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시간근로가 하반기 고용정책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양질의 파트타임 활용 증대’에 합의했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다. 노동부와 기획재정부는 ‘상용직 단시간근로 확대’를 인력 미스매치 해소 등과 함께 하반기 주요 고용정책으로 내걸었다. 핵심 고용지표인 고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유력한 방안이라고 한다. 어느새 ‘좋은 일자리 제공’과 ‘비정규직 양산’ 사이의 논쟁은 가라앉고, 시행하는 일만 남은 듯한 분위기다. <매일노동뉴스>가 정부가 추진하는 단시간근로 확대정책을 분석했다.

“우리나라 고용환경에서 단시간근로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선행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주경미 광주여성노동자회 회장)
“근로자는 생계를 위해 연장근로를 하고 있고, 기업들은 채용관행 고착화 등의 상황에 처해 있다. 근로자와 기업 모두 단시간근로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윤영현 광주경영자총협회 사무국장)
 
지난 22일 노사발전재단이 광주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개최한 ‘단시간근로 일자리 창출·확산을 위한 권역별 워크숍’에 나온 노사 관계자들의 발언이다. 정부가 단시간근로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노동계와 경영계의 반응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은 지난 14일부터 전국을 돌면서 단시간근로 워크숍을 하고 있다. 단시간근로자를 채용하고 싶거나 채용하는 기업에 컨설팅 비용과 임금의 절반을 지원한다. 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은 △중소병원 △금융 △유통·판매 서비스 △콜센터 직종 △제조업 △사회복지 등의 업종이 포함된 50개 기업을 선정할 예정이다.  이들 기업에 단시간 직무개발·단시간근로자 인사관리 등에 대한 컨설팅을 실시할 계획이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연말께 우수사례를 발굴해 매뉴얼을 제작·배포하고, 기업들이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을 개선하는 데 참고하도록 할 예정이다.

그런데 정부가 발표한 보도자료나 노사발전재단의 워크숍 자료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업장이 있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과 청주의료원이다. 정부는 “의료보건 분야나 사회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민간부문의 단시간근로 채용을 유도하겠다”며 두 병원을 예로 들었다. 

노사발전재단 자료에도 ‘야간전담근무 간호사 채용’과 ‘업무집중 근무시간대 단시간근로자 채용’(청주의료원)이라는 대목이 있다. 마치 두 병원이 야간이나 업무집중시간대에 일할 단시간근로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 두 병원의 사례는 그리 모범적이지 않다.
 
모범사업장, 알고 보니 ‘실패작’
 
두 병원 사례가 정부 자료에 빠지지 않는 것은 지난해 4~6월, 지금은 없어진 한국노동연구원의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코윈센터)가 두 병원을 상대로 단시간근로 시범실시를 위한 컨설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서신의학병원의 경우 병원 관계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만 진행했을 뿐, 컨설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청주의료원은 컨설팅을 받은 뒤 업무집중 근무시간대에 단시간근로자를 채용했지만, ‘상용직’이 아니라 ‘임시직’이었다.

코윈센터가 청주의료원을 상대로 컨설팅을 한 것은 중소병원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간호사들이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찾아 대형병원으로 이동하는 일이 잦은 데다, 야간근무가 많은 업무의 특성상 출산·육아로 어려움을 겪다 그만두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가정 양립형 단시간근로를 도입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그나마 채용한 게 ‘단시간 비정규직’
 
그러나 코윈센터가 병원 내 전 직군을 3개월 동안 컨설팅한 결과, 노동계와 경영계가 상용직 단시간근로 확대에 반대한 이유가 확인됐다. 병원들은 병상수 대비 간호사수에 비례해 정부로부터 간호 관리료(건강보험 수가)를 받고 있다. 간호사 관리료 산정방식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만 해도 병원이 시간제 간호사를 고용하면 근무시간에 따라 0.4~0.8명으로 인정됐다. 출산휴가자를 대체하는 시간제 간호사는 0.4~1명까지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를 청주의료원에 적용하면 단시간 간호사를 채용할 경우 정규직 간호사를 채용하는 것보다 관리료를 더 적게 받는다. 예를 들어 주 30시간 미만을 근무하는 시간제 간호사 2명을 채용하더라도 0.8명만 인정받는다. 정규직 1명을 채용하는 것보다 관리료가 적을 수밖에 없다. 특히 중소규모인 청주의료원이 단시간 간호사를 신규채용하면서 추가로 드는 인건비를 부담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 경영계가 상용직 단시간근로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다.

