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를 대신해 도입되는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정할 노동부 산하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가 지난 26일 출범 한 달을 맞았다.
사실 근면위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업종과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인 노조활동에 대해 타임오프 한도를 일률적으로 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근면위가 기초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진행 중인 실태조사를 놓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노조활동을 시간으로 계량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근면위 활동이 요식행위에 그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시간계량의 비현실성 앞에서 결과를 두고 노사정 간 충돌이 예상되는데, 결국 칼자루를 쥐고 있는 공익위원들이 규모별 상한제(인원수)로 결정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가 근면위 논의경과와 진통, 활동을 중간점검했다.<편집자>
 
민주노총 불참 속 근면위 출범
 
지난달 26일 서울시 여의도 63빌딩.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가 첫 선을 보였다. 이날 노·사·공익 위원 각 5명이 위촉됐고, 향후 활동계획이 발표됐다. 위원장은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가 맡았다.
 근면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에 따라 4월27일까지 타임오프 한도를 정하되, 위원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5월15일까지 공익위원이 국회 의견을 들어 최종 의결키로 했다.

그러나 근면위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민주노총은 당시 “참여 여부를 논의 중이니 기다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시간이 촉박하고 개정 노조법상 5명으로 출발해야 한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몫 두 자리를 비워 두지 않은 채 한국노총 추천인사들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공익위원들의 이력도 논란이 됐다. 공익위원 5명 중 위원장인 김태기 교수는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다 낙마했고,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이력의 소유자다. 박준성(성신여대)·이종훈(명지대) 교수는 우파 성향의 학자들로 구성된 ‘신노동연구회’ 소속이다. 이들은 MB정부의 노동정책 수립에 기여했거나, 고용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이다. 이상희(산업기술대) 교수는 과거 산업자원부 정책자문관을 맡는 등 친여·친기업 인사로 분류된다. 중도로 분류되는 공익위원은 김동원 교수(고려대) 한 명뿐이다.
 
근면위 실태조사 ‘속도 냈지만’
 
지난 3일 민주노총이 근면위 참여를 결정한 가운데 근면위는 노조활동 실태조사표 구성과 실태조사 계획을 빠르게 진행시켰다. 근면위는 5일 노사 및 전문가 5명으로 실태조사단을 구성했다.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정할 때 실태조사 결과를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실태조사단은 노동자 5천인 이상 유노조 사업장(51곳)은 전수조사, 5천인 미만의 유노조 사업장은 모집단(6천600개)의 10% 표본조사 방식으로 700곳을 조사할 계획이다.

실태조사에는 해당 사업장 노사가 동시에 참여하며, 노사의 답변내용이 현저히 다르면 지역 노사전문가와 근로감독관이 참여한 가운데 현장 확인·점검을 통해 보정키로 했다.
근면위는 이달 12일 조사표 발송, 15~17일 조사실시, 18~19일 수거, 22~23일 통계회사로 수거, 24~25일 필수항목 (노사) 일치 여부 확인, 26~29일 현지 확인·점검, 30일 설문지 재회수, 다음달 5일까지 분석한 뒤 같은달 6일 근면위 전체회의에서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근면위는 이에 앞서 노동관계법 명시 업무와 기타 노조활동을 구분해 소요시간과 참여인원 등을 묻는 복잡하고 방대한 내용의 조사표를 확정했다.<상자기사 참조>

실태조사표 받아든 현장 ‘우왕좌왕’
 
“현장에서 아우성입니다. 도대체 노조활동 시간을 어떻게 계량하라는 건지….”
우려했던 대로였다. 15일부터 배포되기 시작한 근면위 실태조사표를 받아든 노사의 반응은 두 가지로 모아졌다. 하나는 조사표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노조활동 시간계량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기자의 하루생활을 일일이 쪼개서 연시간으로 각각 계량하라고 하면 그게 가능하겠어요? 기준도 원칙도 없습니다.”(민주노총 관계자)
“지난 22~23일 부산과 창원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봤더니 하나같이 조사표가 어렵다면서 제대로 이해를 못하더군요.”(한국노총 관계자)
“기업 담당자들 역시 조사표가 어렵다고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시간계량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죠.”(한국경총 관계자)

노조가 사측에 조사표 작성을 위임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25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내용이 어렵다고 사용자에 위임하는 노조도 있고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기재하는 노조 수도 상당하다”며 “조사의 중요성을 감안해 심혈을 기울여 임해야 한다”고 결의하기도 했다.
 
