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ivilization Gone With Wind.”(문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일까)
영화로 더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원작 소설의 도입부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은 문명만이 아니다. 공장도, 약속도 바람처럼 사라진다. 2010년 5월. 이제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추는 현실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다.

지난 2005년 10월. 경남 구미의 오리온전기가 사라졌다. 외국자본이 유입된 후 국내업체가 청산된 첫 사례다. 오리온전기는 모기업인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경영위기로 2003년 5월 부도처리됐다. 매각작업이 시작됐고 2004년 미국계 매틀린패터슨펀드(MP)에 인수됐다. MP는 2천억원으로 예상됐던 오리온전기를 600억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인수했다. 대신 노조에 3년간 고용보장, 투자확대, 고용·단체협약 승계를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공수표였다. MP는 오리온전기를 인수하자마자 기업 분할과 매각작업에 들어갔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PDP처럼 수익성이 높은 사업 분야는 자사 계열사에 넘겼다. 오리온전기에는 사양화로 접어들어 수익이 떨어지는 브라운관(CRT)부문만 남았다.

MP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CRT부문만 남은 오리온전기를 홍콩계 오션링크 소유의 트랜스캐피털그룹과 파트너얼라이드그룹에 무상으로 양도했다. 오션링크는 2005년 10월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오리온전기 법인을 청산했다. 부동산과 생산설비가 모두 매각된 뒤였다. 오리온전기 노동자 1천300명과 연쇄 도산한 협력업체 노동자까지 4천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배태수 당시 금속노조 오리온전기지회장은 “외국자본 매각의 결과는 노동자들에게 재앙”이라는 말을 남겼다.
 
“외국자본 매각, 노동자에게 재앙”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 그들의 먹잇감이 된 한국의 산업현장이 초토화되고 있다. 본사의 방침에 따라 움직이는 다국적기업에게 개별 국가 차원의 노사협상은 관심사항이 아니다. 외국자본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숱한 기업의 노조나 노동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기업은 9천612개(2008년 기준)다. 외국인투자기업이 6천593개, 외국법인이 3천19개다. 외투기업의 외형상 경영지표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막대한 이익을 본국으로 회수하고, 국내 경제발전이나 고용확대에 기여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지난 2월 발표한 ‘외국인 투자기업 경영실태 조사’(2008년 기준) 결과에 따르면 외투기업의 주요경제지표는 최근 5년간 꾸준히 상승했다. 외투기업의 2008년 매출액은 232조원에 달했다. 전년 대비 22.4% 증가했다. 부가가치 규모도 같은 기간 43.0% 증가한 40조원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2008년 외투기업의 조세규모는 1조4570억원으로 전년 대비 40.2%나 감소했다. 2008년 고용증가율은 12.5%를 기록했지만, 매출이나 부가가치와 비교해 턱없이 낮다.

외투기업 사업장들은 노동부의 노사분규 사업장 집계에도 자주 등장한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투기업 35곳에서 파업(금속노조 산별파업 포함)이 벌어졌다. 제조업부문 노조가 주로 가입한 금속노조만 해도 외국인 지분율 50% 이상 외투기업이 56개(법인수 49개)인데, 이 중 상당수가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은 “제조업은 투기자본의 좋은 먹잇감”이라며 “정규직이 많아 정리해고를 할 때마다 비용이 절감되고, 공장부지 등 부동산 매각이 따른 수익이 크며 생산기술 유출시 추가수익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외투기업의 노사갈등은 외국인 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FDI) 추이와 연관된다. 투자가 줄어들수록 고용불안과 같은 노사갈등 요인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전 세계 FDI 추이를 보면, 개발도상국와 선진국의 FDI 유입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한 반면 한국의 FDI 유입액은 2004년 이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그래프 참조> 국제 자본이 신흥국가로 집중되는 경향이 반영된 결과다.


