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순수 국내기술로 만들어진 KTX-Ⅱ입니다. 저기 뉴질랜드 마탕이전동차도 보이네요. 내년 말쯤 운행 예정인 경춘선 2층객차도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오후 경남 창원시 대원동 현대로템(주) 창원공장. 약 66만제곱미터(20만평) 부지에 철도차량 제작공장이 공정별로 나란히 늘어서 있다. 지난 76년 철도청에 납품한 1호선 전동차를 시작으로, 국내 최초 디젤기관차(79년)와 도시형 자기부상열차(88년), 한국형고속철도 KTX(94년)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93년 인도네시아 WWF전동차 8량으로 시작된 수출은 현대로템 전체 수주액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매일노동뉴스>가 한국 철도차량 생산의 전진기지 현대로템 창원공장을 찾았다.


철도 1량이 만들어지기까지

철도차량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대형선박 조립공정과 자동차 생산공정을 섞어 놓은 모양새다. 용접을 통해 차체를 완성하는 블록공정, 컨베이어 시스템과 유사한 ‘흐름공정’이 큰 축을 이룬다. ‘구체(열차 틀 만들기)→교정 및 상도(열차 바닥 평평하게 고르기)→도장(외장 색칠)→의장(방음·단열·장판깔기·문짝설치·배선 등)→바퀴조립’의 과정을 거쳐 열차 1량(1칸)이 완성된다. 완성된 열차 1량의 무게는 약 40톤. 1량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약 10억~20억원 정도다. 고급스러운 외관과 품질이 요구되는 수출차량이 국내로 출고되는 차량보다 비싼 편이다.

각각의 공정은 독립된 공장에서 제각각 이뤄진다. 구체공장에서 철도차량의 껍데기가 완성되면 대형 이동레일에 실려 교정공장으로 옮겨져 작업이 진행되는 식이다. 차량의 옆면과 앞뒤면, 바닥과 지붕을 만드는 구체공정은 속칭 ‘깡통 만들기’로 불린다.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마일드카(철) 등이 재료로 사용된다. 철판을 이어붙이는 작업인만큼 용접이 중요하다.

현대로템에 근무하는 용접 노동자들은 국가자격증을 갖고 있더라도 사내에서 치르는 특수용접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회사가 마련한 용접교육을 이수한 뒤 시험에 응시한다. 합격점이 나올 때까지 교육과 시험을 반복한다.

“구체공정은 특수용접을 통해 열차의 틀을 만드는 과정이에요. 이 과정에서 실수가 벌어지면 열차의 형태가 틀어질 수 있고, 차체에 균열이 발생할 수도 있죠.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고속열차에 틈이 생긴다고 생각해 보세요. 끔찍하죠. 최고의 용접기술자들만이 열차 제작에 투입될 수 있습니다.”

곽훈(43) 금속노조 현대로템지회 정책부장의 말이다. 이날 구체공장에서는 세계 각국으로 수출될 열차의 외관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KTX-Ⅱ를 비롯해 미국의 SEPTA 전동차·아일랜드의 동차·뉴질랜드의 마탕이전동차·터키의 마르마라이전동차·인도의 방갈로전동차·미국의 MBTA 2층객차 등이 열차의 형태를 덜 갖춘 채 대기하고 있었다.



‘최고 중 최고’ 철도 특수용접

용접 불꽃과 만나 변형이 심해진 철구조물을 평평하게 고르는 작업인 교정공정과 상도공정까지 완료되면 그 다음은 도장공정이다. 도장으로 차량의 외관을 아름답게 꾸미고, 미세한 틈새도 메운다. 묽게 갠 찰흙처럼 보이는 퍼티(putty)를 차량 표면에 발라 표면을 매끄럽게 연마한 뒤, 색을 입힌다.

여느 도장공장과 다름없이 화학물질과 인화성 물질이 즐비한 유해공정이다. 이곳에서 근무 중인 노동자 3명 중 1명은 사내하청노동자다. 현대로템 창원공장의 경우 완성차 공장이나 조선소에 비해 사내하청 비율이 매우 낮은 편이지만, 위험도가 높은 공정일 경우 사내하청의 투입률이 높아진다.

도장이 차량의 겉면을 꾸미는 작업이라면 의장은 차량의 안쪽 면을 꾸미는 작업이다. 가정용 장판보다 강도가 세고 코팅력이 우수한 리노륨을 바닥에 깔고, 벽과 바닥에는 유리섬유 단열재인 그라솔을 부착한다. 그라솔은 일반 건축물에 사용되는 석고보드처럼 단열과 방음효과를 위해 쓰인다. 고속철도의 경우 이중의 방음효과를 위해 나무를 추가로 부착하기도 한다.

