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민(31·남)씨는 스리랑카인이다. 오똑한 콧날에, 큼지막하고 새까만 눈과 눈동자, 까무잡잡한 피부까지 영락없다. 그런데 그는 한국인이다. 한국이 좋아 어학연수를 받았고 그 와중에 만난 지금의 아내와 3년 전에 결혼했다. 6월이면 첫째 아이를 얻는다.

김씨는 의정부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의정부센터)에서 상담과 통역을 한다. 그가 상대하는 이들은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들이다. 주로 임금체불을 당하거나 사업장을 바꾸고 싶어 한다. 임금체불 사건은 언제나 까다롭다. 사업주가 임금을 주지 않으면 행정적 절차를 진행해야 하고, 그러자면 서울지방노동청 의정부지청을 찾아가 사업주를 만나야 한다. 사업주들은 해당 노동자는 물론 생김새가 비슷한 김씨에게도 막말로 윽박지른다. 김씨가 청바지를 버리고 항상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는 이유다.

리드보컬이 강제출국 당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록밴드 스탑크랙다운의 ‘월급날’은 현실에서 셀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오늘은 나의 월급날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한참 동안 받지 못했던 월급을 돌려준데요/ 나의 소중한 가족들 사랑하는 부모님 … (중략) … 자정 시간이 넘어야 나의 일이 끝나네/ 봉투 없는 내 월급 오늘도 보이지 않네/ 오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그동안 밀린 내 월급을 주세요/ 날 욕한 건 참을 수 있어요/ 내 월급만은 돌려주세요.”


욕설·폭행 당하는 노동자 끌어안기

지난해 의정부센터에 상담을 요청한 이주노동자 4만402명 중 1만3천41명이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 번 문제를 일으켰던 사업주가 다른 노동자에게 임금체불을 저질러 다시 만나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 출신인 이홍옥(38·여)씨. 그는 베트남 현지법인에서 직장을 다니던 한국인 남편과 14년 전에 결혼했다. 의정부센터가 문을 연 2007년부터 상담·통역을 했다. 이씨는 “한국 사장들의 고집이 세다”고 말했다. ‘고집이 세다’는 것은 “큰소리 내고 욕하면서 돈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고집이 세면 노동부에 신고한다고 했다.

‘토종’ 한국인으로 인도네시아어 통역을 하면서 사실상 상담·통역 직원을 관할하는 석지은(35)씨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더불어 비상식적인 직장문화를 비판했다. 석씨는 “상담했던 인도네시아 노동자 중 한 명은 ‘엄연하게 내 이름이 있는데 공장에서는 임마고 새끼고 자식이었다’며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폭행도 횡행한다. 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사장이 문을 잠그고 때렸다고 했고, 인도네시아 노동자는 골프채로 맞았다며 의정부센터를 찾기도 했다. 석씨는 “사장이 ‘얼마나 말을 안 들으면 그러겠냐’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며 “경기북부는 공장이 영세해서 매뉴얼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굳이 상담이나 통역이 아니라도 의정부센터는 경기북부 이주노동자들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의정부센터는 일요일 오전부터 야단법석이다. 이주노동자 대다수가 주 6일 노동을 하기 때문에 일요일은 유일한 휴일이다. 특히 매달 첫째주 일요일은 무상진료 행사까지 있는 날이어서 더욱 붐빈다. 이주노동자들의 발길은 1층부터 6층까지 한 건물 안에서 시간마다 옮아간다. 1층에서 책을 읽고 무료 전화를 하다가, 2층에서 상담을 받고 3층과 4층에서는 한글이나 컴퓨터 교육을 받는다. 이어 5층에서 진료를 받고 집으로 가는 식이다.

6층은 쉼터다. <매일노동뉴스>가 의정부센터를 찾은 지난 4일. 일요일인 이날에만 1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의정부센터를 찾았다. 17명의 직원들만으로 이들을 관리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나마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다행이다. 이날 자원봉사를 위해 센터를 찾은 이들은 간호사·의사를 포함한 의료진, 무료법률 상담을 하는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관계자, 노동자들이 장기간 머무는 쉼터에서 손수 밥을 지어 먹이는 스님까지 줄잡아 20명 안팎에 달했다.