실제 국제 자본은 전략적 선택에 따라 옮겨 다닌다. 그럼에도 한국을 떠나는 외국계 기업들은 다른 이유를 댄다. “강성노조 때문에 더는 못 있겠다”는 식이다. 
지난해 10월 충남 천안의 자동차부품업체 발레오공조코리아가 사라졌다. 회사측은 “노조가 강성이라 물량확보가 어렵다”며 구조조정을 추진하더니, 어느 날 노조에 공문 한 장을 보내 “공장을 폐쇄하고 청산하겠다”고 통보했다. 전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발레오공조의 청산은 프랑스 발레오그룹 차원의 구조조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27개국 121개의 공장과 61개의 연구개발센터를 운영해 온 발레오그룹은 구조조정 사업장을 물색한 끝에 발레오공조 천안공장의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일본보다는 연구개발 능력이 모자라고, 중국 등 신흥국가에 비해서는 인건비가 높은 현실적 조건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결정은 전적으로 발레오그룹의 전략적 판단에서 비롯됐다. 발레오그룹은 한발 더 나아가 “천안공장의 문을 닫아도 납품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마친 상태였다. 발레오공조 천안공장에서 제작되던 자동차부품은 현재 일본과 중국 공장에서 역수입돼 르노삼성자동차 등에 납품되고 있다.
 
투기성 외국자본에 노출된 제조업 현장
 
FDI는 ‘그린필드 투자’와 ‘브라운필드 투자’로 나뉜다. 그린필드 투자는 외국 자본이 스스로 부지를 확보해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이다. 브라운필드 투자는 이미 설립된 회사를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최근 들어 국내 제조업 분야에 진출하는 외국 자본은 주로 증권투자(포트폴리오 투자)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영참가가 목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제조업에 투자하는 외국 자본까지 단기 이윤추구에 골몰하는 투기자본을 닮아 가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제품 생산에 주력하기보다는 부동산 매각차익 등에 눈독을 들이는 얌체족까지 등장했다. 경남 창원의 시계 생산·판매업체 제이티정밀은 지난달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은 창사기념일을 이용해 시계 완제품과 반제품·부품을 모조리 빼돌리고 폐업을 통보했다.

제이티정밀의 전신은 일본계 한국씨티즌정밀이다. 한국씨티즌정밀의 단체협약에는 ‘회사를 폐업하거나 직원을 정리해고할 경우 평균임금 36개월치를 위로금으로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중국산 저가 시계가 대량 유입되고 국내 시계 제조업이 침체에 빠진 상태에서, 이 같은 단협 내용은 회사측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결국 한국씨티즌정밀은 폐업 대신 매각을 선택한다. 2008년 4월 영세 신발제조업체인 고려TTR은 한국씨티즌정밀을 인수한 뒤 회사명을 제이티정밀로 바꿨다. 그런 다음 폐업·구조조정시 보상기준을 명시한 단협을 해지했다. 지난달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폐업을 통보했다. 문상환 금속노조 조직국장은 “창원시 외동 일대 공장부지와 회사아파트 등 부동산 실거래가가 200억원이 넘는다”며 “한국씨티즌정밀의 모기업인 일본 시티즌정밀이 기업 철수에 따른 노동자 보상을 피하고, 국내 부동산 매각 차익을 챙기기 위해 고려TTR이라는 ‘바지 회사’를 내세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향미 제이티정밀지회 사무장도 “모든 게 짜 맞춰진 각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기업과 외투기업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은 배당성향이다. 2008년 이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외투기업의 수출 감소가 두드러지면서 매출액 정체현상이 나타났지만, 당기순이익에 대한 현금배당액의 비율인 배당성향은 계속 증가했다. 2008년 외투기업의 배당성향은 70.4%로 국내기업(17.2%)의 네 배를 웃돌았다. 반면 외투기업의 기술개발(R&D) 집약도는 0.84%로 국내기업(1.71%)에 못 미쳤다. 투자를 게을리 하면서 배성성향만 높이고 있는 것이다.
 
