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삼성 나노시티 기흥캠퍼스). 외신을 포함해 90여명의 기자들이 몰렸다. 삼성측이 고 박지연씨 등 노동자들의 잇단 백혈병 발병으로 비난이 높아지자 이날 반도체 공정을 공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7조에 편성된 기자는 이날 오후 12시40분께 5라인으로 들어갔다. 먼저 탈의실에서 방진복으로 갈아입었다. 기흥공장 여성노동자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도와줬다. “눈썹과 머리카락이 바깥으로 절대 나오면 안 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방진복과 방진화를 신고 마스크를 썼다. 삼성전자측은 여기자들에게 일체 화장을 하지 말고 오라고 당부했다. 실제 선크림을 바르고 온 한 여기자는 출입을 거부당했고 매니큐어도 지워야 했다. 방진복은 먼지를 차단해 정전기 방지를 위한 장비다. 화학물질이나 가스누출 사고와는 무관한 듯했다. 30초간 에어샤워를 거친 후 공장 내부에 들어가니 노란색 형광등이 눈에 띄었다. 노동자들 역시 기자들과 똑같은 방진복을 입고 있었다. 반도체가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빛의 반응을 최소화하는 조명을 사용한다고 했다.

1~3라인과 비교 불가능한 5라인

반도체 공정은 주로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는 워킹 에어리어(구역)과 엔지니어들이 설비를 다루는 서비스 에어리어(구역)으로 나뉜다. 당초 워킹 에어리어만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서비스 에어리어 공개를 요구하는 기자들에게는 공개했다. 그러나 실제 서비스 에어리어에서 작업을 하는 엔지니어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배관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지하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는 공정 중간 중간에 파일로 꽂혀 있었다. 최근 개정 날짜는 2005년이었다.

이날 기자들은 디퓨전(확산)·포토 공정 등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지만, 노동자가 화학물질을 수동으로 세척하는 작업은 볼 수 없었다. 5라인은 제품을 다른 공정으로 옮기는 작업 외에는 모든 설비가 자동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40분 남짓 방진복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몹시 답답했다. 머리도 지끈지끈했다. 두 겹으로 낀 장갑 안에는 습기가 찼다. 5라인 입구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약품 냄새가 났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도 없었다. 회사측은 “작업 중에도 원하면 휴게실에 다녀올 수 있다”고 말했다.

5라인에 들어가기 전 실시된 회사측의 ‘반도체 제조공정 설명회’에서 기자들은 질환자가 주로 1~3라인에서 발생한 상황에서 5라인·S라인을 공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수인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메모리담당 사장은 “1·2라인은 2006년 이전에 다른 공정으로 변경됐고, 3라인은 2차 역학조사 완료 후 2009년 3월 LED라인으로 변경됐다”며 “과거 3라인과 가장 유사한 라인은 5라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3라인에서 쓰던 설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요구가 있을 경우 공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자들 반응 “예상했던 대로…”

5라인과 최신 자동화설비를 갖춘 S라인을 둘러본 기자들의 반응은 “역시나” 였다. 수년 전에 사용된 설비와 비교할 수도 없고, 전문가가 아닌 이상 문제점을 찾아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회사측은 5라인에서 11년간 근무했던 정애정씨의 참관마저 거부했다. 지난해 국감에서 논란이 된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답변을 피했다. 컨소시엄을 구성해 재조사하겠다는 정도의 입장만 밝혔다.

그동안 공개된 전·현직 노동자들의 진술과 엇갈리는 답변도 있었다. 고 황유미씨의 역학조사에서 11년간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퇴사한 한 엔지니어는 “모든 일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하므로 안전장치(인터락)가 해제되는 일이 매우 많았다”고 진술했지만, 삼성측은 이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삼성은 최근 화학물질 위험성 연구와 작업환경 역학연구 등을 위해 박사 4명·석사 5명으로 구성된 건강연구소를 개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직원복지 차원에서라도 노동자들의 산재를 인정해 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산재는 회사가 아닌 근로복지공단에서 판정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최근 이건희 회장의 경영복귀 후 삼성측은 일체의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와 유가족의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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