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다는 국가고용전략회의. 노동부가 브리핑하거나 보도자료를 낼 때마다 빠지지 않고 취재하긴 했다. 그렇다고 제대로 취재했다고 장담하기 힘든 애매한 상황.
사연은 이랬다. 참여연대는 지난 7일 청와대 대통령실·국무총리실·기획재정부·교육과학기술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국가고용전략회의와 이를 지원하는 3개 TF의 회의자료와 결과, 참석자 명단 등 자료 일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참여연대에 공개된 것은 회의개최 일지·회의안건명·참석자 명단뿐이었다. 정부는 구체적인 회의 내용 등에 대해서는 “내부 검토가 진행 중이거나 공개할 경우 자유로운 의견교환이 저해된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무총리실은 회의 참가자도 밝히지 않았다. 그나마 보내 온 두꺼운 자료는 이미 언론에 배포된 보도자료였다.
이 간사는 “국가고용전략회의는 사회적 논의기구 성격을 띤다”며 “우리를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거나, 유연화 중심의 대책만 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환점 찍은 일자리 대책
올해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국가고용전략회의가 반환점을 돌고 있다. 정부는 다음달 7차 회의를 열어 사회적기업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같은달 말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표 참조> 나머지 6개월은 앞선 회의에서 마련한 일자리 대책이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점검·평가하고 보완하는 기간이다.
지금까지 나온 얘기를 종합하면, 정부는 최종 보고서에 그동안 제기된 일자리 대책을 종합하고 향후 10년을 바라보는 장기전략을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사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보고서를 통해 고용전략과 관련한 장기적인 화두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 절반이 지난 이명박 정부의 고용정책이 다음달 발표되는 국가고용전략으로 사실상 완성되는 셈이다.
국민의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공통점은 집권 초기에 초유의 경제위기를 맞았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고용대란에 직면해 내놓은 고용대책도 비슷하다. 두 정부 모두 공공근로와 희망근로·지역공동체 일자리사업으로 대표되는 단기 일자리 대책으로 급한 불을 끄려고 했다. 집권 2년 동안 국민의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각각 3조6천368억원과 2조5천727억원의 예산을 이들 사업에 배정했다.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정부지원인턴과 청년인턴도 비슷한 차원에서 나온 두 정부의 단기 처방이었다.
특히 비정규직 증가 등 급격한 노동유연화 정책은 판박이다. 국민의 정부는 근로자파견 제도와 정리해고 제도를 도입해 우리나라 비정규직 증가의 ‘원흉’이 됐다. 이명박 정부도 경제위기를 맞아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연장하거나 파견허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비정규직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노동계의 반발에 밀려 실패했다. 현재 비정규직법 시행령을 개정했거나,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두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은 그 출발점이 다르다. 국민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지원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강요받은 측면이 있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는 노동유연화를 공격적이고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실업자 급증에 따른 대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 정부는 나름대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해 노력했다. 97년까지는 30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한 노동자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한 결과 98년 10월부터는 전 사업장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실직자 등에게 1년4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생계비를 지원했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증가 등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었다.
이에 반해 이명박 정부에서는 실업자 등 취약계층에게 직접 혜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눈에 띄지 않는다. ‘상담-직업훈련-취업알선’을 연계하는 취업성공패키지사업이나 디딤돌일자리·뉴스타트프로그램 등 일대일 맞춤 취업 프로그램과 사회적기업 활성화가 그나마 진행되는 사회안전장치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대폭 늘리고 지급요건도 완화했다. 그러나 취업성공패키지사업을 제외하면 이전 정부나 2008년 하반기 금융위기 발생 이전부터 시행됐던 제도들이다.
특히 국가고용전략회의 산하 ‘고용 및 사회안전망 TF’ 과제에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가 포함된 것은 현 정부의 철학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유연근로제·임금피크제·탄력근로 확대가 대표적이다.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과제보다는 ‘유연한 고용’을 위한 과제에 집중해 있는 것이다.
노동은 간데없고 유연화 깃발만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외환위기 학습효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유연화와 규제완화에만 치중할 뿐 제대로 된 고용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DJ와 MB의 일자리대책에서 또 하나의 주요한 차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국민의 정부는 정리해고제나 파견제도를 도입하면서 노사정위원회라는 공간을 활용했다. 형식적이나마 노동계의 협조를 구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이명박 정부도 노사정위에서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베이비붐세대 일자리대책과 근로시간 선진화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사회적 대화에 대한 무게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병훈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장은 “국민의 정부가 노동계와 동의를 구하기 위한 제스처라도 취한 반면 현 정부는 절대권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고용전략회의에 노동계나 노동계 추천전문가들이 참가하지 못하는 현실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명박 정부는 심지어 정책연대를 맺고 있는 한국노총이 성명서와 공문을 통해 노동계 참여보장을 촉구했는데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다음달 최종보고서를 만들기 전에 노동계와 대화한다고 하지만 의견수렴에 그칠 뿐 결정권한을 주는 것은 아니다”며 “국가고용전략회의가 아니라 공무원들의 내부회의일 뿐”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이 국가고용전략회의에 빠지면서 노동시장 해법 중 하나로 제기되는 ‘(사회적 일자리 등을 통한) 고용 증가→내수 진작→경제위기 탈출’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노동이 배제되고 유연화만 강조한 고용정책과 고용 없는 성장의 악순환이 국내 노동시장을 옥죄고 있다. 노동부가 고용노동부의 약칭을 ‘고용부’로 정한 것도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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