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지난 9일 부분파업을 시작으로 임금·단체협약 갱신협상의 포문을 열었다. 그간 사용자측이 근로시간 면제한도(타임오프 한도) 결정을 이유로 단체교섭을 미룬 것에 대한 경고파업의 성격이다.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전임자임금이 금지되고, 타임오프 도입에 따른 예상된 흐름이다.

정부와 사용자측 논리대로 보면 그간 전임자임금을 지급한 사용자의 지배·개입으로부터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존중되는 진통의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개정된 노조법과 타임오프 적용 과정에서 노조의 자주성과 노사 자율원칙이 실종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단체교섭이 공전되고 있는 기아자동차가 대표적인 사례다. 기아차는 6차례에 걸쳐 노조가 상견례를 요구했으나 사측은 불참했다. 11일에도 상견례가 무산될 경우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할 예정이다. 임·단협을 둘러싼 노사의 힘겨루기가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아차에선 때 아닌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라는 이례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사 모두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사내에 상주하고 있다고 인정하지만, 그 역할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노조는 “자율협상에 부당하게 개입한다”고 주장한 반면 사측은 “개정 노조법의 엄정 집행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물론 노동부는 기아차에 특별근로감독 조치를 내린 바 없다고 반박했다.

여러 정황을 보면 노동부가 기아차 노사에 대해 ‘특별관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가 기아차 노사가 체결할 단체협약을 개정 노조법 시행의 시금석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남아 있는 현대자동차에 비해 유효기간이 만료된 기아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은 기아차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근 타임오프와 관련해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관의 개입이 제기된 사례는 허다하다. 노동부 입장에서 보면 개정 노조법과 타임오프 한도가 차질 없이 적용되길 원하겠지만 그렇다고 노사 간 자율교섭 원칙마저 훼손하면 되겠는가.

물론 정부는 “노사 협상과정에 대한 동향을 파악했을 뿐 개입한 것이 아니다”고 강변한다.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런 풍토는 정부가 자초했다고 봐야 한다. 노동부가 최근 발표된 ‘근로시간면제 한도 적용 매뉴얼’을 보면 이러한 불신을 십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매뉴얼은 ‘노동부 내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행정운영 지침서’라고 노동부가 규정했음에도 실제로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매뉴얼을 꼼꼼히 살펴보면 노동부는 개정 노조법과 타임오프에 대해 세세하게 해석했다. 때문에 경영계는 이를 강제규정의 성격을 띤 행정해석쯤으로 여기고 있다.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에서 지도할 때 활용하는 지침서가 노사 협약의 ‘바로미터’로 둔갑한 것이다. 이는 노사가 협약자치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를 봉쇄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사용자측이 매뉴얼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도 있다. 쟁점이 되고 있는 근로시간면제자가 아닌 노조간부가 교섭·협의·고충처리·산업안전 등의 활동을 했을 때 처리 여부다. 매뉴얼에 따르면 근로시간면제자가 아닌 일반 노조간부들이 노사협의회·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 개별법에 의해 설치된 위원회에 참석하면 실제 소요된 시간에 대해 유급처리가 가능하다. 해당 법률 취지에 따라 인정된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영계는 이를 타임오프 한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부 매뉴얼에도 있는 내용인데도 실제 현장에서는 경영계의 논리가 노동부의 해석인 양 치부되고 있다. 노동부가 노사 교섭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근로감독관 지침서에 불과한 매뉴얼의 권능을 부풀린 탓이다.
노동부가 매뉴얼에서 밝힌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하는 합의를 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한다'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하는 합의를 한 노사 중 이를 빌미로 처벌을 요구할 수 있을까. 실제로도 노조의 자주성이 침해됐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한 처벌은 불가능하다. 매뉴얼이 현실을 외면하고 노사 자율협상의 싹을 잘라 버린 셈이다.
노사 간 단체교섭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되레 노조의 자주성을 제약한다. 뿐만 아니라 사적단체의 협약자치에 대한 국가의 불개입이라는 원칙에도 어긋난다. 정부의 역할은 노사가 자율협상으로 전임자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노조의 자주성 실현과 노사 간 자율협상이 원만히 이뤄지도록 지도·감독만 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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