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부산의 한 영안실. 부산시 화명동 아파트 신축공사장 붕괴사고로 숨진 펌프카 기사 이아무개(48)씨의 형은 "무리하게 공사기간을 맞추려다 발생한 사고"라며 "정확한 조사를 통해 동생의 한을 풀어야 한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점심시간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은 공기를 맞추기 위해 부실시공을 했다는 뜻"이라며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일했을 정상적인 작업시간에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되는 게 건설현장"이라고 답답해했다.

공기단축 위한 부실시공 추정

7명의 사상자를 낸 부산 화명동 롯데캐슬 아파트 신축공사장 붕괴사고 원인이 부실시공과 안전관리 감독 소홀로 추정되면서 건설사의 안전불감증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5일 낮 12시40분 부산 북구 화명동 롯데캐슬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 300여평 규모의 실내수영장을 짓기 위해 콘크리트를 붓는 타설작업 중 거푸집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되면서 10미터 높이에서 건설노동자들이 떨어져 매몰됐다. 이로 인해 건설노조 조합원 펌프카 기사 이아무개씨가 사망하고, 건설노동자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타설 과정에서 거푸집이 무너졌다는 것은 시공단계에서 거푸집 설치가 그만큼 부실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공기를 단축하는 데 급급한 건설사의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장을 조사한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수영장의 경우 일반 아파트 공정과 달리 10미터 높이에서 한 번에 콘크리트를 타설해 하중을 제대로 받칠 수 있도록 동바리가 설계돼야 하는데 시공 과정에서 설계와 달리 구조물의 하중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무너졌다"며 "근본적으로는 원청이 공기단축을 위해 이 같은 하청의 부실시공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고 지적했다.

 


사고현장 도처가 '지뢰밭'

실제로 사고현장에서는 부실시공 문제뿐 아니라 원청의 안전관리가 미흡했다는 증거가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김근주 본부장)는 사고 당시 롯데건설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할 동안 사고현장에서 철제계단을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본부는 "롯데건설은 오후 3시께 정식 규격품 발판을 이용해 가설계단을 만들기 시작해 한 시간 동안 새 계단을 완성했다"며 "가설계단 인근에 미장이 끝났고 별도의 통로가 없는 점으로 미뤄 계단이 작업통로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본부는 이어 "그간 노동자들이 경사 50도가 넘는 10미터 높이를 부실한 합판 하나에 의지해 오르내린 셈”이라고 비판했다. 본부는 이에 따라 △점심시간에 작업이 진행돼 현장의 안전관리자가 없었던 점 △최근 폭우가 왔음에도 토사 붕괴에 대비해 제대로 된 방호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점 △사고시 함께 붕괴된 2층 외벽콘크리트가 제대로 양생됐는지 확인이 안 된 점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현장을 둘러본 박원대 본부 사무국장은 "제대로 된 안전시설을 갖추지 않고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한 결과 사고가 발생했다"며 "현장의 미흡한 안전시설 조치가 롯데건설의 안전불감증을 여실히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사고는 부산 화명동뿐만이 아니다. 봄철 해빙기를 맞아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라 일상적인 안전관리 감독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화명동 사고에 이어 다음날인 6일에는 부산 해운대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타워크레인의 붐대가 꺾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지난달 20일에는 부산 대연동 복합 상가 공사현장에서 건설노동자 한 명이 추락해 병원치료 중이고, 30일에는 경기도 춘천에서 펌프카 기사가 차량지지대에 끼여 사망했다.

노동자가 안전관리 업무에 참여해야

이 같은 사고를 사전에 막기 위해 본부는 원청인 롯데건설에게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산업안전센터를 제안했다. 박원대 사무국장은 "현장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노동자와 사측이 체감하는 위험도가 많이 다르다"며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조가 참여해 지속적으로 안전대책을 모니터하고 개선책을 논의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상적인 안전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 명예산업안전감독관에게 현장 안전점검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350여명에 불과한 국내 근로감독관만으로는 공사현장에 대한 안전감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안전감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현장안전점검권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태다. 박종국 국장은 "사고는 안전근로감독관이 없는 휴일이나 밤 등 정상적인 작업시간이 아닌 때와 중소 건설현장에서 많이 발생한다”며 "건설현장을 가장 잘 아는 건설노동자들이 안전업무에 참여해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수영장 같은 특수한 공정이 필요한 경우 원청이 책임을 지고 시공을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국장은 “아파트 등 일반적인 공사 외에 수영장처럼 별도의 공정이 필요한 공사일 경우 원청이 시공까지 맡아 책임을 져야 한다"며 "최저가낙찰제 구조와 공기단축으로 인해 하청이 안전조치를 이행하며 제대로 된 시공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후적으로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대형 사고발생시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롯데건설은 이미 2005년과 2007년에도 유사한 사고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현장 사망사고시 책임자에 대해 5년 이하 징역·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으나 대개 벌금형에 그쳐 안전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갖기는 역부족이다.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도 실내수영장 콘크리트 타설작업 중 거푸집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면서 건설노동자들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했다. 부산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형공사장에 대해 주변 지반 침하와 균열 점검 등 종합적인 안전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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