코윈센터는 지난해 7월 노동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현 제도하에서는 단시간근로 도입이 어렵다”며 “필요성은 확인된 만큼 관련 제도개선 등이 이뤄진 뒤 다시 도입을 고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병동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야간업무를 전담하는 단시간근로자를 채용하는 방안도 컨설팅 과정에서 제시됐지만, 마찬가지로 간호 관리료 산정시에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사들도 아침이나 낮에만 근무하면서 뒤따르게 되는 급여감소를 원하지 않았다. 코윈센터는 “한꺼번에 야간전담제를 도입하기보다는 필요시 차근차근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건강검진센터나 천식·아토피검진센터 등 특정 시간대에 업무가 집중되는 직무에 단시간근로를 도입하자는 방안도 검토됐다. 코윈센터는 총 17명의 단시간근로자가 필요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청주의료원이 채용한 인원은 7명뿐이었고, 전부 계약직이었다.

사용자들이 고용이 안정된 상용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선호할 것이라는 노동계 우려가 적중한 셈이다. 코윈센터는 “애초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자칫 비정규직 양산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단시간근로자의 정규직 채용을 장려할 수 있는 지원제도가 필요하다”고 노동부에 보고했다.
 
획기적인 정부지원책 필요
 
정부는 코윈센터의 보고를 단시간근로 도입을 위한 대책에 반영했다. 보건복지부는 간호 관리료를 산정할 때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무기계약직 간호사를 0.8명에서 1명으로 확대 인정하기로 하고 지난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주 32시간 이상 일하는 야간전담 간호사의 경우 주 4일 이상 일해야 1명으로 인정했던 요건을 삭제했다.

사용자들이 상용직 단시간근로를 확대하는 데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업계의 반응은 신통찮다.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의 노동조건 차이가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중소병원에서 채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야간근무가 힘들어 직장을 떠난 전직 간호사들이 다시 야간노동을 하려고 직장에 복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상용직 간호사를 채용하는 병원은 늘 수 있겠지만 원하는 만큼 인력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대책도 사용자들에게 상용직 단시간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는 요인을 제공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노동부는 단시간근로자를 새로 고용하는 사용자에게 임금의 절반을 1년 동안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경영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황인철 한국경총 기획홍보본부장은 “상용직을 채용할 경우 지원받는 임금보다 새로 부담해야 하는 4대 보험 비용이 더 많다”며 “상용직 단시간근로에 대해서는 노사정위 회의에서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장시간노동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노사가 상용직 단시간근로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나마 취지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임금뿐 아니라 사회보험 비용 등 기업에 대한 대폭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애매한 노사정 합의, 갈등만 부르나
노동계 “개입하는 순간 이용당하기 십상”
단시간근로가 늘어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를 예상할 수 있는 통계나 실태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정규직 파트타임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는 네덜란드와 미국·일본 등 해외사례만 있을 뿐이다.
지난 8일 노동시간 단축과 파트타임 등 근로형태 다양화에 합의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근로시간·임금제도 개선위원회도 1년의 논의기간 동안 산업현장에 대한 실태조사는커녕 수요조사도 한 번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그나마 단시간근로만을 주제로 한 발제가 한번 있었는데, 모두 해외사례였다. 어렵사리 도출된 노사정 합의문은 애매한 문구로 채워졌다. 정부가 당초 강조했던 ‘상용직 단시간근로’라는 말 대신 ‘양질의 파트타임’이라는 말이 들어갔다. ‘상용직’이라는 단어에 재계가 반발했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틈만 나면 강조했던 ‘근로형태 유연화’라는 말이 빠지고 ‘다양한 근로형태’라는 단어가 포함됐다. 노동계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24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상용직) 단시간근로 활성화’나 ‘유연안정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정부는 연내에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노사정 갈등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삼태 한국노총 기획정책실장은 “단시간근로를 통해 고용률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애초부터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기존 정규직의 일자리를 대체하거나, 고용이 불안한 단시간근로제는 도입하지 말도록 현장에 지침을 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은 “일과 가정 양립 등 애초 취지를 본다면 긍정적인 점이 있지만, 대화에 인색한 현 정권하에서 (유연화만 강조되기 쉬운) 이런 의제에 노동계가 개입하는 순간 이용만 당하기 십상”이라고 우려했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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