“유리섬유는 불에 타지 않아요. 2003년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당시 사고열차는 단열재로 스티로폼의 일종인 피폼을 사용했습니다. 예전엔 석면도 사용했어요.”
장금식(42) 지회 제도개선연구위원의 말이다. 대형참사를 겪고 난 뒤 철도차량 단열재로 유리섬유를 쓰는 사례가 늘어났다. 그는 “유리섬유의 미세분진 등이 노동자들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유리섬유 대체품으로 실리콘을 쓸 수 있지만, 가격이 7배나 비싸다”고 말했다. 철도 고객은 물론 노동자의 건강까지 챙기려면 돈이 든다는 얘기다.

내장재 설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차량 실내에 배선작업을 진행한 뒤 문짝과 바퀴를 단다. 전기 케이블을 외상·습기·열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케이블덕트 같은 단순부품은 외주 협력업체에서 모듈형태로 생산된 제품을 사용한다. 열차에 부착되는 문짝 역시 외주업체에서 만들어진 것을 들여온다.

차체와 내·외장 작업이 마무리됐으니 이제 '신발'을 신길 차례다. 대차차입 공정은 바퀴를 조립하는 과정이다. 열차 1량마다 2쌍의 바퀴가 굴러간다. 차량 바닥에는 인터버(전동체 제어시스템)와 SIV(신호제어시스템) 같은 핵심 부품이 설치된다. 현대로템의 연구개발은 핵심부품 분야에 집중돼 왔다. 부품 국산화율이 90%를 넘어섰다. ‘Made in Korea’ 마크가 선명하다.

따로따로 만들어진 차량을 연결하는 작업을 차량편성이라고 부른다. 열차에 따라 10~20량의 차량이 연결된다. 차량이 편성되면 12만5천볼트의 고압전류를 흘려보내는 기능시험이 진행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완성차량에 대한 품질검사까지 마무리되면 해당 열차는 출고돼 세계 시민의 발이 된다.



'다대차' 타고 이 공장에서 저 공장으로

현대로템 생산직의 직위는 9단계로 나뉜다. '3급→4급→5급→6급→7급→조장→반장→직장→기원' 순으로 진급한다. 현장직(생산직) 2천61명 중 오직 1명뿐인 기원 김오석(56)씨는 78년 입사해 올해로 33년째 근무하고 있다. 3년 뒤면 정년이다.
“입사 다음해인 79년에 국산 최초로 디젤기관차가 만들어졌어요. 비록 도면은 미국서 들여온 것이었지만, 우리 손으로 해냈다는 뿌듯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경부선 KTX 열차를 우리공장에서 처음 제작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김씨의 회사생활은 한국 철도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공장 구석구석에 그의 손길과 눈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창원공장만의 제작 시스템인 ‘흐름공정’은 그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완성차 공장에서 1분에 한 대씩 자동차를 만들어 내잖아요. 거기에 착안해 6년 전 우리 공장에 도입한 것이 흐름공정이에요. 예전엔 고정된 장소에서 차체를 만들고 도장·의장 같은 전체 공정을 진행했어요. 각종 자재가 널려 있다 보니 사고가 잦았고, 작업 효율도 떨어졌죠.”

흐름공정의 장점은 말 그대로 작업 공정이 물 흐르듯 진행된다는 것이다. ‘다대차’라고 불리는 이동틀에 올려진 차체가 공정을 따라 순서대로 이동한다. 다대차가 공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노동강도는 그대로인데 작업안전도와 제품품질이 높아졌으니 일석삼조인 셈이죠. 국내 철도산업의 출혈경쟁 구조를 바로잡고 기술과 작업공정 혁신에 공을 들인 결과입니다.”
현대로템은 99년 대우중공업·한진중공업·현대정공의 철도차량 사업부문이 통합돼 만들어진 회사다. 철도차량 제작사업은 김대중 정부가 주도하던 산업구조 합리화 조치의 첫 번째 영역이다. 3사 경쟁체제로 인한 ‘제 살 깎기 식’ 수주경쟁이 산업경쟁력 약화로 나타나자 정부가 칼을 빼든 것이다. 기존 3사는 99년 신설법인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로 통합됐고, 2002년 (주)로템으로, 2007년 현대로템(주)으로 사명이 변경됐다.

그런 가운데 최근 철도차량 제작사업이 과거의 경쟁체계로 회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공사가 7호선 연장선에 투입되는 전동차를 직접 만들겠다며 제작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상자기사 참조>

현대로템이 최근 몇 년간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차량에 설치되는 핵심부품의 국산화다. 이는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시속 350킬로미터급 한국형고속열차 KTX-Ⅱ의 탄생이라는 쾌거로 이어졌다. 부품수 대비 92%를 국산화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일본과 프랑스·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시속 35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는 초고속열차를 독자적으로 제작·운영할 수 있게 됐다.


