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교육센터 연구원

우리는 지금 여수·광양으로 간다. 2012년 여수 엑스포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올 새해 벽두에 노동부는 여수·광양산단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노동부는 “이번 여수·광양산단 역학조사는 이전까지 파악하지 못하였던 플랜트건설 근로자의 대정비 작업을 처음으로 평가했으며, 대정비 작업에 종사하는 일부 근로자들은 발암성 물질인 벤젠 등에 공기 중 노출기준을 초과한 노동에 노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벤젠 등의 발암성 물질이 노출기준을 초과한 경우는 대정비 작업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지 않아 잔류된 물질에 의해 유발된 것이 대부분이므로 작업절차를 준수하도록 하는 보건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인 화학노동자들도 샘플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벤젠과 1,3-부타디엔·염화비닐(VCM) 등 발암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인가.

이미 지난 96년 이뤄진 역학조사에서 이러한 문제는 제기된 바 있고(물론 그때는 대정비 작업이라고 하는 가장 위험한 조건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 결과에 따라 당시 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이 국정감사에 출두해 ‘석유화학설비 유지보수 안전관리기준’을 연구·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나마 2004~2005년, 여수지역 화학노동자들이 한 푼씩 거출해 만든 재원으로 연구소가 중심이 돼 조사된 결과로 만들어 낸 2007년 ‘석유화학장치산업 노동자 보호를 위한 단기간 노출기준’ 제정이 현재로선 유일한 변화다.

20년 전 노동조합 지원활동을 시작한 필자는 여수산단에 처음 찾아갔을 때 느꼈던 벅찬 감동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90년대 초반 여수산단은 막 물이 오르려는 상태였다. 노동조합들은 하나 둘씩 민주노총에 가입했고, 그렇지 않은 사업장에서도 뭔가 싸워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이러저러한 활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특히 야간에도 생산을 멈출 수 없었던 여수산단의 야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거기에서 ‘동일업종의 동일지역 노동자, 사업장 구분 없이 모든 파이프라인이 여수산단 내에서 하나로 연결된 이곳, 이곳은 천혜의 활동지역’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그때는 여수산단이 발암물질 천국인 줄 알지 못했다. 2003년 국내 최초의 정유노동자 파업이 있었고 당시의 이슈는 ‘발암물질을 쏟아 내는 여수산단의 사업주들은 지역주민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라’는 너무도 간단한 요구였지만 철저히 묵살됐다. 자본의 총공세 속에서 지금도 현장은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이제 여수·광양지역에는 막강한 건설 플랜트 노동자들이 합류했다.

필자는 여수산단 노동자들에게 빚을 진 것 같은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다.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지난 20년 동안 왜 큰 변화를 도모하지 못했을까 하는 책임감이다. 여수지역의 시민들은 다른 지역주민에 비해 암발생률이 1.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노동자냐 아니냐, 여수·광양산단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여수·광양산단으로 간다. 그리고 노동자를 조직하고 지역시민과 함께 ‘발암물질로부터 안전한 여수·광양 만들기’ 사업을 진행할 것이다. 여기에는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화학섬유연맹, 진보적인 정당과 지역시민단체, 그리고 연구진이 함께하고 있다. 6·2 지방선거에 입후보한 지역의 후보자들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중앙과 지역에서 노동부 항의방문이 진행되고 있다. 여수에서는 지난달 5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법을 바꿀 것이며, 노동자와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이윤을 챙기는 재벌기업들에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명확히 물을 것이다. 이것이 2012년 여수 엑스포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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