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업재해율은 줄지 않고 0.7%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산업재해자수는 되레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가 지난 2005년부터 산업재해율 0.1%포인트를 줄이기 위해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전통적 재해인 넘어짐·끼임·절단·베임·찔림 사고가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건설업에 이어 서비스업(기타사업)에서도 재해가 늘어나고 있다.

산업재해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치지만 규제완화도 관련이 깊다. 산업안전보건업무는 사실상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이기에 이것이 완화될 때 재해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97년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산업안전보건 분야가 포함되면서 해당 규제와 관련한 산업재해가 늘어났다. 일각에선 규제완화 이후 산재사고가 70% 늘어났다고 분석한다. 사업주의 산업안전 의무사항을 면제해 주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는 산업안전보건 규제 가운데 일부를 복원하는 특별조치법 개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부작용이 심각한 산업안전보건 규제를 완화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이러한 교훈에 역행하고 있다. 노동부의 주요 안전보건 기능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중앙정부의 기능을 지방정부로 넘기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지방정부가 자신의 행정사무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지방자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방정부가 전문성이 높은 산업안전보건 업무를 수행할 역량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기업을 감독하고, 제품의 안전검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외려 기업유치에 관심이 높은 지방정부 사정상 산업안전과 관련한 사업주 의무사항을 경감하거나 면제할 가능성이 높다. 지방마다 산업안전 규제기준이 다를 경우 법 규정의 일관성과 실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산업안전 규제가 약한 지방으로 이전하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산업재해가 늘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지방분권촉진위의 결정이 ‘신규제완화’로 여겨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양대 노총과 노동보건단체뿐 아니라 노동부마저도 반발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렇듯 부작용이 예상됨에도 지방분권촉진위의 결정 과정마저 베일에 싸여 있다. 이해단체의 의견수렴과 토론회조차 하지 않은 채 ‘밀실 결정’을 했다는 비판이 많다. 실제, 지방분권촉진위는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을 위반했다는 노동계의 의견서를 묵살했다. ILO 협약에는 산업안전보건 업무를 중앙정부에서 관장해야 한다고 규정했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또 노동계가 지방이양 결정사유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데도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지방분권촉진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능 조화, 경쟁력 향상을 위한 방향으로 사무를 배분하고 있다”며 사실상 답변을 회피했다. 지방분권촉진위의 답변은 ‘지방분권’을 빌미로 기업의 규제완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방분권이 규제완화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이 지방분권촉진위의 결정을 재가했다는 것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대통령 재가까지 났더라도 사안이 중대하다면 재검토하는 것이 맞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방분권촉진위의 결정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사항인 만큼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지방분권촉진위가 결정 과정과 사유를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절차가 미흡했고, 충분하게 검토하지 않았다면 지방분권촉진위의 결정은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회가 법 개정에 힘을 실어 주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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