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집단소송제도

집단소송제도란 집단으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이해관계가 밀접한 다수의 피해자 중에서 대표당사자가 소송을 수행하고 피해자 중에서 별도로 제외신고를 하지 않는 한 당연히 판결의 효력이 피해자 전체에 미치게 하는 제도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제기됐던 고엽제소송, 자궁내피임기구소송, 유방성형소송, 석면소송, 자동차관련 소송, 담배소송, 회계법인 어니스트 앤 영에 대한 분식결산책임소송 등이 집단소송의 형태로 제기된 것들이다. 만약 우리나라에 이러한 제도가 있었다면 세종하이테크 주가조작사건, 대우계열사 분식회계사건 등의 경우 집단소송을 통해 투자자의 구제가 가능했을 것이다.
 
증권집단소송제도란 증권분야에 국한된 집단소송제도로, 증권투자자들의 집단적 피해사건을 집단소송의 절차에 따라 해결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현재 내부자거래, 시세조종, 분식결산, 부실공시, 편법운용 등 각종 증권관련 불법행위에 따른 피해자가 수천 수만 명에 이른다. 피해자들이 서로 모르는 관계이므로 일일이 선정절차를 거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불특정 다수인 소액주주의 피해를 효율적인 절차에 의해 구제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바로 증권집단소송제도이다.
 
증권집단소송제도가 최근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게 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집단적 피해가 점점 잦아지고,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사회와 같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지분분산을 근간으로 하는 경제구조 하에서는 집단피해가 일상화되고 있으므로 양당사자의 평등을 전제로 한 소송법의 원리는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개인은 시간과 비용 면에서 거대한 기업이나 조직체에 대항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설령 소송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손해부분이 전체 피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소를 제기할 실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집단소송제도가 없으면 불법적인 행위가 남발해 사회 전체적인 비용이 증가할 것이다. 즉 집단적 피해사건의 경우 가해자들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로비를 해 이를 해결하려 하고 설령 처벌을 받더라도 불법행위에 따른 엄청난 이익을 고려할 때 법을 어기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행위가 계속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과거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이 폭로된 이후 주가조작 당사자들이 챙긴 엄청난 이득에 비해 처벌이 가벼웠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주가조작이 더 성행하게 됐다. 결국 주가조작, 분식회계 등에 따른 비용이 사회의 전 구성원들에게 전가돼 국가경제발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른바 외부불경제, 시장실패,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집단소송제도가 없는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은 계속 약화될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과 회계시장이 세계적으로 통합되는 추세에서 집단소송에 단련되지 않는 국내기업들이 국제적으로 치명적인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진정한 기업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집단소송제도를 통해 국제적인 수준의 법적 제도에 적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또 집단소송제가 없어 증시불공정행위가 많아지면 외국인 투자자를 비롯한 건전한 투자자들을 시장에서 몰아낸다. 이는 자본시장의 발전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기업들에게도 손해가 된다.
 
넷째, 집단소송제도는 사법자원의 낭비를 예방하고 법적 안정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현재 집단소송이 없기 때문에 집단적 분쟁이 한번에 해결되지 않고 여러 법원에서 여러 사건으로 계류되기도 한다. 예컨대 과거 국민투신 러시아펀드관련 소송은 서울 본원과 남부지원, 울산법원 등 여러 법원에 십 여건이 계류되었으며 결과도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의 경우 노동조합이 사용자의 직장폐쇄에 대항해 약 3만 건의 소를 제기해 각 법원이 평균 약 1천의 소송을 처리했던 경험때문에 단체소송 제도가 도입됐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면 사법자원의 낭비를 줄일 수도 있다.

성공적 소액주주운동의 조건 및 한계점

소액주주운동의 성공을 위한 조건

객관적이고 공공성을 지닌 단체나 기관이 소액주주를 대표해야 하며 소액주주들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위임해야 한다. 대표기관이 전문성을 유지하여 투자자와 시장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아야 하며 시장경제의 원리를 존중하는 공익적 시민운동이 돼야 한다.

증권관련 종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소액주주운동이 부당하게 경영에 간섭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소액주주운동의 의미는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평가가 곧 소액주주운동이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문가그룹의 헌신에 기초한 공익적 시민운동으로서의 소액주주운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소액주주운동이 ‘운동’에 그치지 않고 ‘제도화된 현실’로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소액주주의 이해를 스스로 대변하는 집단이 직접 나서야 한다.
 
소액주주운동의 한계점

첫째, 소액주주의 권리가 과잉 대표됨으로써 오히려 기업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즉 시민단체가 무슨 권리로 기업경영에 사사건건 간섭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양적으로만 차이가 날뿐 질적으로는 평등한 주주의 권리(그것이 소액주주의 것이든 대주주의 것이든 간에)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나온 것이다. 나아가 총수의 권리만이 과잉 대표됨으로써 독단경영이 이뤄진 후진적 기업지배구조의 현실을 은폐하고 있다.

