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의 발언으로 촉발된 메가뱅크(Megabank, 초대형은행) 논란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우리금융과 산은지주 인수를 추진하겠다던 어 내정자가 발언 수위를 조절했기 때문이다.

어 내정자는 지난 22일 “당장 은행 인수에 참여할 수 없으며, 참여하더라도 1년 반은 소요될 것”이라며 “더 우선적인 과제는 KB금융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 내정자는 또 “당장은 경영효율화를 통해 이익을 늘리고 주가를 높이는 것이 급하다”고 강조했다.

일단 어 내정자의 발언을 보면 우리금융이나 산은지주에 대한 인수합병 추진을 철회한 것 같지는 않다. 은행 인수에 참여하더라도 1년 반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거론한 것을 볼 때 그렇다. 어 내정자는 “국외에서 원전을 수주할 때 우리나라 은행들은 보증을 설 수 없다. 보증을 설 수 있는 50위권에 드는 국내 은행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메가뱅크 필요성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는 한 어 내정자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은행 민영화 논의가 본격화하면 메가뱅크 논란은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어 내정자나 은행권의 이러한 분위기는 국제적 추세와 동떨어져 있다. 최근 국제사회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메가뱅크를 규제하는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오는 11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참여 국가들은 은행세 도입과 함께 규제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초 부산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그쳤지만, 11월 회의에서는 합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메가뱅크의 대마불사와 연쇄파산 구조를 개혁하는 규제방안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은행권의 메가뱅크 논의는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11월에 열리는 G20 회의 주최국으로서 회원국가의 의견을 조율해 규제방안을 도입해야 하는 한국 정부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메가뱅크는 어울리지 않는 방안이다.

이젠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이후 팽배했던 대형화·겸업화·효율화라는 신자유주의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모색해야 할 때다. 국제사회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금융거래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듯이 우리도 은행세를 포함한 규제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메가뱅크냐 아니냐’라는 논의 틀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국내 최대은행의 수장인 어 내정자부터 시대착오적 메가뱅크 발언을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 정부도 G20 주최국으로서 시장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메가뱅크와 관련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그간 노동계는 대량 감원을 우려해 메가뱅크에 대해 반대했다. KB국민·신한·하나은행 주도로 매물로 나온 우리·외환은행을 인수합병할 경우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1만명 이상 감원될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이를 뒷받침했다. 외환위기 이후 퇴출과 합병으로 은행권의 경우 33개 은행이 18개로, 23만명의 종사자는 15만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정규직은 줄고, 4만명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은행권 짝짓기가 가시화되면 감원 태풍과 구조조정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부 시중은행에서 “정권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면 도토리 키재기식 합병보다 대형은행 간 합병이 필요하다”며 “가급적이면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나온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 노동계가 파업을 벌였지만 대형화를 막지 못한 탓에 체념적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금융 노동계가 아무리 메가뱅크에 반대하더라도 경쟁논리가 지배적인 현장 정서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우선 메가뱅크라는 지배적인 담론지형을 바꿔야 한다. 국제적 논의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 노동계가 나서 은행세 도입과 전반적 규제방안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보는 것은 어떨까.

때마침 금융권 노동계를 중심으로 결성된 ‘금융규제 강화와 투기자본 과세를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가 다음달 7~8일 G20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규제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과 한국노총 금융노조 관계자가 참여한다. 노동계는 탈법·투기 금융거래를 규제하는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데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금융노조 산하 대형지부인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지부가 함께 투쟁본부를 구성해 메가뱅크 논의에 공동대응한다고 하니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주도권 다툼으로 점철된 인수합병 논란에서 벗어나 자금중개 기능 강화라는 은행 본연의 역할과 공공성 강화라는 담론 형성에 두 지부가 힘을 싣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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