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광주광역시 망월동 5·18 구묘역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날 5·18 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 광주성지순례에 나선 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 양성윤) 조합원들은 열사들이 안장돼 있는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참배를 마친 후 지부별로 흩어져 인근 구묘역으로 향했다. 이어 열사의 묘 앞에서 최근 정부가 공무원들에게 금지시킨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불렀다.

행정안전부는 성지순례와 노동자대회에 참석한 공무원들을 중징계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날 300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채증에 동원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조합원들은 묘역에서부터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아무개(45) 조합원은 “설립신고도 안 내주고 탄압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공무원들의 정서와 의식수준이 달라진 만큼 정부는 빨리 설립신고를 내주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충남지역노조·사무금융연맹 등 일부 조합원들도 같은날 노동자대회 참석에 앞서 구묘역을 참배했다. 전국 각지에서 온 대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얼굴 없는 노동자들

이날 오후 4시부터 시작된 민주노총의 ‘5·18 민주항쟁 30주년 기념 전국노동자대회’에는 주최측 추산으로 5천여명의 노동자·대학생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노동자대회는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리는 집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집회장소가 전경버스로 둘러싸이지도 않았고, 시내 한가운데여서 그런지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집회를 구경했다. 정부의 공무원노조 탄압에 대한 영상이 나오자 길을 걷던 시민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지켜봤다.

집회 참가자들은 공무원노조 탄압에 대한 항의표시로 마스크·고양이 가면 등을 착용했다. 모자에 마스크·선글라스·가면으로 ‘완전 무장’한 공무원 김아무개(41)씨는 “특별하게 고양이 가면까지 써서 더 답답하다”며 “스스로 좋아서 모인 조직인데 불법이라고 낙인찍고, 휴일 집회까지 막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김씨는 “중징계를 한다고 하니까 많이 위축된 건 사실”이라며 “공무원들이 6·2 지방선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근 건물에서는 행안부 관계자와 경찰 10여명이 채증을 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해직 공무원인 강수동씨는 “공무원은 거주 이전의 자유도 없다”며 “국가기념일에 국립 5·18민주묘지에 못 오게 하는 것이야말로 반국가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5월 정신 잊고 살았다”

양성윤 위원장은 “30년 전 공무원노동자들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독재정권의 총칼에 침묵했다”며 “광주영정들 앞에서 정권의 손발이었던 공무원노동자들의 오욕의 역사를 고백한다”고 말했다. 도쿠나가 히데키 국제공공노련 부회장(전일본자치단체노조 위원장)은 이날 대회에 참석해 공무원노조에 투쟁기금 50만엔을 전달했다. 도쿠나가 부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국제노동기준과 노동기본권·공공서비스 그리고 기본적인 인권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지난해 9월 우리가 지지하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고 즉각 (공무원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현재 구체적인 법제화 준비가 추진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최근 정부가 5·18 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 공식행사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겠다고 밝 것과 관련해 분노를 표출했다. 백정남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하는 것은 5·18 정신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천안함 사건으로 반공이데올로기를 부르짖고 국가보안법을 부활시키려는 정권을 6·2 지방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최측은 이날 집회 참가자들이 30년 전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릴 수 있도록 주먹밥을 나눠 줬다.

“나와 가족 위해 투표로 말하자”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30년 전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을 향해 폭도라고 외쳤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과 함께 살자고 싸웠던 용산철거민들을 폭도로 내몰았던 이명박 정권이 무엇이 다르냐”며 “오월 정신을 잊고 살았던 것을 저부터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손에 든 홍보물 뒷면에는 ‘나와 가족을 위해 투표로 말하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선봉에서 민주시민·청년 학생·농민과 손잡고 30년 전 도청을 사수했던 결사항전의 자세로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권을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강조했다.

진보정당 후보들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주문도 있었다. 대회에 참석한 김상태 금속노조 고강알루미늄지회 부지회장은 “울산시장은 아직 단일화가 안 돼 있어 조합원들이 갈라지고 있다”며 “시민·사회단체들의 바람대로 단일화가 된다면 조합원들의 고민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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