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석면을 ‘소리 없는 살인자’로 비유한다. 그 이유는 석면에 한번 노출되면 그 후에 다시 노출되는 일이 없어도 장기간의 잠복기를 거쳐 폐암·석면폐·중피종 등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최근 건설 등 노동현장에서 석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지난해 건설산업연맹은 석면피해 건설노동자 찾기·지원 국민 캠페인을 벌여 주목을 받았다. 석면이 가장 먼저 이슈화된 노동현장은 지하철이었다. 지난 2001년과 2002년 서울 지하철 역사를 표본추출해 유해물질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환기덕트 이음부의 가스켓에 있는 섬유상 물질의 90% 이상이 석면으로 조사됐다. 가스켓에서 적게는 10~15%, 많게는 30~40%의 백석면이 검출됐다. 대법원은 2007년 역무원으로 일하던 노동자의 폐암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역무원 근무 18년 만에 폐암 얻어

85년 서울메트로(당시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에 운수사무직으로 입사한 ㄱ씨(사망 당시 43세). 그는 역무원으로 지하에 있는 역사 안에서 승차권 판매, 개집표소 기기 상태 확인, 고장시 초동조치, 부정승차 단속, 사고 예방, 선로 상태 확인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다 2001년 3월 비소세포 폐암의 일종인 선암 진단을 받았고 2003년 1월 사망했다.
ㄱ씨가 85년부터 89년까지 24시간 맞교대 형태로 근무한 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서는 87년 5월부터 88년 7월까지 공사가 진행됐다. 부근에 건축 중이던 롯데월드의 지하 1층 입구와 지하역사 통로를 연결하기 위해 기존 출입구 한 곳을 지하도로 대체하고 정거장 환기구 한 곳을 이설하는 공사였다. 공사 과정에서 잠실역 해당 부분의 천장과 바닥·벽체가 일부 해체되고 환기실 일부가 철거됐다. 확기덕트 이음부의 가스켓을 뜯어내기도 했다.

복지공단, 업무상질병 인정 안해

잠실역사는 우리나라에 석면 유해성이 잘 알려지지 않은 80년대부터 83년 사이에 준공된 서울지하철 2호선 역사 중 하나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역무실·매표소 등의 바닥재로 석면이 1% 포함된 염화비닐아스타일이 사용됐고, 환기덕트 이음부의 가스켓에도 상당량의 석면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도 당시 공사는 바닥재와 가스켓 해체 작업공사를 하면서 별다른 석면 비산 방지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ㄱ씨는 20년간 하루에 평균 두 갑의 담배를 피웠다. 선암은 폐암 가운데 비교적 흡연과 관련성이 적지만 전혀 없지는 않다.
ㄱ씨의 폐암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질병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4년간의 법정 소송 끝에 유가족은 업무상질병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이끌어 냈다.
대법원은 “망인의 업무 내용과 잠실역 근무 당시 잠실역사 통로 연결공사의 석면 노출 정도, 석면의 유해성과 폐암의 연관성 등을 종합하면 87년부터 88년까지 진행된 잠실역에 근무하면서 석면에 노출됐고, 석면이 한 원인이 돼 폐암이 발병됐거나 자연적인 진행 경과 이상으로 악화됐다”고 판시했다.


[관련판례]
대법원 2007년6월1일 선고 2005두517
서울고등법원 2004년12월10일 선고 2003누21956
대법원 1997년2월28일 선고 96누14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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