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의 최대 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을 통해 약 5조원에 달하는 이익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5조원은 연간 2천500만원을 버는 노동자 20만명의 1년치 임금이다. 이 돈이면 최저임금 노동자 50만명에게 1년치 임금을 줄 수도 있다.
외환위기 이후 초국적자본에 매각된 기업은 외환은행 말고도 수두룩하다. 제일은행·하나로텔레콤·한미은행·브릿지증권·굿모닝증권·서울증권·메리츠증권·외환카드·오리온전기·만도·위니아 만도·파카한일유압·대우자동차·쌍용자동차 등 금융업종과 제조업종의 알짜기업들이 초국적 금융투기(financial speculation) 자본이나 다국적(multi-national) 기업으로 넘어갔다.

초국적자본의 힘은 강력하다. 100대 다국적기업이 전 세계 자산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이 6대 다국적기업의 개별 연간 매출액을 능가하는 국가는 21개국에 불과하다. 정부와 기업·가계를 포함한 세계 100대 경제주체 중 절반이 넘는 51개가 다국적기업이다. 이들은 돈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각국의 기업을 사들이거나 되팔면서 이윤을 남기고 있다. 수년간 세제혜택 등 각종 이익을 누린 뒤 하루아침에 회사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고용을 위협받게 된 노동자들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해외로 기술이 유출돼 해당 산업 자체가 황폐해지기도 한다.

외국투자기업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고 대응책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20일 수원시민회관에서 열렸다. 금속노조 경기지부와 새세상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경기지역 외투기업인 쌍용자동차와 파카한일유압의 정리해고와 기술유출 논란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해외자본 진입 10년, 금융·제조 부실화

‘외국투기자본의 문제점과 규제방안’을 주제로 발표한 허영구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는 “단기차익을 추구하는 투기자본의 특성상 기업에 대한 중장기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고용과 생산능력이 악화된다는 점이 투기자본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허 대표는 “외환위기 이전 제조업체들은 설비투자의 75% 이상을 외부 차입금에 의존했으나 이후 점점 내부 자금에 의존하면서 투자가 축소됐다”며 “투기자본이 장악한 은행들 역시 장기적인 기업 대출보다는 단기적인 가계대출이나 수수료 수입에 치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외환위기 이전 33~34%에 달했던 은행의 제조업 설비투자 재원 공급비중은 외환위기 이후에 10~11%로 급감했다.

대주주에 대한 고배당뿐만 아니라 회사유보금이나 자산까지 매각한다는 점,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채 유상감자를 실시한다는 점, 상장을 폐지하는 등 금융당국의 감독과 규제를 피하는 점 등도 투기자본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매각을 통한 단기차익을 내기 위해 인력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등 매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투기자본의 문제점 중 하나다. 구조조정을 통해 임금삭감과 사내복지 축소, 비정규직 확대, 정리해고 등의 수순이 이어진다. 실제로 오리온전기·하나로텔레콤·만도 등에서 매각 차익을 노린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이 밖에 환차익을 통한 이익 도모, 이중과세방지협약을 악용한 조세회피, 불법적인 기술유출 등은 투기자본의 전형적인 ‘먹튀’ 행각으로 꼽힌다.

허 대표는 “현재 직장폐쇄 중인 경주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의 경우도 지난 10년간 한국정부의 각종 혜택으로 투자금을 빼먹으면서 기술을 유출한 뒤 자본철수를 앞둔 경우”라며 “경제질서를 교란하는 외국자본을 제한할 수 있는 강력한 규제책이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투기업에 쏠리는 ‘눈먼 돈’

이날 토론회에서는 경기도 내 외국인산업단지에 위치한 외투기업의 기술유출과 고용위협 사례 증언도 있었다. 현재 경기도에는 7개의 외국인전용임대지구가 조성돼 있다. 도는 5개의 임대지구를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첨단고도기술 등 선진기술을 보유한 외투기업을 유치해 지역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소득을 증대하겠다는 것이 경기도가 밝힌 외국인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장안외국인산업단지에 입주한 파카코리아 장안공장은 파카한일유압 시화공장에서 생산하던 ‘굴삭기용 메인컨트롤밸브’ 제조기술을 빼돌려 동일한 제품을 생산, 파카한일유압 시화공장의 기존 거래처에 납품하고 있다. 시흥공장에서는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이 시행됐다.

문제는 계열사의 기술을 빼돌린 것에 불과한 파카코리아 장안공장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막대한 혜택을 받고 있는 사실이다. 화성시는 장안공장의 ‘고도기술수반사업’을 인정해 △외국인투자촉진법과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른 공장부지 임대료 감면(100% 임대료 감면) △조세감면의 확대(국세 7년 감면, 지방세 15년 감면, 관세·특별소비세·부가가치세 전액감면) △고용보조금(신규 고용인원 월 50만원) △시설보조금(공장·연구소 등의 신·증설 건축비, 사업 또는 연구자본재, 연구기자재 구입비, 전기·통신시설 등 기반시설 설치 소요금액의 50%범위 이내 지원) 등을 지원했다. 해외로부터 새로 도입된 첨단기술 없이, 계열사의 기술을 옮겨 온 것만으로 각종 혜택을 받은 것이다.

장안공단 내 포레시아와 3M도 기존 제조시설과 인원을 옮겨 왔을 뿐인데 지자체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고 있다. 신규고용 창출이나 첨단기술 도입 등의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설 이전 과정에서 인원이 줄어들었다.

송태섭 금속노조 파카한일유압분회 분회장은 “장안외국인산업단지에 입주한 대부분의 외투기업들은 국내에서 운영 중이던 기업을 단순히 이전했을 뿐”이라며 “이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기 위해 기존 제조시설 운영규모를 대규모로 축소하고, 기술과 물량만을 빼내 마치 신규사업에 투자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분회장은 “외국인산업단지에 입주한 외투기업들의 고용창출 효과는 매우 미미한데도 관련 부처는 고용인원 총규모만 파악하고 있을 뿐 신규고용창출 효과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전혀 파악하고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영업권 침해’ 운운하며 외투기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 놓은 지자체

대규모 해고사태를 겪은 쌍용차 노동자들도 지자체의 관리 소홀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정리해고 과정은 물론 정리해고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지자체는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쌍용차 정리해고자들의 공장점거 파업 이후 도입된 행적적 지원책인 고용개발촉진지구 지정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505억원이라는 고용지원금이 사업주에게만 흘러들어 갔다”며 “생계곤란으로 취업이 시급한 노동자들에게 고용지원금은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지역사회에서 쌍용차 출신에 대한 집단적 취업거부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노동자들을 위해 쓰여야 할 돈이 엉뚱한 곳으로 지출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평택역사에 마련된 ‘오뚜기센터’에 대해서도 "형식적인 지원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센터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실장은 “해고자들에 대한 실질적 도움은 전무한 상태”라며 “해고자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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