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정권은 천부적 권리에 속한다. 누구나 태어나면 평등하게 보장받는 권리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때론 스스로 참정권을 포기하기도 한다. 생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먹고살 권리, 생존권은 천부적 권리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일까. 기본소득제도는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다.

“나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투표에 참여합시다!”
6·2 지방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 국정 참여를 보장하는 참정권(선거권·피선거권)은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는 권리다. 하늘이 내린, 천부적 기본권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대 투표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어떤 이들은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또 다른 이들은 “먹고살기도 힘든데 투표는 무슨…”이라며 선거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투표보다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천부적 기본권인 참정권, 먹고살 권리는?

그런데 왜 참정권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인 먹고사는 권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보장받지 못하는 것일까. 
최근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기본소득제도’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기본소득은 “어떠한 심사나 노동을 요구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조건 없는 소득”을 뜻한다. 빈부나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소득을 주자는 것이다. 이처럼 먹고살 권리를 천부적 권리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기본소득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다. 올해 1월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가 출범하면서 조금씩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지는 못했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두 달 늦게 기본소득 네트워크를 출범시킨 일본에서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장기간 경기침체를 겪었던 일본은 사회보장제도를 대체할 대안 중 하나로 기본소득제도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일부 보수학자들은 사회보장정책을 기본소득제도로 단순화할 경우 공무원을 대폭 줄일 수 있다며 ‘작은 정부론’과 연관시켜 찬성 입장을 밝히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88년에 출범한 기본소득 유럽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임금노동 넘어서는 노동 인정하라”

기본소득제도가 담고 있는 의미는 겉으로 드러난 ‘천부적 경제권(생존권) 보장’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동안 진보진영이 추구했던 ‘노동(자)에 기초한 사회 진보’와 ‘사회적 약자 권리 보완에 한정된 복지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주창자 가운데 한 명인 이수봉 민주노총 사무부총장은 “인간은 개별이자 덩어리”라는 말로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사회가 창출하는 부가가치(생산물)는 자본과 (임금)노동으로 맺어진 생산관계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노동하지 않는 이에게 왜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예컨대 집에서 블로그 활동을 하는 사람은 생산, 즉 (임금)노동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면서 IT산업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 기본소득론자들의 바탕 인식이다.
이 부총장은 “정보통신(IT) 산업은 노동을 통해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에 의해서도 발전한다”며 “기본소득을 이해하려면 사회가 하나의 유기체라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생산에 참여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금노동을 넘어선 노동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전환은 노동자를 진보의 핵심 축으로 사고했던 기존 노동운동이나 진보운동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뒤흔들면서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임금노동자, 즉 공장 안 노동자만을 주요 세력으로 사고했던 노동운동이 ‘실업자를 포함한 일반 국민 모두를 운동의 근본세력으로 삼을 수 있겠구나’라는 인식의 단초를 마련해 준다.

곽노완 서울시립대 교수는 “임금노동자만이 변혁의 주체라는 노동 중심 패러다임을 넘어선다면 실업자·노령·빈곤·청년층까지 잠재적 운동주체로 인식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며 “인구의 대다수가 혜택을 받게 될 기본소득은 변혁주체의 형성과 연대에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복지제도 확장판이자 새로운 분배시스템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을 복지제도의 다른 형태가 아니라 사회적 부를 재분배하는 새로운 시스템이라고 강조한다. 기본소득제도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완하는 의미로서의 복지보다는 사회적으로 생산한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선별적이고 시혜적인 복지제도와 비교해 보편적 복지제도, 즉 복지의 확장판으로 기본소득제도를 설명하기도 한다.

권문석 사회당 기본소득위원장은 “기본소득은 기존에 존재하는 상당수 복지제도를 통합하는 제도이자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소득제도가 우선적으로는 현존하는 모든 복지제도를 통합해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일률적인 소득을 지급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교육·주거·노후와 같은 인간의 기본적 생활을 위한 소득보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3인 가구에 매달 135만원 지급 가능

기본소득제도가 정착하려면 그만큼 합당한 수준의 소득이 보장돼야 한다. 기본소득 제공에 필요한 재원이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기준으로 정부소득(예산) 중 기존 복지지출에서 소득세와 법인세 등 직접세를 현 세율로 동결하더라도 각종 연금과 같은 복지지출을 통합하고, 불로소득세(이자·배당·증권양도)와 이른바 부자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세율을 인상하면 253조7천3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 재원을 바탕으로 전체 국민(4천874만6천명 기준)에게 1인당 1년에 520만원, 매달 45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3인 가족을 기준으로 매달 한 가구가 135만원의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기본소득제도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은 현재 조건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근본적인 조세개편이 뒤따라야 하고, 국민적 동의도 얻어야 한다. 기본소득제도를 주장하는 학자마다 구현방식이 조금씩 다른 이유다. 어떤 이들은 적은 액수부터 국민 모두에게, 또 다른 이들은 특정계층(노인층 혹은 청년층)부터 기본적 생계유지가 가능하도록 제각각 제도를 설계한다.

일을 하지 않고서도 기본소득을 보장받는 게 꿈같은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미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한 나라도 있다. 브라질이 대표적이다. 브라질 상원은 2004년 시민기본소득법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전체 인구 1억9천30만명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4천500만명에게 일정 금액의 소득을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내용이다. 기본소득제도가 시행되면서 브라질의 지니계수(소득불평등지수)는 2002년 0.58에서 2007년 0.55로 개선됐다.
 
21세기 세계사적 과제는 ‘기본소득 실현’

지금은 천부적 권리로 인식되는 참정권도 처음부터 모든 이에게 보장됐던 것은 아니다. 직접 민주주의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노예·여성·외국인을 제외한 ‘아테네인 성인 남성’에게만 참정권을 보장했다. 제정시대에도 일부 특권층만 이 권리를 누렸다. 18세기 초 미국·프랑스를 중심으로 인권선언 등이 이뤄지고 민주주의(자본주의)가 정착되면서 참정권은 하늘이 내린 권리로 인식됐다. 하지만 여성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참정권을 행사했다.

인간에게는 그 어떤 권리보다 먹고살 권리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천부적 권리로 보장하라는 주장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다.
“19세기 세계사적 과제가 노예제 폐지라면 20세기에는 보통선거제의 확립이었다. 21세기에는 기본소득 실현이 세계사적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 국제위원회 의장인 판 빠레이스 벨기에 루뱅대 교수가 남긴 말은 그런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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