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원 노동자의 산재사망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한국전력공사와 배전협력회사들이 배전공 보유인원 축소·폐지를 논의한 사실이 확인됐다.
20일 건설노조(위원장 김금철)가 입수한 '한전 2011년 배전협력회사 운영제도 간담회' 문건에 따르면 한전과 배전협력회사 대표 12명이 지난 5월14일 한전에서 만나 배전전공 보유인원 축소·폐지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에 따르면 5월은 공사 성수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한전이 감독하는 배전현장에서 산재사망자가 4명이나 발생해 논란이 되던 시기였다. 당시 노조는 "점진적인 보유인원 축소에 따른 산재가 본격화되고 있다"며 안전대책 마련을 위해 한전에 정례협의회 구성을 요청했지만 면담조차 거부당했다.

 


한전, 협력회사 선정 공사실적으로 전환 검토

문건에 따르면 이날 간담회에서 양측은 배전공사의 단가적용범위·계약기간·배전전공 보유인원·추정도급액 등 한전의 배전협력회사 운영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문건에는 사측이 배전전공 보유인원에 대해 폐지 혹은 단계적 축소를 한전에 건의했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한전이 신설하고자 하는 '실적가점제'나 ‘실적제한입찰제도’ 시행시 사측은 배전공 보유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한전이 공사실적을 기준으로 협력회사를 선정할 경우 최소한의 비용으로 많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공기단축과 인원감축을 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배전전공 보유인원 축소 논의는 협력회사와 한전이 오랫동안 진행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 노조가 이날 함께 공개한 지난해 한전 감담회 개최 내용 문건과 한전의 2008년 배전공사 시공체제 운영계획에도 양측의 보유인원 축소에 대한 논의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전은 '중장기 배전공사 시공체제 운영계획'에서 협력회사의 전문화를 통한 책임시공체제 구축을 위한 전략 중 하나로 현재 단가업체 선정기준인 무정전유자격 보유기간을 2011년부터 공사실적으로 전환해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논의는 현장에도 적용돼 실제로 보유인원 축소가 단계적으로 추진돼 왔다.<표 참조> 게다가 한전은 2006년부터 전공 의무 보유기간도 24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했다. 또 같은해 배전공 현장작업능력시험제도와 단가계약 종합평가제도를 폐지해 미숙련 노동자들과 안전의식이 낮은 업체들도 배전공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다.

 


"공사비 변화 없어 인원 더 늘어야"

그러나 현장에서는 줄어든 보유인원 기준마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전의 안전수칙은 관리·감독 소홀로 인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에 한전도 지난해 7월부터 ‘특별안전진단팀’을 구성해 수시로 감독에 나서고 있지만, 전국 5천여개에 이르는 배전협력회사들의 현장을 책임지기에는 역부족이다.

한 전기원 노동자는 "한전 기준대로 안전관리·감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적정인원 배치를 숱하게 요구해도 업체들은 한전이 점검할 때만 서류상으로 인원을 늘리거나 일용직을 고용해 짜 맞추고 있다"며 "하물며 최소한의 보유인원 기준마저 없애 버린다면 안전사고 증가는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전의 안전수칙은 전봇대 작업시 생명줄(로프)을 매달아 추락을 방지하고 있음에도 생명줄을 매면 작업속도가 1.5배 늦어져 이를 사용하는 현장은 거의 없다”며 “지금도 공기단축을 위해 업체들이 안전을 외면하고 있는데 한전이 공사실적으로 업체 평가를 전환하면 안전 문제 해결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이에 따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보유인원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재석 노조 경기도전기원지부 조직강화위원장은 "한전의 건당 공사 도급금액에 큰 변화가 없는 가운데 필수기계화 장비도 6대에서 2대로 줄었다"며 “신공법 공사시 기존 활선전공이 신공법을 이수하지 않는 이상 보유인원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보유인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전, 이달 중 배전협력회사 운영지침 발표 예정

이에 노조 지도부는 이달 15일부터 한전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18일에는 보유인원 축소 논의 철회를 촉구하는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노조는 "한전이 3년 연속 공기업 경영평가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된 것은 안전을 무시하고 전기원 노동자의 죽음을 대가로 경영이윤을 남겼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한전은 이달 중 한전 배전협력회사 지침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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