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공무원들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장시간 노동의 주된 원인은 24시간 맞교대 근무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은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3교대 근무로 전환하기 위해 인력충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일 서울고등법원은 뇌출혈로 사망한 20대 소방공무원의 공무상 질병을 인정했다.

주당 84시간 맞교대 근무

2004년 경기도의 한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된 김아무개(사망당시 28세)는 ㄱ소방서 소속 119안전센터에서 구급대원으로 일했다. 김씨는 하루 24시간씩 2교대의 격일제 형태로 근무했다. 주당 근무시간이 무려 84시간에 달했다. 구급 외의 업무에도 참여하고 비번일에도 행정업무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2008년 3월 다른 센터로 전보된 후 김씨는 비번일에도 소방차 운전을 위한 1종 대형면허를 취득하고, 북한산 화재대응 매뉴얼을 작성했다. 같은해 2월11일 숭례문 화재사고가 발생하자 소방방재청은 같은날 긴급지시로 소방관서별로 문화재 등에 대한 화재대응 매뉴얼 개발을 지시했다. 같은해 4월부터 5월까지 센터의 소방공무원이 2인1조로 북산한에 있는 관내 문화재와 대형화재 취약시설 중 하나씩을 담당해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한 지침서를 작성해야 했다.

화장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김씨는 비번이었던 2008년 4월2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동료와 함께 매뉴얼 작성을 위한 자료조사를 위해 북한산에 다녀왔다. 동료와 저녁식사를 마친 후 귀가해 집에서 오후 10시55분까지 매뉴얼을 작성했다. 그날 오후 11시20분께 김씨는 화장실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고, 다음달 2일 뇌압상승·뇌간기능부전·중증 뇌지주막하출혈(뇌출혈)로 숨졌다.
김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과다한 공무를 수행하면서 상당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려 사망했다”며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공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볼 수 없다”며 유족보상금 부지급처분을 내렸다.
1심인 행정법원도 공무상 질병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2심인 서울고법은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은 판결문에서 “장기간의 교대근무로 인한 면역력 저하, 지속적인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뇌혈압 상승이 뇌동맥류 등 김씨의 기존 질환에 겹쳐서 뇌지주막하출혈을 유발했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스트레스 높은 소방공무원

김씨는 사망 직전인 2008년 3월부터 4월 한달 사이에 총 77회를 출동했다. 주당 약 18회를 출동한 셈이다. 아주대 산학협력단이 소방방재청의 의뢰에 따라 2008년 4월에 발표한 ‘소방공무원 외상 후 스트레스 실태분석 연구’에 따르면 조사대상 소방공무원의 경우 주당 10번 미만 출동이 56.4%에 달했고, 10~19번 출동도 22.8%로 조사됐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김씨의 출동횟수는 업무가 과중한 상위 약 20%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교대작업 근로자의 순환기능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교대근무 작업자에게서 심상질환의 발생률과 상관관계가 높게 나타난다. 교대근무 자체가 독립적으로 심혈관계의 위험도에 영향을 미친다. 교대근무력이 증가할수록 혈압이 유의하게 증가하고 자율신경계의 활동성이 유의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 유족을 대리해 소송을 담당한 이정훈 변호사(다보상법률사무소)는 “이번 판결은 격무에 시달리는 소방공무원들의 근무형태·근로시간 등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다보상법률사무소는 노무법인 산재와 공동으로 5월31일까지 경찰·소방·행정 등 공무원에 대한 공무상재해·직업병 무료상담을 실시한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1577-5785)로 문의하면 된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09년4월10일 선고 2008구합39196
서울고등법원 2010년4월7일 선고 2009누12169
대법원 2008년2월28일 선고 2006두17956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