국내 빅딜 1호 사업장, 아직 갈 길 멀어

현대로템은 생산량의 70%를 해외로 수출한다. 미국·아일랜드·튀니지·브라질·홍콩·터키 등 34개국에 철도차량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철도차량 시장은 캐나다 봄바디어(23%)·프랑스 알스톰(17%)·독일 지멘스(17%)·미국 GE(8%)가 점유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일본 가와사키중공업(3%)에 이어 세계 8위에 자리 잡고 있다.

세계 시장을 놓고 볼 때 현대로템은 3% 안팎의 점유율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 없이 자력으로 버틴 결과다. 철도 선진국들이 자국의 독점체제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강화해 온 것과 대비된다. 국가기간산업에 준하는 철도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려면, 최소한 자국 시장 안에서의 안정성만큼은 보호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김종형 현대로템지회장은 “정부는 입으로 녹색물류를 외치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책은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최근 인천·대구·부산·김해 등 경전철을 도입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지자체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개입찰에 응하는 외국의 철도제작업체를 선호한다. 가격경쟁력 등이 고려된 결과이지만, 외국업체의 국내진출이 늘수록 국내기업의 설 곳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김 지회장은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정책과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도 좁은 국내 시장을 외국업체들과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금속노조 현대로템지회(지회장 김종형·사진)는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전동차 자체제작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전동차 점검·보수 경험을 바탕으로 전동차를 제작하겠다는 공사의 계획은 마치 “버스정비업체가 버스를 제작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지회는 특히 “부품을 국산화해 전동차 제작비용을 열차 1량당 5억원까지 줄일 수 있다는 공사의 발상은 위험천만하다”고 주장한다.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내 철도차량 제작시스템에 경쟁의 논리가 재등장한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철도차량 제작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90년대 말 철도제작 3사를 통폐합한 산업구조 합리화 조치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종형 지회장은 “공기업인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전동차를 자체 제작하게 되면 민간기업인 현대로템과의 출혈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품질저하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공기업이 민간기업의 사업영역에 뛰어든 것도 논란거리다. 지방공기업법은 지방공기업이 민간경제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사업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공사가 전동차를 제작·조립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서울시 도시철도공사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개정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장기적으로는 예상되는 부작용은 바로 고용 문제다. 공사는 일단 7호선 연장구간 온수~부천~부평구청에 들어가는 56량에 자체 제작한 열차를 투입할 계획이다. 지회는 아직까지는 현대로템 노동자들의 고용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업체 간 경쟁체제가 고착화될 경우다. 김 지회장은 “도시철도공사가 현 사장의 임기 동안 실적을 만들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며 “정부가 민간기업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은회 기자

현대로템 현장직 노동자들의 평균나이는 51세, 평균 근속연수는 26년이다. 무려 40년간 근속한 노동자도 있다. 제조업 산업현장의 고령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매년 50명 이상의 정년퇴직자가 회사를 떠나지만, 신규채용은 말 그대로 가뭄에 콩 나듯 이뤄지고 있다. 2008년 4명, 2010년 13명 등 최근 3년간 고작 17명이 입사했다. 현대로템 노사는 단체협약에 감소되는 인원만큼 신규충원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 생산물량이 감소하면서 사문화됐다.
산업현장 고령화의 가장 큰 문제는 생산현장의 숙련단절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곽훈 금속노조 현대로템지회 정책부장은 “정년에 다른 자연감소 추세를 감안하면 20년 후면 정규직 인원은 현재의 2천62명에서 100명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규채용이 전혀 없다는 극단적인 전제를 가정한 결과이긴 하지만 그만큼 많은 숙련공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는 뜻이다.
타 업종과 마찬가지로 정규직들이 떠나는 자리는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으로 메워질 것으로 보인다. 곽 부장은 “사내하청 비율을 꾸준히 늘리다가 ‘적정인원 유지’ 쪽으로 인력운영 정책을 전환한 일본의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히다찌사의 경우 사내하청의 증가가 제품의 질 저하로 이어지자 인력운영 정책을 전환했다.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자사가 직접고용하는 인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회 역시 현장직 정원유지를 위해 신규충원과 퇴사자 기술전수 방안을 회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지회는 올해 단체협상 요구안으로 △정년퇴직 인원만큼 신규채용 △현장직 중 자녀 대체채용 허용 △정년퇴직자의 노하우 전수를 위해 계약직으로 특수채용하거나 협력업체와 연계해 일할 수 있는 방안 모색 △창원공장 내 계약직·임시직·촉탁직의 정규직 전환 △신규 채용 인원의 20%는 사내 협력업체 작업자 중 채용할 것 등을 제시한 상태다. 구은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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