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나처럼 그랬다. 6·2 지방선거에서도 그랬다. 이번에도 노동자는 없었다. 그래도 민주노동당은 사상 최고성적을 올렸다고 환호했다. 그래도 민주노총은 “이번 지방선거가 MB심판이라는 민주노총의 호소에 호응한 모든 국민의 승리”라고 논평했다.
그랬다. 그들은. 노동자가 없어도 환호했다. 그리고 ‘위대한 승리’라고 논평했다. 그들은 6·2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을 내세웠다.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았다면,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후보에게 투표했다면 당신은 그들의 호소에 정확히 부응한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들에 의해 위대한 승리자가 됐다.

그러나 그들에게 당신은 없다. 노동자인 당신은 없다. 당신의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당선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당신이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해도 당신은 그들의 위대한 ‘국민’이다. 그들에겐 노동자가 아닌 국민일 뿐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에게 ‘위대한’ 국민일 수 없다. 당신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후보에게 투표했더라도 당신의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면 당신은 그들의 위대한 ‘국민’일 수 없다. 아무리 당신이 노동자를 대변하겠다고 공약한 후보에게 투표했더라도 당신은 그들의 위대한 ‘국민’이 아니다.

2.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민단체’가 야권연대를 통한 선거연합을 주창하더니 민주노동당, 민주노총까지 합세했다. 시민단체가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선거연합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가 내세우는 4대강사업 중단·무상급식 전면실시 등은 민주당의 공약일 수 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참여했거나 그와 밀착해서 사업을 했던 인사들이 무슨 시민단체라고 해서 시민운동을 주도하면서 이들이 선거연합을 내세웠다면 그들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철저히 선거과정에서 관철한 것이다. 그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6.2 지방선거에서 노동자가 등장해서 야권연대가 성사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막상 경계할 것이 되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자들은 선거에서 자신의 이해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도 쉬웠다. 그저 이명박 정권 심판을 내세우면 그만이었다. 이 위대한 대의 앞에 노동자는 없었다. 국민의 위대한 승리 앞에 노동자는 없었다. 그리고 위대한 국민의 승리에 시민단체는 환호했다.

시민단체와 그 대변인들은 위대한 승리를 있게 해준 국민의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 그 주된 실체가 민주당일 수밖에 없는 민주개혁세력은 이번에는 제대로 국정을 수행해야 한다고 한겨레신문·경향신문 등 기고를 통해 열심히 당부하고 있다. 더불어 이번 선거를 교훈으로 야권연대의 필요성을 잊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장차 보궐선거, 총선과 대선에서도 야권연대를 해야 승리할 수 있다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환호와 당부, 말과 주문에 당신이 고개를 끄덕거렸다면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다. 당신이 아무리 노동자로 수십년을 살아왔어도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다. 당신이 노동자로서 투표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치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니다.

이번에도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해도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민단체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에 철저했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도 자신의 이해에 철저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정치적으로 노동자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투표를 하도록 한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당신이 노동자라면 노동자대표에게 물어야 한다. 당신의 노동조합이 이번 선거에서 무엇을 했는가 물어야 한다. 법률은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보장했으므로 당신의 노동조합은 스스로, 그리고 연맹·총연맹 등 상급단체를 통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분명 무슨 짓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정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분명 무슨 짓을 했다. 그리고 무슨 짓을 했는지는 당신이 이미 잘 알고 있다. 바로 노동자인 당신을 대표한다는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정당이 이번 선거에서 당신에게 분명히 호소했다. 노동자의 계급투표를 말하면서 노동자를 부정하는 투표를 호소했다.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자.” 이 호소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한나라당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자.”

3. 당신이 노동자로 투표할 때만 당신은 정치적으로 노동자이다. 당신의 대표자가 노동자의 이름으로 말할 때만 당신의 대표자가 노동자인 당신의 대표자이다. 노동자인 당신을 대표한다는 단체와 정당이 노동자의 이해를 위해 활동할 때만 당신의 단체는 진정으로 노동자의 단체와 정당이다. 노동자인 당신을 대변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노동자의 이해를 위해 활동하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단체와 정당일 수 없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단체와 정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활동한다면 오히려 노동자에게 유해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배신한 수많은 단체와 정당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방선거는 지자체의 장과 그 의원을 선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를 말할 수 없었다고 당신의 단체와 정당이 당신에게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삶은 모든 곳에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활동하는 중앙정부의 공간과 사업에 의해서도, 지차체의 단체장과 그 의원이 활동하는 지방정부의 공간과 사업에 의해서도, 심지어는 사업장 사용자에 의해서도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살아간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노동자를 말하지 않았다. 지방선거이므로 지역주민을 위한 공약만을 말했다.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말했지만 이것이 노동자를 위한 공약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부 지자체 소속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내걸었지만 노동자 일반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 서민을 위한 공약을 내걸었다. ‘서민’ 공약이 노동자 공약일 수 없다. 그것이 아무리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이라도 노동자의 공약은 아니다. 노동자의 공약은 국가와 자본의 공간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공약이어야 한다. 기존 지방자치단체가 그 동안 그래왔으므로 그 지방자치단체는 그래야 한다는 것. 그래서 노동자 공약은 없었다.
 
 그러나 그 동안처럼 앞으로도 노동자는 그래야 한다면 노동자를 말할 필요 없다. 그 동안처럼 앞으로는 노동자는 그래야 하지 않으므로 노동자를 말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은 노동자를 말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선거연합을 통해 이명박 정권을 심판했지만 노동자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진보정당이 노동자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 정당은 노동자의 진보를 위한 정당일 수 없다. 아무리 시민과 국민의 진보 일반을 대변하고 활동한다고 해도 노동자를 대변하고 활동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노동조합이 정치세력화를 위해 창당했다고 해도 노동자의 정당이 아니다. 단지 그 진보정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활동하는 그들만의 정당일 뿐이다.

4. 우리에게 노동자는 없었다. 지금까지 노동자를 말하지 않았다. 노동자 스스로도,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와 정당도 노동자를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노동운동은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돼야 한다. 노동자를 말하는 것으로부터 노동자의 이해를 철저히 대변하는 것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말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진할 수 없었다. 노동자가 없는데 연대를 말할 수 없다. 노동자의 이익이 없는데 공익을 말할 수 없다. 노동자와 노동자의 이익이 없는데 무슨 좌편향과 우편향이 있을 수 없다. 노동자에게 편향은 노동운동의 전진에서만 평가되고 존재할 수 있다. 노동조합과 달리 국가단체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는 노동자가 아닌 국민과 공익을 대변하는 공약을 내놓고 승부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래야 당선되고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당신이 말한다면 당신은 노동자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혹 당신이 노동자의 대표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당신은 이미 노동자의 대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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