‘빼 가고 또 빼 가고’  배당성향 국내기업의 네 배
 
광주 소재 산업용 에어컨 전문 생산업체인 캐리어는 2004년 이후 적자행진을 이어 오고 있다. 캐리어는 지난해에도 40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했고, 233명을 희망퇴직시켰다. 미국에 본사를 둔 캐리어는 국내 생산법인의 경영실적과 무관하게 주주배당을 실시해 비난을 받았다. 무려 364억원에 달하는 유보금을 본사로 가져갔다. 또 해외법인의 수익성 확보를 위해 국내 법인이 생산한 에어컨과 부품을 저가로 공급,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해 이익을 빼돌렸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이런 캐리어가 최근 에어컨·공조시스템부문(CLK) 사업 철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속노조 캐리어에어컨지회는 “투자약속 이행 없이 단물만 빼 먹고 빠지는 부도덕한 자본철수는 중단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익숙한 시사용어가 된 ‘먹튀(먹고 튀는)’ 행각을 꼬집은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만도기계 분리매각은 잘못된 해외매각의 대표적 사례다. 차익 실현에 눈이 먼 외국자본의 유입이 국내 산업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 여실히 보여 줬다. 2000년 JP모건의 페이퍼컴퍼니인 선세이지는 만도기계의 평택·문막·익산 공장을 인수했다. 나머지 공장은 발레오·위니아·VDO에 팔렸다. 선세이지는 정몽원 전 만도기계 대표가 지분 전량을 재매입한 2008년 1월까지 배당과 매각 차익으로 8천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 변정수 만도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만도를) 다시 인수한 뒤 살펴보니 선세이지가 중장기 계획 없이 단기이익을 내는 데 급급했다”며 “신기술 개발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주주배당을 늘리고 직원을 쥐어짜기에만 바빴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결과적으로 외투기업들은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을 골라 한국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노조와의 갈등, 특히 전투적 노동조합과의 갈등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신문용지 제작업체인 전남 영암의 보워터코리아의 경우 2007년 노조 간부의 성향을 분석하고 동향을 감시하는 내용의 내부 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사업철수가 고용불안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노조 압박수단으로 활용하는 외투기업도 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는 외투기업들이 쥐고 있는 무소불위의 칼이다.

경주의 자동차부품업체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가 그런 예다. 프랑스계 발레오전장은 만도기계 경주공장을 인수한 뒤 10여년간 5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렸다. 또 발레오전장의 지분을 100% 보유한 프랑스 발레오그룹은 497억원을 주식 배당금으로 챙겼다. 특히 2004년과 2007년에는 두 번의 유상감자로 1천100억원, 5년에 걸친 영업권 상각으로 750억원을 회수해 갔다. 공시된 내용보다 더 많은 금액이 발레오사로 넘어갔다는 노조의 주장을 감안하면 발레오전장은 초기 투자자금 1천650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이익을 환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적자가 발생하자 발레오전장은 국내 영업 철수 여부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외국계기업에 지원되는 세제혜택이 종료되는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사정이 이러니 외투기업과 관련한 조세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노동계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먹고 튈 궁리만 하는 외국자본에게 언제까지 ‘묻지마 퍼 주기’를 계속할 것이냐는 비판이다. 
 
언제까지 ‘묻지마 퍼 주기’ 해야 하나
 
한국에 투자한 외투기업이 받는 지원혜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외국자본 유치에 목을 매고 있기 때문이다. 지원내역을 살펴보면, 우선 법인세·소득세를 면제하거나 감면해 준다. 취득세·등록세·재산세 감면은 덤이다.<상자기사 참조>
외국투자가가 지급받는 배당소득에 대한 법인세·소득세도 감면된다. 외국인 투자가가 주식이나 출자증권·유가증권 등을 양도해 발생한 차익의 경우 조세협약에 따라 외국투자가의 거주지역에서 과세하게 돼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는 세금을 물릴 수가 없다. 조세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 조항이다.

외국인 투자규모는 99년 155억3천달러에서 2005년 115억6천달러로 줄었지만, 외국인 투자에 대한 감면세액 규모는 같은 기간 455억원에서 5천503억원으로 열 배 이상 늘었다. 이상동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은 “조세지원을 통한 외국인 투자 유인효과는 거의 없다”며 “세액 감면의 부담만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외투기업에 대한 이 같은 지원은 국내기업이나 국내투자가에 대한 역차별 문제를 야기한다. 지자체의 특혜를 받으려고 신규투자를 위장하는 업체까지 나오는 판이다. 경기도가 조성한 장안외국인산업단지에 입주한 파카코리아는 기존 시흥공장의 운영을 대폭 축소하고, 기술과 물량만 빼냈다. 그런데도 경기도는 외국인투자촉진법과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공장부지 임대료 100% 감면, 조세 감면, 각종 보조금 지원 등 특혜를 아끼지 않았다.

