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고 또 이들의 상당수는 직업을 가진 노동자들이다. 최근 여성고용동향분석 통계를 보면 여성의 경우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의 47.7%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여성의 절반에 가까운 비율이 고용 노동자인 셈이다.

최근 여성의 고용비율이 점차 높아지면서 이들의 노동보건 문제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현장에서 건강과 관련한 여성 차별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감정노동 문제, 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산부인과적인 문제, 여성의 심야노동·교대근무 문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의자 문제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은 1일 평균 6시간 이상 의자를 사용한다.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경우도 상당수는 앉아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의자는 가장 중요하고 가까이 접하는 작업도구다.

이처럼 작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의자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의자가 높아 발뒤꿈치가 땅에 닿지 않는다거나, 의자의 좌면 길이가 너무 길어 허리가 등받이에 닿지 않아 대신 쿠션을 사용하는 경우를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왜 이런 문제들이 생길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작·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사무용 의자와 책상이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여성용 책상과 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5차 한국인 인체치수(Size Korea) 중 20~55세 연령의 평균치수를 참고하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평균 신장이 13.0센티미터나 작다. 따라서 적절한 책상 높이와 의자 높이를 결정하는 다른 인체치수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책상 높이를 결정하는 ‘굽힌팔꿈치 높이’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7.8센티미터나 작으며, 의자 높이를 결정하는 ‘앉은 오금(무릎이 구부러지는 다리 뒤쪽 부분)의 높이’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3.1센티미터나 작다. 평균적 개념이긴 하지만 여성을 기준으로 할 때 현재 시용하고 있는 의자와 책상은 그만큼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2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시판되고 있는 의자의 문제점을 연구한 적이 있다. 결과는 여성용 의자가 없다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시판 중인 의자의 경우 의자 좌면높이의 최하치가 노동부 기준(350밀리미터)은 물론이고 KS규격(380밀리미터)보다 높아 여성들이 불편함을 느낄 가능성이 높았다. 20~55세 여성의 평균 오금의 높이(367.8밀리미터)를 고려할 때 현재 시판 중인 의자의 평균 좌면높이(하한값 기준 400.8밀리미터)는 여성의 50%만 만족시킬 수 있다. 나머지 50%는 심하게 표현하면 버려진 셈이다. 의자 좌면의 길이도 마찬가지다. 현재 시판 중인 의자는 좌면의 길이 또한 너무 길다. 20~55세 여성의 25%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의자 등받이에 허리가 닿지 않거나 발뒤꿈치가 들릴 수밖에 없는 최악의 조건이다.

의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등받이다. 만약 등받이 없이 의자에 앉아 있다면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는 자세에 비해 45% 이상 디스크압력이 증가해 허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음식점에 가면 벽에 허리를 기대려고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허리 아픈 사람들의 노력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체치수에 맞지 않는 의자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일의 능률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 근골격계질환자 발생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필자가 연구한 결과를 참고하면 사무직 노동자 3천212명을 조사한 결과 1년 동안의 근골격계질환 치료 경험자를 성별로 비교하면 여성이 40.7%, 남성이 27.6%로 여성이 훨씬 많았으며, 의자·책상에 대한 불만족도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

과거에는 작업자가 작업조건에 맞춰 불편한 자세로 일을 했지만 이제는 일하는 자의 인체조건에 작업조건이 맞춰지는, 이른바 '인간공학 시대'다. 여성 노동자의 불편한 의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설명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여성용 의자 제작을 위한 국가 표준이 제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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