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인 공현(22)씨는 최근 법원으로 나오라는 소환장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10여명이 동시에 잠깐 멈춰서 있는 플래시몹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일 입시 폐지와 대학 평준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예정돼 있었는데, 공씨는 집회 시작 1시간 전에 인도에서 10여명과 플래시몹을 하기로 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경쟁의 시간을 잠깐 멈추자’는 의미로 한 여고생이 종을 치면 서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3분 정도 멈춰 서 있기로 했다.

피켓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들이 플래시몹을 하는 이유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 플래시몹이 시작되는 순간 여경들이 여고생을 연행하려 했다. 이를 가로막은 공씨는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됐다. 경찰은 해산 경고방송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얼마 뒤 “공무집행방해로 벌금 100만원에 처한다”는 약식명령 통보를 받았다.

정식으로 재판을 청구하기 위해 준비하던 공씨는 또다시 어이없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사건 담당 검사가 먼저 재판을 청구했다는 것이다. 공씨는 “연행을 하거나 진압을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재판까지 연루됐다”며 “부모님도 걱정을 하시고 재판을 하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1인 시위·기자회견도 마음대로 못해

30일 경찰청에 따르면 집회나 시위를 하다 집시법 위반으로 사법처리된 인원은 2008년 2천381명, 2009년 1천802명에 이른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는 282명이 사법처리됐다. 특히 촛불시위가 집중됐던 2008년 7월(308명)·8월(370명)·9월(404명)에 사법처리된 인원이 많았다.
요즘에는 1인 시위나 플래시몹을 하다 연행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10일 광화문광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던 인권활동가 3명이 연행됐고, 지난달 3일에는 광화문 일민미술관 앞에서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플래시몹을 진행하려던 슈퍼맨 복장의 한 시민이 경찰에 둘러싸였다. 이 시민은 경찰과 20여분의 승강이 끝에 슈퍼맨 옷을 벗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촛불문화제나 기자회견장에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달 7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건물로부터 50미터 떨어진 인도에서 촛불문화제를 하던 동희오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손발이 들린 채 연행됐다.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 박지연씨 영결식이 열린 지난달 2일에는 삼성본관 앞에서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1인 시위를 하던 참가자 10여명이 연행됐다. 연행 당사자인 김산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1인 시위를 끝내고 기자들에게 상황을 브리핑하려는 찰나에 연행됐다”며 “조사를 했던 경찰까지 연행할 상황이 아닌데 왜 연행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2~3년 전 사건을 들춰내 소환장을 들이미는 황당한 일도 잇따르고 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2007년 3월 한미FTA집회 참가를 이유로 경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았고,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2007년 이랜드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관련한 불매운동 기자회견으로 소환통보를 받았다.
 
‘벌금폭탄’으로 심리적·경제적 압박

시민들 입장에서는 경찰 연행이나, 재판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2008년 8월 촛불시위 당시 시민기자단으로 활동하다 연행됐다는 직장인 이아무개(29)씨는 “연행된 이후에도 집회에 계속 참가하기는 했지만 두 번 연행되면 가중처벌된다는 말을 들어 겁이 났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법원은 이른바 ‘단순 가담자’에게도 벌금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시민들이 집회 참가에 따른 경제적 압박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지난해 5월 대전에서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450여명이 연행됐는데, 단순 참가자들도 대부분 200만~3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권두섭 변호사는 “예전에는 집회 주최자나 간부가 아니면 단순 연행자는 훈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요즘에는 집회 주최측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연행된 개인에게는 벌금폭탄을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법원 “단순 도로점거는 처벌 안돼”

2008년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연행된 시민들의 소송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집회나 시위 참가자를 형법으로 처벌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이다. 대학생 김아무개(22)씨는 “촛불집회가 다소 과격해지던 2008년 8월 평화시위로 분위기를 바꿔 보자며 친구들과 함께 명동 한국은행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다 연행됐다”며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벌금 300만원이 부과됐는데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따르면 2008년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연행돼 재판에 회부된 627명 중 551명(88%)이 일반교통방해죄로 기소됐다.

대법원의 입장은 달랐다. 대법원은 24일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가 서울광장 앞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에게 욕을 한 혐의로 기소된 강아무개(38)씨에 대해 “단순 도로점거 시위는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집시법, 코에 걸면 ‘코걸이’

1인 시위·플래시몹·기자회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연행되는 사건이 증가하면서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해석할 여지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에서 집시법상 ‘집회’를 두 갈래로 해석한다. 하나는 다수인이 공동의 목적으로 회합하면 집회로 보는 광범위한 해석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회합해 위력·위세를 가하는 것을 집회로 보는 것이다. 전자에 따르면 길거리에서 단체로 교가를 부르는 것도 집회가 될 수 있다. 최근 법원은 전자의 개념으로 집회 여부를 판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주민 변호사(법무법인 한결)는 “집시법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유는 집회를 하는 행위가 주변 사람에게 불편·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다수인이 공동의 목적으로 회합한 것을 집회로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경호에 군대까지 동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집회뿐만 아니라 언론·인터넷·노동현장 등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달 초 방한했던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지난 2년간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상당히 위축된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며 “1년  후에 다시 방문해 상황을 점검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랭크 라 뤼 특별보고관은 17일 출국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다시 한 번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러나 국회는 1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경호를 위해 군대를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특별법에 따르면 오는 11월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대통령실 경호처장은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표현의 자유’ 위축을 우려한 지 이틀도 되지 않아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률이 별다른 마찰 없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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