송태섭 금속노조 파카한일유압분회장은 “외국인전용산업단지에는 세종시 수준을 웃도는 파격적인 혜택이 국민 세금으로 지원되고 있는데도, 정작 지자체는 ‘영업비밀 침해’ 운운하며 입주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권 행사를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외국계 기업의 국내 투자가 본격화화한지 10여년. 단물만 빼 먹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외투기업 때문에 국민 혈세만 줄줄 새고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어야”
외국인 투자에 대한 감세정책의 근거는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이다. 우리나라는 조특법을 통해 외투기업에 막대한 혜택을 주고 있다. 조특법에 따르면 고도의 기술을 수반하는 사업을 영위하는 외국인투자기업은 법인세와 등록세를 10년간 감면받는다. 취득세·등록세·재산세와 종합토지세는 5년 동안 전액을, 그 다음 3년 동안은 50%를 감면받을 수 있다. 이를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전체 감면기간을 15년의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고, 그 기간 동안 50%를 감면해 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외국인투자가는 배당소득에 대한 법인세와 소득세도 감면받는다. 외국인투자가의 거주지 국가가 과세할 경우 조세협약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과세할 수 없다. 거주지 국가가 우리나라 거주자의 주식양도소득에 대해 면세를 허용하면,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부동산·임대료·보조금 혜택도 상상을 초월한다. 외투기업은 국·공유재산을 수의계약으로 임대하거나 매입할 수 있다. 국·공유재산을 임대하는 경우 임대기간을 50년까지 정할 수 있다. 임대료도 감면받는다. 지방자치단체는 외국인투자지역의 조성, 외투기업에 대한 임대료 감면, 보조금의 지급 등 외국인투자 유치활동에서 부담하는 비용을 국고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결국 조특법에 외국인 투자가와 국내기업 간 조세 차별이 명문화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법의 취지와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허영구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을 초래하는 외국자본 관련 조세제도는 재검토돼야 하며, 국제적 조세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구은회 기자

  
한국형 ‘폭스바겐법’ 만들자
“외국자본의 ‘치고 빠지기’에 맞서 국내 전략사업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주요 국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주요 산업에 대한 외국자본 유입규제 장치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98년 제정된 외국인투자촉진법에 기초해 외국자본 유출입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외국과 비교했을 때 규제범위의 폭이 너무 좁다. 우리나라는 외국인 투자제한 업종을 법에 구체적으로 열거(네거티브 리스트)했다. 투자제한 업종 이외의 모든 분야에 외국인 투자를 허용한 셈이다. 반면 외국은 관련법에 외국투자에 대한 포괄적 제한 조항을 두고 있다.
미국의 ‘엑슨-플로리오(Exon-Florio)법’이 대표적이다. 미국 의회는 일본 후지쯔사가 미국의 반도체회사인 페어차일드를 인수하려고 하자 88년 이 법을 도입했다. 주요 내용은 “외국인이 미국기업의 인수·합병 또는 실질적인 지배로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할 경우 대통령이 인수를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활발하게 외국에 진출하고 있는 미국조차도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이 같은 법적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다.
유럽에서는 독일의 ‘폭스바겐법’이 유명하다. 폭스바겐법은 독일 정부가 자국 자동차회사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이다. 독일은 2008년 폭스바겐법을 개정하면서 “자동차공장의 준공이나 이전 등의 문제는 반드시 노동자 대표와 합의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폭스바겐 지분의 20%를 가지고 있는 독일 니더작센주를 보호하기 위해 “80% 이상의 주주 동의를 얻어야 주요 결정사항을 타진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유럽 사법재판소는 “폭스바겐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막는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독일 정부는 “폭스바겐법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생산업체 중 하나인 폭스바겐그룹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고 반박했다. 폭스바겐법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인 상태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 사법재판소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독일 정부와 외투기업의 먹튀 행각에도 묻지마 지원을 계속하는 한국 정부.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구은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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