둘째, 소액주주운동이 외국인투자가의 의결권을 위임 받아 진행됨으로써 결국 이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즉 소액주주운동은 국부를 해외로 유출시키고 국민경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는 트로이의 목마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그 자체로는 유효할지 모르나, 건전한 기업지배구조 창출 없이는 국부 증진도 국민경제의 안정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


국내외 소액주주운동 사례
 
우리나라 사례

제일은행 소액주주운동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은 1997년 2월 한보철강에 부실여신을 제공해 은행을 부실하게 한 제일은행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소액주주운동으로부터 시작됐다. 참여연대는 거리 캠페인을 통해 제일은행 소액주주들을 소집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 참가해 은행 경영진에게 부실 경영의 책임을 물었다. 이에 은행 측이 주주들의 발언을 저지하자 참여연대는 주주총회결의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주주총회 이후에는 다시 주주들을 소집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재판부는 원고 측 주장을 전부 받아들여, 이아무개 전 행장 등 4명의 피고들에게 총 400억원의 손해액을 은행에 배상하도록 했다. 
1998년 1월에는 정부가 부실이 가장 심한 제일은행에 대해 감자 명령을 내렸다. 이에 참여연대는 경영에 참가할 권한이 없는 소액주주들에게 경영감시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에서 감자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정부 기관과 IMF에 공식서한을 보내는 한편, 제일은행 이사회의 감자결정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물론 감자 및 증자 조치로 인해 94%에 달하는 지분을 보유한 정부의 의결권 행사로 참여연대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삼성전자 소액주주운동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은 지난 1998년 10월 참여연대가 삼성전자 소액주주 22명을 원고로 삼성전자의 전·현직 이사 11명에게 부당 행위와 부실경영으로 회사에 입힌 손해를 배상하라며 제기한 소송이다. 2000년 11월에 있었던 1심 판결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11명의 이사들에게 총 977억원의 배상판결을 이끌어낸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이건희 회장의 뇌물 공여건과 삼성종합화학 주식 저가 매각, 이천전기 출자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2003년 11월20일 서울고등법원은 참여연대가 삼성전자 소액주주와 함께 제기한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2심에 대해 이건희 회장이 70억원, 삼성의 전현직 이사 5명이 120억원을 회사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건희 회장의 뇌물 공여 건은 이건희 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회사자금을 이용해 뇌물을 제공했던 사실이다. 삼성종합화학 주식 관련건은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계열사에 보유 중인 삼성종합화학 주식(비상장주식)을 낮은 가격으로 매각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편법적으로 상속했다는 내용이다.

이천전기 인수와 관련해 1심에서는 충분한 검토 없이 단 한 시간의 토의만으로 부실기업인 이천전기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을 이사로서의 주의의무 해태로 판단해 삼성측에 276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법원은 이사들의 결정을 경영판단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단해 배상액을 전액 삭감했다. 그 이유로 “피고들(삼성 임원들)은 의사결정 책임자로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다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경영판단 실패에 따른 책임은 없다”고 판결했다. 
 
이밖에 삼성종합화학 주식 저가 매각 건과 관련해, 피고들이 삼성전자의 이익 창출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 등의 이유로 손해배상액을 총 손해액의 20%만 산정한 120억원으로 제한해 1심에 비해 494억원이 감액됐다. 2심 판결 이후 2003년 12월 말 피고 측인 삼성전자 전·현직 이사들이 상고했으며 참여연대도 부대상고를 제기했다. 
 
SK텔레콤 소액주주운동
참여연대는 SK텔레콤의 경영진이 부당내부거래행위를 통해 SK텔레콤의 이익을 빼돌려 최종현 회장과 그 가족들에게 주고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SK텔레콤을 상대로 경영진의 책임을 묻고 부당내부거래를 근절하기 위해 소액주주운동을 전개했다.

참여연대는 정보통신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 공식서한을 발송한 데 이어 기관투자가와 주주들을 적극적으로 모아 1998년 2월 공식적으로 회사 측에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SK텔레콤은 주주총회 직전에 소액주주의 요구사항을 적극 수용하는 입장을 보였으며 주주총회에서는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공식사과와 소액주주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정관개정,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이 이뤄졌다. 

2003년 1월 참여연대는 SK증권을 지원하기 위해 SK글로벌(해외현지법인)과 JP모건 사이에 맺어진 이면계약 사건과 관련해 최태원, 손길승 회장 등을 배임혐의로 고발했다. 이후 검찰의 수사 결과 이면계약 외에도 SK글로벌의 천문학적인 분식회계와 오너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 안정을 위한 주식 스왑거래 사실 등이 새롭게 밝혀졌다. SK사태는 비단 SK그룹의 위기뿐 아니라 한국경제 전체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2003년 6월 형사재판 1심 판결에서 최태원 회장이 징역 3년의 실형을, 손길승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으나, 두 사람 모두 SK(주),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 이사직에 대한 거취 여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으며 핵심 계열사의 경영진 직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2003년 연말에는 불법정치자금 문제로 다시 한번 재계와 정치권을 뒤흔들리게 되고 이 사건의 출발은 공교롭게도 또다시 SK그룹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손길승 회장이 이사회의 승인 없는 선물투자를 통해 SK해운에 7천억원대의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부실기업에 2천400억원을 부당 지원하고 SK해운의 세금 380억원을 포탈한 혐의가 추가로 드러났다. 결국 손회장은 2004년 1월 구속됐다. 

최태원·손길승 회장이 SK텔레콤 이사직에서 물러나지 않자, 참여연대는 2004년 1월30일, 3월12일로 예정된 SK텔레콤 정기 주주총회에서 두 이사의 사퇴권고안을 주총 안건으로 상정하기 위해 주주제안서를 제출했다. SK텔레콤 이사회가 참여연대의 주주제안을 수용여부를 결정하는 이사회를 개최한 2004년 2월24일, 최태원, 손길승 회장과 최회장의 친인척인 최재원 부사장, 표문수 사장까지 사퇴의사를 밝혔다.<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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