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이후 사내하청노조의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속해 있던 하청업체들은 2003년 9월부터 2003년 12월 사이 대부분이 폐업, 사업부문 폐쇄가 진행됐고 사내하청노조 조합원들은 해고(사업장 배제)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당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와 소속 조합원들은 하청업체의 폐업과 조합원들에 대한 해고는 현대중공업이 지배·개입해 이루어진 것이라며 원청회사인 현대중공업을 직접 상대방으로 해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지난 3월25일 대법원(특별 2부, 주심 대법관 전수안)은 “(부당노동행위의 하나인) 지배․개입의 주체로서의 사용자인지 여부도 당해 구제신청의 내용, 그 사용자가 근로관계에 관여하고 있는 구체적인 형태, 근로관계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 내지 지배력의 유무 및 행사의 정도 등을 종합해 결정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등으로 법 제81조 제4호 소정의 행위를 했다면 그 시정을 명하는 구제명령을 이행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0.3.25 선고 2007두9075 판결, 2007두8881 판결)

종래 하청노동자들은 예스코 사건에서와 같이 불법파견이 2년 이상 지속됐음을 근거로 원청사업주의 직접고용 책임을 주장하거나, 현대미포조선처럼 아예 처음부터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사업주에게 고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원청사업주에게 묵시적 근로관계가 성립됐음을 주장했다. 일부 사례에서는 이것이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나, 상당수 사례에서 입증 실패1)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처럼 묵시적 근로관계나 불법파견은 사용자가 조금만 외형이나 형식을 변경하면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원청사업주는 불법파견이나 묵시적 근로관계만 벗어나면 모든 책임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원청과 하청의 관계가 도급관계에 있다고 해도 원청사업주가 노조법상의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선언한 것으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있어서 획기적인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원청에게 노동행위 주체 책임 명확히 한 것

사용자라고 하면 그 노동자와 근로계약관계, 즉 고용관계가 있어야 사용자 지위에 있는 것처럼 파악해 왔으나, 이번에 대법원은 최초로 학계에서는 이미 보편화돼 통설적 지위에 있는 법리를 수용해 노조법상 사용자는 근로계약관계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원청회사도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근로관계나 노조활동상의 이익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이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이므로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그동안 비정규직인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노동3권이 없는 노동자였다. 노조를 만들면 도급계약 해지로 하청업체를 폐업시켜 조합원들을 해고하거나, 단체교섭 요구에 대하여도 원청사업주는 자신은 제3자라면서 일체 응하지 않았고 하청업체는 자신은 실제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동안 사실상의 사용자로서 권한과 이익은 다 누리면서도 책임을 회피해 온 원청사업주에게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지우는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우선 원청사업주가 하청노동자들의 노조활동에 지배·개입을 하는 것에 대해 노동부와 검찰은 원청사업주는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조사와 감독을 회피해 왔다. 이제 원청사업주가 하청노동자들이나 노조의 노조활동에 지배·개입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한다면 이는 명백히 원청사업주가 사용자로서 부당노동행위를 한 것이므로 노동부와 검찰은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단체교섭에 있어서도 원청사업주가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노조활동 등에 관여하거나, 영향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하여는 교섭의무를 진다고 봐야 하고, 만일 단체교섭을 거부한다면 역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게 된다.

모기업·공공기관에 대한 관련부처 ‘사용자 책임’ 단초

이는 사내하청뿐만 아니라 모기업·공공기관에서의 관련부처의 사실상의 개입에 대하여도 그동안 권한은 행사하면서 책임을 회피해 왔으나, 이 판례 법리에 의하면 이제 사용자 책임을 지울 단초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실질적인 결정권한을 가진 자인 원청사업주와 하청업체가 같은 자리에 교섭 자리에 나옴으로써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 등 노조로서 기본적인 단체교섭과 협약 체결활동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노동자는 자신이 노동을 제공하는 장소, 즉 사업장에서 일상적인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 사내하청과 같은 경우에 원청사업주 사업장에서 당연히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 노조가입 권유 행위, 유인물 배포 등 일상활동과 노조 총회와 집회 등 원청사업주를 상대로 한 장소 제공 요청, 비배타적인 점거파업활동, 피켓팅 활동 등 원청사업주는 하청노동자들의 노조활동에 장소적으로 직접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이를 수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특수고용직 근로자성 확대 중요한 계기

한편 이는 반대의 측면, 즉 노조법상 근로자성 판단과 관련해서도 의미가 있다. 노조법상 근로자와 사용자의 관계에 있어서 근로계약관계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은 사용자와 마찬가지로 노조법상의 근로자도 노무공급자들 사이의 단결권 등을 보장해 줄 필요성이 있는가라는 관점, 즉 노조법의 입법목적에 맞게 근로자의 범위를 파악해야 한다(대법원 2004.2.27 선고 2001두8568 판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정도의 종속성의 표지가 없어도 단결의 필요성, 단체교섭을 통해 노동관계를 형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자라면 노조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미 우리 노조법은 근로자의 개념 규정에서 근로기준법과 달리 임금 외에도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도 근로자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판례가 종래의 근로기준법상 사용종속성 표지를 노조법에도 요구할 이유가 없다.

이후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현실적으로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법률과 그 반을 채우는 판례만으로는 권리가 온전히 주어지지는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조직화 활동이 뒷받침돼야만 이 판례는 그 본래의 의미와 취지를 되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동안 원청사업주는 간접고용의 방식으로 그 자신의 법적 책임을 회피해 왔으나,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계속 살아가고자 한다면 이제는 더 이상 권한과 이익은 누리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종전의 태도를 버리기를 바란다.

[각주]
1) 입증 실패라고 한 것은 사내하청 등의 경우에 실질은 모두 묵시적 근로관계가 성립돼 있거나, 최소한 불법파견이라고 보인다는 취지이다. 증거자료가 모두 사용자측에 편재돼 있고 법원이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고 있어서 현실 재판에서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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