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은 지금 폭풍전야다. ‘은행권 삼성전자론’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메가뱅크론자인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이 KB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되면서 ‘은행권 삼성전자론’이 확산되고 있다. 어 내정자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세계 50위권 은행이 필요하다”며 대형화 본심을 드러냈다. 시장에서는 공공연하게 우리금융그룹과 외환은행 등을 놓고 인수 시나리오가 돌고 있다. 정부는 이달 말 우리금융 지분매각 공고를 내고 민영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금융노조와 KB국민은행지부(위원장 유강현)·우리은행지부(위원장 박상권)는 지난 21일 ‘메가뱅크 저지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나섰다. 이들 노조는 “인수합병은 독과점 문제 등으로 장기적으로는 은행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을 야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법이 은행 대형화뿐일까.



대형화 전략, 국민·주택 합병으로 이미 실패 경험
성낙조 메가뱅크저지공동투쟁본부 공동집행위원장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수석부위원장)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의 인수합병 발언은 MB정권의 금융대형화 정책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KB국민은행의 경우 과거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을 통해 대형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두 은행이 국내은행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감안하면 현재 KB국민은행은 리딩뱅크라는 확고한 위치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형화가 시너지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은 국민·주택은행 합병을 통해 이미 경험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어 내정자는 세계 50대 은행에 포함되는 메가뱅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원전 수주를 위해 지급보증을 할 은행이 국내에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KB·우리 은행 합병으로 예상되는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KB·우리은행의 경우 두 소매금융 은행이 합쳤을 경우 상당 부분 점포망이 겹친다. 당연히 구조조정이 뒤따를 것이고, 1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두 은행의 합병은 은행의 독과점 문제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대형화를 통한 시너지 효과 역시 국민·주택 합병의 사례를 놓고만 보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내정자 입장에서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조직안정이었다. KB지주는 9개월 동안 회장 공석 상태였다. 직원들이 최고경영자의 장기 공백 과정에서 겪었던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


금융시스템 리스크만 증대될 것
이한진 진보금융네크워크 연구실장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주도했던 미국조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변화하고 있다. 대형화·겸업화·증권화에 대한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금융기관의 크기와 범위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대형화·겸업화가 수익성이나 재무건전성을 강화시키기보다 리스크를 키웠다는 경험적 교훈이 계기가 됐다. 대마불사와 연쇄파산의 구조적 문제를 개혁함으로써 은행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금융 역주행이 매우 심각하다.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이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려서인지 모르겠지만 공공연하게 메가뱅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국민경제와 금융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이 결여돼 있는 듯하다. 메가뱅크론은 대형화 그 자체가 목적인 셈이다. 이는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을 더욱 강화하고 한국 경제 전반의 리스크 또한 크게 증대시킬 것이다.


중소기업 대출 줄이고 소비자후생 악화시켜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국회 정무위원회)




은행의 대형화는 금융자본의 이익 증대에 기여한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 진출해 이익을 실현할 기회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은행대형화는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증대시키고, 중소기업 대출을 줄여 독과점 현상이 나타나 소비자 후생에는 악영향을 미친다. 은행 통폐합에 따른 인력감축이 불러올 사회 문제도 심각하다.
첫째, 은행을 대형화하면 금융시스템 리스크가 커진다. 대형은행의 부실화는 곧바로 금융경제시스템의 리스크 증대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가 대형화를 통한 금융회사의 수익성 추구, 위험투자 확대, 도덕적 해이 증대에서 온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미국에서 금융회사의 위험투자와 대형화를 제한하는 ‘볼커룰’을 입법화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둘째, 중소기업 대출이 줄어든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병윤 박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은행 대형화는 대체로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비중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중심의 고용 없는 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중소기업 중심의 일자리 창출전략이 절실한 상황에서,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는 은행 대형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나.
셋째, 독과점을 야기해 소비자후생을 악화시킨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 통폐합을 통한 대형화를 추진한 결과 2008년 상위 3개 은행의 원화예금 기준 일반은행 시장점유율은 67%에 이를 정도로 독과점이 심각하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대체로 국내영업에만 집중하고 있다. 독과점에 따른 소비자 후생도 악화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의 서민소비자 홀대현상은 주주이익을 위한 고수익성 추구에도 원인이 있지만, 독과점과 경쟁제한에 따른 측면도 있다. 은행 통폐합에 따른 인력감축의 폐해는 외환위기 직후 충분히 경험했다.


“정부 개입하지 말아야 금융산업 발전”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우리나라 은행들은 상업은행이다. 상업은행은 내수시장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가 크지 않다. 규모의 확대가 갖는 효과는 불확실한 반면 폐해는 크다. 은행 규모가 커져 독과점이 심해지면 은행 간 경쟁도는 낮아진다. 서민과 중소기업 대출은 위축되고 대기업만 유리하게 될 것이다. 또 대형화된 은행이 부실해질 경우 이를 망하게 할 수도 없으니 공적자금이 들어갈 수 있다.
대형은행 간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려면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과 신뢰가 중요하다. 합병해서 완전히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내려면 5년에서 10년 정도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는 MB 측근으로 평가되는 사람이다. 정권이 바뀌면 물러나야 한다. 장기적인 리더십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인수합병을 주도하면 조직 구성원들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 인수합병은 매우 위험한 경영전략이다. 전문성은 없고 정치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이 인수합병을 진행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논의되는 메가뱅크론은 은행 경쟁력 제고보다는 MB정부의 재정 수입 확보와 관련이 있다. 감세 정책 등에 따른 재정 적자를 메우려는 것이다. 금융산업은 철강이나 자동차처럼 정부가 산업정책으로 육성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정부가 개입할수록 발전에 저해된다. 금융산업 발전의 첫 번째 전제조건은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개별 금융회사들이 냉정적인 판단을 할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국내 시장에서조차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은행들이 하루아침에 글로벌 뱅크가 될 수는 없다. 금융회사들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금은 대형화가 아니라 분산해야 할 때”
박형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


은행 대형화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신자유주의 어젠다 속에서 추진돼 온 것이다. 참여정부 때는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한 여론이 악화되는 바람에 시점을 저울질하다 시기를 놓쳤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은행 대형화를 서두르려고 했는데, 경제위기 등으로 미뤄지다 경제가 회복되니까 다시 추진하는 것이다. 대형화는 금융허브 프로젝트나 자본시장 통합계획의 마지막 수순이다. 금융환경을 조성하고 선수로 뛸 만한 은행 만들겠다는 의도다. 단순히 어윤대라는 MB맨의 단독계획이 아니라 장기적 계획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라는 얘기다. 당장은 대기업들이 해외에 나가 투자하거나 사업을 수주받아야 하는데, 파이낸싱을 하려면 규모 있는 은행이 필요할 것이다. 규모의 경제니 경쟁력 강화니 하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국내 시중은행 3곳이 이미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대형화는 독과점을 강화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은행은 구조조정될 수밖에 없다 인력재편이 불가피하다. 위험성도 커질 것이다. 대마불사 논리가 강화돼 위험투자가 늘어날 게 불 보듯 뻔하다. 우리은행 사례를 보면 명확하다. 해외투자로 엄청난 손실을 보지 않았나. 경제여파도 따라서 커질 것이다. 사업을 다각화해 위험성을 분산시키겠다고 하지만 말이 안 된다. 지금은 오히려 대형화가 아니라 분산해야 할 때다. 우리금융을 대형화·민영화하기보다 소비금융의 전문성을 가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은행으로 남겨야 한다. 우리·산업은행을 민영화하면 정부가 위기국면에서 대처할 수 있는 기제들이 축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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