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텔레비전에서는 벌집을 제거하는 119 구급대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곤충연구소에 따르면 말벌에 쏘였을 경우 말벌 독에 대한 감수성 정도에 따라 사람이 사망할 수 있고, 실제 사망사례가 보고돼 있다. 말벌의 독은 저분자 펩티드에 포함된 키닌·세로토닌·히스타민과 같은 아민계열의 화합물로 꿀벌보다 더 위험하다. 꿀벌은 침을 쏜 후 독주머니와 함께 해당부위에 침을 남겨 놓는다. 하지만 말벌은 침을 찌르고 독액을 주입한 후 완전한 상태로 보전되므로 반복사용이 가능하다.
 
특정물질에 의해 갑자기 그리고 극심하게 예기치 못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아나필락시스라고 한다. 피부·호흡기·순환기·소화기의 증상·증후가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이상 복합적으로 나타나는데 벌 같은 곤충에 쏘인 뒤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벌집을 제거하는 업무 중 벌에 쏘인 후 사망했을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벌집 제거하다 말벌에 쏘여

공주의 한 사회복지법인에서 관리과 소속 생활지도원으로 일하던 ㄱ씨는 환우 생활지도·위생관리(양치·면도 등)·외래진료 보조·흡연관리·아침운동 진행·시설물 안전관리·환우 안전지도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ㄱ씨는 2006년 9월25일 고추를 말리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건물 2층 옥상에 올라갔다. 옥상 위에는 말벌이 날아다니고 있었고, 옥상 가장자리 굴뚝 안에 가로·세로·높이가 약 60센티미터 정도의 큰 벌집이 있었다. ㄱ씨는 당시 “전에 벌집을 제거해 본 일이 있는데 환우들이 위험할 것 같으니 벌집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을 시켜 살충제를 가져오게 한 후 다른 사람들에게는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라고 말한 다음 혼자 벌집을 향해 살충제를 뿌렸다. 그러던 중 귀 밑 목 부위를 말벌에 쏘이고 말았다. 옥상에서 내려와 의무실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방문을 나서다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ㄱ씨는 인근 의료원으로 급히 후송됐지만 약 2시간30분이 경과한 후 사망했다. 직접사인은 과민성쇼크와 뇌졸중(추정), 중간선행사인은 아나필락시스 반응, 선행사인은 벌에 쏘인 것이었다.

기존에 심장질환 앓아

ㄱ씨의 유가족은 한 달 후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재해에 해당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공단은 그러나 “망인에 대해 부검을 실시하지 않아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 수 없고, 통상적으로 아나필락시스의 임상경과와 불일치하며 망인의 과거병력상 심장병 등 급사에 이를 수 있는 기존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사망에 이른 직접사인이 업무와 의학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ㄱ씨는 사고 발생 전인 2005년 2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의료원에 내원했다가 관동맥풍선확장성형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수술경과는 양호했지만 평생 약물을 복용하고 외래진료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3남1녀 중 셋째로 형제들에게 모두 심장질환이 있었다. 흉통·호흡곤란이 있어 급성심근경색으로 급사의 위험이 있다고 기재된 의무기록이 남아 있었고, 뇌경색·췌장염·당뇨병·간경변증·알코올성 간염·만성폐쇄성 신우신염·만성신부전·고혈압·급성심근경색·협심증 등의 상병으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서울행법, 업무상재해 인정

공단은 ㄱ씨의 업무상재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망인의 업무에 시설물 안전관리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벌집을 제거하는 일이 망인의 업무내용에 포함돼 업무수행성이 인정되는 점 △벌집을 제거하던 도중 말벌에 쏘였고 꿀벌과 달리 말벌은 침을 쏜 부위에 남겨 놓지 않기 때문에 침이 없었다고 망인이 말벌에 쏘이지 않았다고 볼 수 없는 점 △말벌의 독에 대한 감수성 정도에 따라 사람이 사망할 수 있고 사망한 사례가 많이 보고돼 있는 점 △일반적으로 뇌출혈의 경우는 1시간 내에 사망하지는 않는데 망인은 벌에 쏘인 후 25분 정도가 경과돼 쇼크상태에 빠져 사망한 점 등을 감안했다.

법원은 “망인은 벌집을 제거하는 업무를 수행하던 도중에 말벌에 쏘여 아나필락시스 반응에 의한 과민성 쇼크로 인해 사망했거나, 적어도 말벌에 쏘여 기존질환인 심장질환 등이 자연경과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돼 사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관련판례
서울행법 2008년3월4일 선고 2007구합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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