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4월19일) 매일노동뉴스를 읽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4월16일 카센터를 개업했다고 한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지난해 정리해고된 뒤 복직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이 투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카센터를 연 것이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비지회 김정우 지회장은 이미 운영하고 있는 부산 조합원들의 조언을 받아 카센터를 열었다고 말했다. 한편 같은날 매일노동뉴스에는 GM대우자동차지부 추영호 지부장의 인터뷰 기사도 실렸다. 추영호 지부장은 임단협에 앞서 회사측에 ‘GM대우 발전전망 특별요구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하청기지화 우려를 불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추 지부장은 2000년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반대투쟁 당시 노동조합 위원장으로서 열악한 노조 조직력에도 불구하고 파업 등 강력한 투쟁을 주도해 업무방해죄로 구속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김정우 지회장도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반대투쟁에 참여했다가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모두 필자가 변호했다. 당시 추영호 위원장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금까지 파업 등 노조 활동과 관련해 수천 명을 변호해 왔다. 하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데 추영호 위원장이 그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지난해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자동차의 투쟁현장에 갔다가 김정우 지회장을 만났다. 정리해고자로서 평택공장안에 머물며 투쟁하고 있었고,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는 단행됐다. 이제 김정우 지회장은 해고 조합원들과 함께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카센터를 개업했다. 그리고 추영호 지부장은 GM대우를 하청기지로 전락시키지 않겠다며 GM그룹에게 발전전망 특별요구안을 제시했다. GM의 확고한 전략기지로 핵심사업장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우는 복직을 위해 투쟁하고, 추영호는 회사 위상의 유지 내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김정우는 조합원들과 카센터를 열었고, 추영호는 ‘GM대우 발전전망 특별요구안’을 만들었다.

2. 그러면 어떻게 될 것인가. 김정우가 카센터를 열고, 추영호가 회사 발전전망 특별요구안을 만들었다면 그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카센터가 번창하면 해고자들이 복직되고, GM대우는 발전해서 GM의 핵심사업장이 되는가. 그러나 쌍용자동차에서 해고자들은 카센터가 번창한다고 복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GM대우 발전전망 특별요구안’을 제시했다고 GM대우가 GM의 핵심사업장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고자 복직, 회사 발전전망의 수립과 추진은 노조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용자인 회사가 결정하는 것이다. 왜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어떠한 노력과 방안 제시를 한다고 해도 항상 회사가 결정하는 것인가. 필자는 말한다. 그냥 그런 것이다. 왜 그런 것인가. 다시 필자는 말한다. 원래 그냥 그런 것이다. 필자는 계속 답할 수밖에 없다. 뭐 ‘그냥, 원래, 그런’ 거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법원은 경영권이라고 했다. 따라서 법원은 이것이 교섭의 대상이 아니고 이를 내세워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판결한다. 법원은 원래 그것은 사용자의 것이고,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그것을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에 근거해 법원은 원래 사용자의 것이라고 하고 그것은 노동자와 노조가 감히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가. 결국 법원은 헌법 등 법에서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원래, 그런’ 것이라고 판결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헌법 어디에서 이것을 규정하고 있을까.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직업선택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는데 여기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감히 침해할 수 없는 사용자의 경영권이 보장된 것인가. 직업선택의 자유(제15조)가 노동자를 사용해 사업할 자유를 보장한 것이고, 재산권의 보장(제23조)이 재산권의 처분행위로서 사업장의 처분행위의 자유를 보장한 것이라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제119조 제1항)고 하는데, 그래서 사용자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의 존중을 위해 사업장에서 경영권은 사용자에게 보장되는 것인가. 어쨌든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헌법조항을 근거로 경영권을 말하고 노동자와 노조의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헌법은 이들 조항에서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경영권 전횡을 규정하지 않았다. 헌법은 그저 직업선택의 자유와 재산권을 모든 국민에게 기본권으로 보장한 것이고, 이것은 기본적으로 국가로부터의 자유로써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헌법은 평등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제11조).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다(제11조 제1항). 이 평등권 조항의 근로관계에의 적용이 근로기준법 제6조의 균등처우이고,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이라고 한다.