실태조사 둘러싼 노사의 ‘온도차’
 
이뿐만이 아니다. 근면위는 5천인 이상 사업장 전수조사시 1사 2노조인 대한항공의 경우 1개 조직에만 조사표를 발송했다. 신분은 공무원이지만 노조법의 적용을 받는 체신노조에는 아예 조사표를 보내지 않았다. 한국노총이 항의해서 바로잡긴 했지만, 별도로 발견되지 않는 경우엔 속수무책이다.

또한 사업장 700곳의 실체가 공개되지 않으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노총은 자체적으로 조사대상 소속사업장을 확인해 본 결과 대략 300개 정도라고 밝히고 있는 반면 민주노총은 100여개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주장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민주노총이 100여개면 나머지 600개는 어디로 간 것이냐”며 “민주노총 사업장을 일부러 배제한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조사의 공정성과 신뢰성 때문에 조사대상 사업장 이름이나 상급단체별 비율은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실태조사와 관련해 노사 간 온도차도 느껴진다. 노조는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하고, 사용자는 최소한의 시간으로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노조는 기타 노조활동 시간을 공을 들여 계량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반면 재계는 교섭·협의 등 기본업무만 타임오프 대상으로 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간계량 한계 속 근면위 결론은?
 
이같이 실태조사가 난항을 겪으면서 전체적인 근면위 일정도 2주일가량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애초 일정대로라면 26일까지 실태조사를 모두 마치고, 분석과 현지점검까지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아직 실태조사표도 수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면위 활동에 변화도 예고된다. 우여곡절 끝에 근면위 참여를 결정한 민주노총은 29일 전체회의부터 참여한다. 이로 인해 근면위가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지만, 논의가 복잡해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근면위는 실태조사표 수거·분석을 마치는 대로 노사 간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4월2~3일 워크숍을 갖고 근면위 운영방향과 실태조사 문제점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노조활동 시간을 계량하기가 쉽지 않고, 노사 간 입장차가 너무 커서 실태조사 결과가 근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조사결과가 나와도 걱정”이라고 말했고, 경총 관계자도 “결과에 대한 노사 입장차가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사가 각각 협상 과정에서 무엇을 근거로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진다. 이를 위해 노사는 각각 자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근면위가 4월 말까지 합의에 실패하면 5월15일까지 공익위원이 국회(상임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타임오프’라는 새로운 제도를 실험하는 근면위가 남은 기간 동안 어떤 결론을 내릴지 노사정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근면위 ‘실태조사표’ 분석해 보니
방대한 분량, 세밀한 항목 “어이쿠, 머리야”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가 전국 사업장 700곳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실태조사는 조사표 분량부터가 방대하다. 작성안내서만 7쪽, 실태조사표 8쪽 등 모두 15쪽에 이른다.
작성안내서가 긴 이유는 조사표의 항목이 복잡하게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조사표는 크게 △조합원수·업종·사업장분포·근무형태·상급단체·노조전임자수 기본자료 조사 △단체교섭·노사협의회·산업안전·고충처리·사내근로복지기금·노조유지관리 활동 등 유급으로 인정된 노조활동 △노조전임자의 노조활동 △무급 노조활동에 대한 조사로 이뤄진다. 또 노사 당사자가 작성한 노조활동 시간이 현저한 차이가 날 경우 유급처리 노조활동에 대한 노사 양측 모두 근거자료를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태조사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욱 세밀하다. 예컨대 단체교섭의 경우 해당연도부터 본교섭과 실무교섭 구분, 교섭횟수 산정, 1회당 평균 노조 교섭위원수, 1회당 평균 교섭시간, 기타 교섭에 소요된 연간 총시간, 기타 교섭시간에 대한 사유 명시, 총소요시간을 묻는다. 노사협의회와 고충처리·산업안전·근로복지기금 사항도 마찬가지 질문으로 전개된다.
가장 복잡한 것은 노동관계법에 명시되지 않은 기타 노조활동 사항이다. 예컨대 노조관리 업무 연간 소요시간은 지난 1년간 총회·대의원대회·임원선거·회계관리 활동에서 안건 작성시간·회의소집 및 통보시간 등 회의 자체를 위해 소요된 시간 중 유급으로 인정받은 시간의 합계를 기재토록 하고 있다. 상급단체 활동에 대해서는 상급단체 대의원대회·집회·선거·수련회 등 각종 활동에서 유급으로 인정받은 횟수와 인원, 총소요시간을 기재토록 요구했다.  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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