자원봉사자들, 기둥이 되다

3층에 올라가니 한국어교실에서 수업이 한창이다.
“나탈씨 7번요.” “여기는 한강 있는데요.” “다시!” “한강인데요. 서울에 있고 배를 탈 수 있어요.”
난이도가 높아진다. “스티조씨 12번 한번 풀어 보세요.” “어제 이사 잘했어요. 친구가 도와주세요.” 과거형 어미에서 막힌다. “어제가 있으니까, ‘도와줬어요’라고 해야죠.”
푸른 눈의 사나이가 “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한국어 정말 어려워요.”

이날 강의실에서 이주노동자 7명에게 한글을 가르친 교사 백운미(47)씨도 자원봉사자다. 초급부터 4단계로 수준을 나눠 반을 편성하는데, 백씨가 가르치는 노동자들은 3단계 고급반이다. 백씨는 1년8개월째 매주 일요일마다 의정부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한국어 양성과정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얘기를 듣고 공부해 자격증을 취득하고는 곧바로 의정부센터로 왔다. 직전 직업은 일어 통역가이드. 그는 "예전에 한국어를 배우는 이주노동자들이 와서 문법을 물어봤는데, 잘 모르니까 한국 사람이 왜 모르냐고 타박한 적이 있다"며 "한국어가 어렵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웃었다.

백씨처럼 한국어교실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20여명이다. 15명이 담임 역할을 하고, 나머지는 이제 갓 자음·모음을 배우는 초급반에서 부담임 역할을 한다. 교사들은 각지에서 스스로 알아서 모였다. 정규 교사였던 이영미(46)씨도 한국어 양성과정을 통해 자격증을 따고, 서울 하계동에서 2년6개월째 일요일마다 의정부센터로 출근하고 있다.

배우러 오는 이들도 열의에 가득 차 있다. 한국어교육은 14개 반에 250명이 정원인데, 400~500명은 항상 접수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수원이나 인천에서 오는 노동자들도 간혹 있다. 제법 말문을 틔운 프레딥(30)씨도 부천시 원미동에서 2시간 걸려 의정부로 온다. 스리랑카 출신인 그는 가까운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를 찾으라는 충고도 듣지 않는다. “친구들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렇게 2년을 거르지 않고 왔다.


이주노동자 수혜자에서 참여자로

이날 수료식을 마친 컴퓨터 교육실에는 노동자들의 포토샵 작품이 전시됐다. 작품 옆에는 서툰 한국어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인생을(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프라밧 만노다), “선생님의 의견을(이) 내 인생에 뒷밭침(뒷받침)이 되었습니다.”(프라딥 쿠마라)

이날 오후 4층 강당에서 진행된 무료진료에는 한국인 이외에도 낯익은 이주노동자들의 이름과 얼굴이 보였다. 진찰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원봉사 표식을 달고 있는 이들 서넛이 눈에 띈다. 이주노동자들이 수혜자에서 소극적이나마 참여자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센터를 중심으로 생성되기 시작한 공동체가 건전한 세력으로 커 가는 조짐도 보인다. 국가별로 1년에 한 번 공동체가 주관하는 축제가 그 증거다. 지난 4일 의정부 청소년회관에서 열린 캄보디아 설 행사도 500여명에 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참석했는데, 공동체가 사전작업을 했다는 후문이다. 노동자 30명이 토요일 밤부터 밤새 음식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날 행사를 위해 의정부센터가 지불한 돈은 단돈 80만원. 나머지는 캄보디아 공동체가 5천원씩 모금해 행사비를 마련했다.

타이 공동체 노동자 10여명도 설맞이 축제 준비를 위해 의정부센터를 찾았다. 이들은 6층 쉼터 한켠에 마련된 방음실에서는 타이 전통춤 ‘람푸타이’를 연습했다. 촬영을 기꺼이 허락한 파이손(42)씨는 “친구도 만날 수 있고 교육도 받을 수 있고 다른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며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력으로 나라별로 구성된 공동체는 점차 확장되고 있다. 2007년 17명으로 시작한 베트남 공동체는 매월 첫째주에 하는 정기모임 때마다 60~70명이 꾸준히 참가할 정도로 세가 불어났다. 축제 준비를 위해 이미 30여차례나 만났다. 스리랑카 공동체도 지난해 20~30명 규모로 치렀던 행사를 올해는 2천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작업을 벌이고 있다. 스리랑카 공동체는 이미 두 달 전에 준비에 들어갔다. 이렇게 나라별로 준비되는 축제만 9개에 달한다.

이광일 의정부센터 소장은 “건전한 공동체가 늘어나야 다문화 사회가 자정능력을 가질 수 있다”며 “자율과 참여로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만큼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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