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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가족대책위 이야기 -연두색 여름II눈물과 희망의 투쟁 이야기
21. 오늘은 남편의 생일입니다 -박정숙-

우리 부부는 대학시절 부산에서 만났고, 그 당시 차를 무척이나 좋아한 남편은 막 출시되어 도로를 누비던 ‘무쏘’에 반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쌍용자동차에 입사하게 되면서 신혼살림을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평택에서 시작하게 되었죠. 그게 벌써 16년 전 일이네요.
공부 잘하는 15살 첫째 딸과는 다르게 둘째인 13살 아들 녀석은 운동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녀석입니다. 작년 가을쯤 그런 녀석이 걱정이 되어 “넌 나중에 도대체 뭐가 되고 싶니? 꿈이 뭐야?” 물었더니, 이 녀석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뜸 한다는 말이, “아빠 같은 아빠요. 그래서 아빠랑 같이 쌍용자동차 다닐 거예요” 하더군요. “그래 그것도 괜찮겠다. 15년 정도 있으면 가능한 일이겠네. 아빠와 아들이 나란히 출근하면 멋지겠는데?” 하고 말해 주었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당신은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아들이 아빠를 닮고 싶어 한다는 거, 아빠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거 흔치 않은 일이지 않느냐 말해줬더니, 남편도 기분이 좋은지 아들 녀석 엉덩이를 한 번 툭 치더군요.

똑똑하고 야무진 우리 딸의 꿈은 어릴 적에도 그랬고 지금도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꿈은 커서 좋다만 너무 실현 가능성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대통령이 되겠다는 딸의 꿈보다는 아빠와 함께 쌍용자동차에 다니고 싶다는 아들의 꿈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 아들의 꿈을 끝까지 지켜주기 위해 힘든 줄 모르고 옥쇄파업 45일차를 맞이하며 고생하고 있는 남편. 이쯤에서 몇 달치 위로금 더 받고 희망퇴직을 하라는 말도 종종 듣지만, 동료들로부터 일 잘 한다고 인정받던 남편은 자신의 해고를 절대 납득할 수 없어, 이건 아니다,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생각으로 파업에 동참했습니다.

남편만 사지에 남겨 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 ‘쌍용자동차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대위’) 활동에 참여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부부는 같은 뜻을 가진 ‘동지(同志)’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명확하고 객관적인 정리해고 기준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나가라는 회사, 평소 근무태도와 인사고과가 안 좋은 사람은 살고, 그동안 열심히 일했다고 사장 상을 여러 차례 받은 사람은 해고되었습니다. 명절에 상사에게 떡 값 한 번 안 준 게 잘못이었고, 상사의 비리를 눈 감아 주지 못하고 항의했던 게 잘못이었고, 그저 가족들 위해 열심히 일한 모습이, 다른 곳에 가서도 성실하게 살 것 같다는 것이 해고의 이유가 되었고, 부모님께서 재산이 있을 것 같아 먹고 살 걱정 없어 보여 해고당하고.......
45일 동안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진실들이 왜곡되어지거나 감춰지는 현실을 경험하고 나니, 눈과 귀를 막고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우리 ‘가대위’는 남편 사랑 받으며 자식들 뒷바라지하고, 예쁘지도 않지만 밉지도 않은 얼굴에 웃음 가득 머금고, 남하고 말싸움 한 번 안 하고,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하루하루 살았던, 이름도 없는 아줌마들, 누구누구의 엄마들, 새댁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집회에 나가 힘들지만 팔뚝질도 하며 노래도 부르고, 투쟁 구호도 따라 외치고, 길쌈놀이 할 때 빙글빙글 돌며 오색 끈을 엮고 풀고 하느라 온 몸이 땀범벅이 되어도 부끄러운 것이 없을 만큼 뻔뻔해졌습니다. 남편도 못 바꾼 우릴 누가 이렇게 바꿔 놓았을까요?

