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가 최저임금을 현 수준으로 동결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노사 간 공방이 달아오르고 있다. 최저임금은 법으로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해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소득분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내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의 경우 노·사·공익을 대표하는 위원 27명(각 9명)으로 구성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오는 29일까지 인상률을 결정할 예정이다. 사실상 공익위원들이 인상률 결정에 열쇠를 쥐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시급 4천110원, 월 85만8천990원이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지난 2004년(10.3%)·2005년(13.1%)·2007년(12.3%)에 10% 이상 인상됐으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8.3%)·2009년(6.1%)에는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올해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75%의 인상률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인상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데는 경영계의 주장이 주효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세계 각국과 비교해 볼 때 높은 수준이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실업률을 끌어올린다." 경영계는 이를 근거로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여기에는 정부의 각종 통계가 뒷받침됐다. 경영계는 한발 더 나아가 지역별·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감시단속적 노동자 감액 적용, 수습노동자 기간연장 등 최저임금제도 개정을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노동부장관이었던 이영희 전 장관은 이에 공감을 표시했으며, 일부 여당 의원은 경영계의 요구를 바탕으로 의원입법을 추진했다.

경영계와 정부·여당의 이런 행보는 최저임금 적용실태를 고려할 때 다소 과장되거나 현실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 최근 최저임금연대·민주노총 주최 토론회에서 발표된 내용(2008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 풀타임 노동자들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0.32다. 법정최저임금 제도가 있는 21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17위다.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0.39로 18위에 그쳤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골찌를 겨우 면할 정도인 셈이다. 국제노동기구(ILO) 자료(2008년 기준)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의 상대적 비율에서 통계가 제시된 59개국 중 48위에 그쳤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저임금위는 공인된 국제기관의 노동통계를 외면하고 한 나라의 노동통계 기준에 근거해 국제비교를 했다. 영국의 최저임금위가 13개 국가의 통계를 비교했는데, 이를 활용한 것이다. 우리나라 자료를 영국의 최저임금위의 통계에 산입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 결과, 한국의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2007년 기준으로 미국·일본·영국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최저임금 통계자료를 산입했는데도 OECD·ILO와 영국 방식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가 뭘까. 우리나라 최저임금위가 최저임금 자료를 월급으로 환산해 월 정액급여와 비교한 뒤 이를 시급기준으로 제시돼 있는 다른 나라 자료와 비교한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근거한다면 최저임금위가 영국 통계방식을 활용해 최저임금 국가 간 비교를 과장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정부기관이 공인된 국제기관의 노동통계를 외면하고 이런 과장된 통계자료를 발표하니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이 왜곡되는 것 아닌가.

낮은 최저임금이라도 적용되면 좋으련만 실제 적용률은 미미하다. 법정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이들은 겨우 3%대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최저임금 위반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만 210만명이 넘는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른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이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가 실종되고, 정부의 근로감독 행정에 구멍이 난 셈이다. 이런데도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고,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률을 끌어올린다고 할 수 있을까.

세계 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대처방법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해 왔다. 노동자의 구매력을 높여 내수를 부양하는 것으로 경제를 살리려 한 것이다. 미국은 2011년까지 45%, 프랑스는 지난해 30% 이상 인상했다.

유럽연합의회는 지난해 회원국가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을 60%까지 맞추라고 권고했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나라 최저임금 인상률은 2.75%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만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노동계가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6% 인상해야 한다고 요구해도, 그 인상률에 놀라지 말자. 노동계가 요구한 최저임금 요구안은 기껏해야 시급 5천180원, 월 108만620원으로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 대비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인색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되레 최저임금은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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