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한 분이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안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생산직 노동자가 원한다면 자신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통로(노조)를 열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회사 내부에는 노사협의회가 구성돼 있다. 사원들의 불편한 점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한 내용까지 개선해 나가는 통로로 이용하고 있다.”
지난 4월15일 삼성전자는 기흥공장 반도체공정을 이례적으로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90명에 가까운 기자들이 몰려 취재열기도 뜨거웠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관심이 있는 기자들이 많았다니 솔직히 놀라웠다. 공장 공개에 앞서 열린 반도체 제조공정 설명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 말미에 한 기자가 삼성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삼성에는 앞으로도 계속 노조가 없는 것인가.”
삼성전자 관계자가 에둘러 답변하자 기자는 “답변을 못 들었다”며 거듭 질문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노조가 없다고 해서 사원들하고 협의하지 않고 회사가 일방적으로 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노조는 우리 임직원들의 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노조가 언제 생기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우문일 수 있다. 하지만 삼성에서 노조를 만드는 것은 직원의 선택이 아니라 임원의 선택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삼성전자에 '제대로 된' 생산직노조가 있었다면 어쩌면 직업병 문제는 이렇게 충격적인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동자 100명당 재해자 비율을 가리키는 재해율이 2000년 이래 0.7%대에서 정체돼 있다. 지난해 노동부가 1년 동안 산업재해자를 1만명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재해자는 오히려 2.1% 증가했다. 올해 1~3월 발생한 재해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9% 증가했다. 더군다나 삼성전자 직업병 노동자들처럼 산재로 인정받지 못해 통계에 잡히지 않는 피해자들도 부지기수다.

노동자들이 개인 자격으로 회사에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노조다. 정부가 정말 재해율을 낮추고 싶다면 노조를 만들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기존에 있는 노조들은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게 지원해 줘야 한다. 최근 정부의 강경정책으로 기존 노조의 활동마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올해도 산재율 0.7%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