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권력 독식시대가 끝이 났다. 지난 2일 지방선거에서 민심은 이명박 정부 심판을 앞세운 야권 후보들을 선택했다. 종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호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싹쓸이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천암함 북풍이 거세게 불면서 한나라당이 낙승할 것이라는 여론조사와 달리 바닥 민심은 정권 심판을 선택했다.

불리한 여론조사를 뒤엎고 막판 대역전극이 가능했던 것은 높은 투표율 덕택이다. 이날 투표율은 54.5%로 집계됐다. 2006년 지방선거, 2008년 국회의원 총선거 때보다 높았다. 수도권이 견인차 역할을 했고, 20~40대 투표자들이 앞장선 것으로 분석됐다.

높은 투표율은 선거결과에 그대로 반영됐다. 광역자치단체장 선거결과를 보면 한나라당이 6곳, 민주당 7곳, 자유선진당 1곳, 무소속 2곳으로 사실상 정부여당의 완패다. 야권이 경남·강원·충남·충북 등 한나라당 텃밭에서 승리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 줬다. 아울러 김상곤(경기)·곽노현(서울) 교육감 당선자 등 전국 6곳에서 진보민주 교육감이 당선돼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에 맞설 수 있는 교두보가 확보됐다. 한나라당이 서울·경기 수도권 단체장 2곳을 차지했지만 내용으로 보면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의 66개 시·군·구 중 한나라당은 16곳만 얻었다. 한나라당이 독식했던 풀뿌리 권력이 교체된 것이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해 민심이 제동을 걸었다는 내용적 의미도 있다. 4대강 사업·세종시 수정안·무상급식·검찰 개혁은 지방선거의 이슈였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천안함 북풍’에 기대 불리한 쟁점을 우회하거나 민심에 역행해 밀어붙이려 했다. 이런 태도에 민심이 투표로 급제동을 건 셈이다. 민심은 북풍을 선거에 활용해 불안을 조성하려는 흐름을 심판했다. 민심에서 확인했듯이, 정부·여당은 4대강 사업과 세종시수정안을 더 이상 밀어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무상급식 확대·의료민영화 반대라는 복지서비스를 경제실적주의에 의해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진보정당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약진했다. 민주노동당이 447명·진보신당이 174명·사회당이 23명의 후보를 출마시켜, 민주노동당이 142명·진보신당이 25명을 당선시켰다. 울산 기초단체장을 당선시켰던 민주노동당은 사상 첫 수도권 기초단체장을 배출했다.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한 조택상 인천 동구청장과 배진교 남동구청장 당선자가 그들이다. 야권 단일후보로 나섰던 윤종오 울산 구청장 후보도 높은 투표율로 당선됐다. 기초단체장을 제외하고 진보정당들은 26석의 광역의회 의원, 140석의 기초의회 의원을 당선시켰는데 역대 최고의 성적이다. 노동자 밀집지역에 국한됐던 당선자도 전국 각 지역에서 고루 배출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의 선거전술은 야권 후보 단일화와 독자출마로 엇갈렸다. 물론 지방선거 후보 전술이 진보정당들의 노선 차이를 구분할 정도는 아니었다. 야권과 시민단체들의 후보 단일화 논의에서 탈퇴한 진보신당은 독자후보 출마를 표방했지만 지역별·후보별로 선택은 일관되지 않았다. 울산 북구의 경우 진보신당까지 포함한 후보 단일화를 통해 윤종오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됐다. 심상정 진보신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선거 막판에 사퇴해 후보 단일화에 힘을 실었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선택한 민주노동당의 경우 광역자치단체장 후보에서 사퇴하긴 했지만 일부 지역 기초단체장의 경우 자당 후보가 끝까지 완주했다. 울산시장과 거제시장을 놓고 진보정당들이 경쟁했던 것은 평가의 지점이기도 하다.

이를 고려할 때 ‘야권 단일 후보냐 독자후보냐’라는 후보전술 논란은 흑백논리에 불과하다. 두 가지 모두 진보정당들이 펼쳐 온 선거 후보전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독자후보 전술에 대한 '과도한 비판'은 이번 선거가 주는 교훈을 축소할 수 있다. 민심이 진보정당에 주문한 과제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매일노동뉴스>가 양대 노총 대의원을 대상으로 지방선거 이후 진보정당의 과제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48.8%가 진보정당의 통합을 주문했다. 이어 ‘반MB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21.5%나 됐다. 양대 노총 대의원들은 진보정당 통합을 우선 순위로 추진하되 반MB 연대 강화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셈이다. 결국 진보정당들은 역대 최대 의석을 차지한 것에 자족하지 말고, 진보정당 통합에 매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반MB 연대는 선거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 야권 후보 단일화로 선거에 승리한 지역의 경우 공동 지방정부 구성과 합의한 정책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몫이 남겨졌다. 비록 정권 심판이라는 거대 이슈에 이끌리기는 했지만 이것이 지방선거의 참된 의미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힘쓴 진보정당도 이를 성사시키고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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