회사 측은 옥쇄파업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마친 상태였고, 28억이라는 천문학적 돈을 지불했습니다. 그러면서 3천만 원이 없다며 고의로 수도세를 체불하고, 시청에 단수조치를 요구했습니다. 이게 천여 명 노동자들을 죽이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회사 측이 지난날의 동료들과 용역을 앞세워 공장 안으로 들어온 6월 26일과 27일. 용역이 휘두른 소화기에 맞아 치아가 13개나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노동자를 병원으로 후송하려 하자, 회사 측 직원들이 환자 후송차의 운전자를 끌어내려 폭행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전쟁 중에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환자는 보호받고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얼마 전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이 같은 일을 했다는 것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회사의 행동과 요즘의 상황에서 드러난 것처럼 회사는 대화의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덕목은 ‘소통’이라 했습니다. 청각 장애인들도 수화를 통해 소통합니다. 시각 장애인들도 점자를 통해 소통합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살자’ 외치는 아버지들의 외침에 귀 막고 있는 이 정부와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소통을 해야 하는 걸까요? 가족을 만날 자유, 음식과 물을 먹을 자유, 생각을 말할 자유조차 없는 이 나라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민주주의 국가가 맞습니까? 식사 때마다 수저통에 남아 있는 주인 잃은 남편의 수저 한 벌을 보면서 마음이 짠합니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입니다. 뜨끈한 미역국 끓이고 네 식구 둘러앉아 케이크 먹으며 그저 소박하고 평범하게 생일을 보냈는데, 이번 생일엔 그 소박한 생일파티마저도 못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남편의 얼굴이라도 볼까 하여 회사 앞에 갔습니다. 저 말고도 30~40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출입이 자유롭지 못할 거라 짐작은 했었고, 아이들만이라도 공장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울며불며 통사정을 해보았지만, 경찰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를 뿐이라며 눈도 꿈쩍하지 않더군요. 경찰들과 말씨름을 하던 틈을 타 재빠르게 아이들은 엄마 손을 거쳐 물건처럼 담장 위로 건네져 아빠들 품에 잠시 안겨볼 수 있었습니다.
아빠는 아이를 통해 자신을 추억하고, 아이는 아빠를 통해 미래를 꿈꿉니다. 천여 명의 아빠들이 당당한 모습으로 가정으로 돌아와 두 팔에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품을 날이 멀지 않아 찾아올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22. 누가 부끄러워야 하는가?


저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아내입니다. 저의 남편은 근 40여 일을, 13년 동안 뼈를 묻을 본인의 직장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곳에서 옥쇄파업 중입니다. 남편은 지난 13년 동안 가족을 위해 뼈가 부서지도록 일한 죄밖에 없습니다. ‘코란도’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며칠 만에 저를 설득하여 할부로 뽑은 차를 처음 시승하던 그날, 남편은 제 아이보다 더 천진한 웃음을 띠며 열심히 일해서 할부 빨리 갚겠노라 말하던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이젠 형제보다 더 끈끈한 정으로 맺어왔던 인연들을 또 놓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관리자 한 분이 드링크제 한 박스를 들고 집을 찾아왔습니다. 무거운 침묵 끝에 그분이 하시던 말씀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잊지 못하겠습니다. 남편 역시 이런 말을 들었을 것 같아 억장이 무너집니다. 정리해고 당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겠냐고, 희망퇴직 해야 하지 않겠냐는….

눈물이 흐르는 걸 참지는 않았지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남편은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세월이, 세상이 누가 더 부끄러울지는 가려줄 것이라고. 그분은 잘 생각하시고 남편을 꼭 나오게 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몇 시간을 울었습니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며칠 전 남편과 같은 회사를 다니다가 몇 달째 못 받는 월급으로는 관리비 낼 돈도 빠듯하다며 작은 집으로 이사 간 앞집 언니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이럴 때 약해지지 말라고 제 등을 도닥거려 주었을 텐데요. 언젠가 세상이 누가 더 부끄러워해야 할지 꼭 가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없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천대받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 이런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습니다.

제 남편은 40여 일을 “함께 살자!”라는 등판이 붙은 티를 입고 있습니다. 제 남편은 본인은 물론 동료의 일자리까지 꼭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저의 남편은 스티로폼 한 장으로 찬 바닥에서 한기를 참으며 본인이 일했던 그곳에서 쪽잠을 잡니다. 제 남편은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10년 지기 동료가 밉지 않다고 했습니다. 노동자가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박정숙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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