.7%의 높은 찬성률로 가결했다. 노조법이 노조를 무력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 속 문제로 표출되기 시작하면서 조합원들의 분노가 모아지고 있다.
회사측은 현재 전임자 관련 조항만 따로 떼어 내 별도의 교섭을 벌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의무교섭사항을 임의교섭사항으로 전환하자는 데 동의할 노조는 없다. 회사는 지금이라도 임금·단체협상 테이블에 나와 지부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다소간 혼란은 불가피, 그러나 법은 지켜야”
박종남 대한상공회의소 상무




오랜 노사관계 관행을 바꾸는 데는 다소간의 혼란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진 이상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노동계도 법 개정 과정에서 의견을 피력했고 그런 것들이 수렴돼 법이 만들어진 것 아닌가. 지금 와서 만들어진 법을 지키지 않겠다고 투쟁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일부 사용자들이 노조의 압력에 밀려 이면합의나 편법합의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없다. 그런 것이 있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도 회원사에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노사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는 합의는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정부도 국가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 법만 만들어 놓고 실행 과정에서 뒷짐 지고 앉아 있으면 안 된다. 부당노동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말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지도를 해야 한다. 노사갈등을 유발하기보다는 노사가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지도가 중요하다. 지금은 법·제도 정착의 과도기다. 다소간의 혼란을 겪고 나면 합리적인 노사관계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매뉴얼과 노사정위 논의로 현장정착 기대”
이재갑 노동부 노사정책실장


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근로시간 면제한도 적용 매뉴얼’은 행정부처 나름대로의 해석을 담은 것이다. 노동부는 매뉴얼을 가지고 현장을 지도할 것이다. 매뉴얼만으로는 타임오프 제도가 현장에 정착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구성한 것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사문화선진화위원회다. 노사정과 공익위원들이 제도의 현장 정착을 위해 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매뉴얼과 지방노동관서의 점검, 노사정위 논의라는 두 가지 틀을 통해 새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7월이 지나면 제도의 윤곽이 잡히면서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야당에서는 노조법 재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법 개정은 국회의 몫이니, 정치권에서 제기는 할 수 있다고 본다. 노동부 입장에서는 진통 끝에 만들어진 법이니 만큼 집행을 하는 것이 맞다. 다만 이제 막 시행하는 단계에서 재개정하자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 제도가 현장에 정착되는 과정에서 도리어 혼란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임자수 줄이는 합의 말아야”
김기덕 변호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타임오프 제도 시행에 따른 노사 갈등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노조법에 따르면 7월1일부터 바뀌는 것은 전임자임금에 관련된 것으로 한정된다. 하지만 사용자와 노동부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던 모든 지원을 중단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사용자가 의지만 있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전임자임금만 금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지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이 강경하다면 어떤 방안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노조법은 전임자임금에 대해서만 언급했지, 다른 지원은 과거와 동일하다. 노조 지원과 관련해서는 바뀐 것이 없다. 법에 따르면 7월1일 이전에도 이후에도 노조 지원은 부당노동행위다.
그럼에도 노조 지원은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 노동부는 지금까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를 계기로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겠다고 나서는가. 이번을 계기로 노조 통제에 나서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타임오프 제도와 관련한 법적 분쟁은 불가피하다. 전임자임금과 관련한 자동연장조항이나 유효기간 등 분쟁소지가 많다. 노조는 지금부터라도 법적 분쟁에 대비해 준비해야 한다. 전임자 처우와 관련해 관행적으로 인정됐던 것에 관한 근거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별도 합의서나 회의록 등도 정리해 놓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노동부 매뉴얼의 근로시간 면제한도 범위 내로 전임자수를 줄이는 방법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용자나 정부가 원하는 것이다. 나중에 노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급여지급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전임자 처우를 확보해야 한다. 전임자수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임금지급 문제가 있지만 활동에는 제약받지 않는다. 파업을 벌이더라도 어차피 무노동 무임금이므로 위축될 필요는 없다. 정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