왜 평등권은 근로관계에서는 이와 같이 흐르는가.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의 차별만 금지하고 있다. 왜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차별은 금지되지 않는가. 법은 가장 큰 차별을 보지 못했다. 그러고도 과연 헌법상 평등권을 근로관계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것이 위 법률규정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 것일까. 왜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권은 노동자 사이의 차별만 보이고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차별은 보지 못하는가. 오히려 법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차별을 당연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추영호와 김정우가 사용자인 회사를 상대로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제시와 노력에 그칠 수밖에 없다. 주식회사의 일상적인 업무집행은 이사회와 대표이사가 하고(상법 제382조 내지 408조 참조), 이사의 선출과 주요 의사결정은 주주총회에서 한다(상법 제361조 내지 제381조 참조). 쌍용자동차와 GM대우 모두 주식회사이고 주식회사는 주주의 것이다. 상법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사이의 균등처우를 규정하고 있지만(제6조) 근로자와 사용자의 균등처우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상법은 사용자인 회사가 주주의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근로자에게 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상법상 주식회사의 주요 원칙으로 주주평등의 원칙이 존재하지만 상법에서 주주와 근로자의 평등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사이의 차별규제만 보이고 상법은 주주 사이의 차별규제만 보일 뿐이다. 어느 법률에서도 주주와 근로자 사이의 차별규제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권이 흐르는 방향이다. 그래서 오늘도 김정우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복직을 위해 카센터 개업 등 노력을 다하고, 추영호가 회사의 발전전망 방안을 만들어 제시했음에도 그들의 주식회사는 그들의 노력과 방안 제시에 특별한 대답을 주지 않아도 된다.

3.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제1항).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은 평등하게 주권자로서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서 평등한 권한 행사는 여기까지만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에서 살 수 없다. 즉 주권자인 국민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생존할 수 없다. 대부분은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산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은 일시적으로 주권자로서 평등하게 선거권을 행사하지만 일상적으로는 근로자로서 결코 평등하지 않은 근로관계에서 근로하며 살아야 한다. 근로관계는 사용자에 종속된 관계이고, 불평등이 법적으로 허용된 관계이며 사용자의 세계다. 이 세계에서 근로자는 사용자의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 이러한 근로관계 위에 우리의 사업장은 세워졌다. 사용자가 회사로서 주식회사인 경우 그 소유자 사이의 평등, 즉 주주 평등이 보장된다. 그리고 그 주주 평등도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의 평등권과는 현저히 다르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재산의 소유나 지위의 고저를 떠나 모두 1인 1표이지만 주식회사에서 주주는 재산의 소유에 따라 1주 1표이다. 이것이 주식회사에서 말하는 평등이다. 재산(주식)의 크기에 따라 권한과 권리의 크기가 결정된다. 바로 이 세계에서 대한민국 국민인 노동자는 살아간다. 이 세계에서는 자신의 노동으로 쌓아 올려진 탑은 사용자의 것이고, 주식회사에서는 주주의 것이다. 피와 땀으로 뭉친 노동으로 쌓아 올렸다고 해서 자신의 것이라고 착오를 일으켜 사용자에게 요구한다면 그것은 이 세계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경영권 등으로 표현되는 사용자의 것은 결코 침범할 수 없는 것이라고 법원은 선언한다. 이 세계에서 사람들은 차별이 존재한다고 인식하지만 차별의 부당함이 존재한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담이 보일 때 누구나 이것을 담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 담이 너무 거대할 때는 누구도 이것을 담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거대한 담에 갇혀 있음에도 자신이 갇혀 있다는 것조차 깨달을 수 없다. 오늘 쌍용차지부 김정우 지회장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할 때, GM대우차지부 추영호 지부장이 회사 발전전망안을 제시할 때 사용자인 회사가 하게 될 일차적인 답변은 그래서 우리 모두가 알 수 있다. 그리고 법원이 판결로 선언할 내용도 우리 모두는 알 수 있다. 그들은 말한다. 그것은 노동자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세계에서 오늘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누구도 보지 못하는 담 앞에서 외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권이 흐르지 않는 절망의 담 앞에서 외치고 있다. 해고자를 복직하라. 회사 발전전망을 수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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