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의 밥상 때문에 시끄럽다. 6·2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야권 교육감 후보들이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여권에서 부유층 아이들에게 공짜 밥을 줘서는 안 된다며 각을 세우고 있다. 어른들의 무상급식 논쟁 이면에는 그만큼 밥 굶는 아이들이 많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다. 월급 받는 노동자도 제때 끼니를 찾아 먹는 게 쉽지 않다. 전남 광주시에서 어린이집 교사로 5년째 일하고 있는 박아무개(33)씨는 점심시간이 하루 중 가장 바쁘다. 아이들 배식과 식습관 관리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박씨는 “배식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이 낮잠을 잘 때까지는 화장실조차 갈 수 없다”며 “다른 직장인 같은 점심시간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성부가 2006년 전국 보육교사 6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균 점심시간은 11.1분, 휴식시간은 평균 5.5분에 불과했다.

11분 만에 점심 해치우는 보육노동자
 
임금을 많이 받는 노동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증권노동자들의 점심시간 풍경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증권사 객장에는 점심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2000년 5월 증권거래소 업무규정을 개정하면서 점심시간 휴장제를 없앴다.
현재 국내 주식시장 개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다.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은 주식시장이 열리지 않지만, 개장 내내 점심시간은 없다. 일본과 홍콩은 현재 점심시간에 휴장하지만, 한국과 미국 등 대다수 세계 주식시장은 점심시간에도 장을 운영한다.

ㅇ투자증권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는 이상진(42·가명)씨. 그는 이제 점심을 거르는 게 일상이 됐다. 이씨는 “점심시간에도 주식매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상한가 따라잡기 매매’를 하는데, 하루에도 몇 차례 주가변동이 발생하기 때문에 점심 먹기를 아예 포기했다. 증권노동자들은 이씨처럼 쓰린 속에, 주식 종목의 변동성에 신경을 쓰다 보니 스트레스성 위염을 달고 산다.

사무금융연맹 증권노조는 2007년 산별교섭 이후 증권노동자의 건강권 확보 차원에서 점심시간 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규호 증권노조 위원장은 “점심시간 휴장은 증권노동자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면 사용자측은 “일부 증권사만 점심시간 휴장을 추진할 수는 없다”며 “제도적인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다. 증권노사 산별교섭에는 총 61개 증권사 가운데 8개만 참여하고 있다.
 
화장실에서 밥 먹는 청소노동자
 
점심 먹을 틈이 없는 노동자가 있는 반면 밥 먹을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도 부지기수다.
고려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은 각 병동에 있는 배관실이다. 전기·가스 배선을 모아 놓은 일종의 보일러실 같은 공간이다. 한 사람이 들어가기에도 좁은 데다, 전깃불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병원측이 70여명의 청소노동자들을 위해 마련한 대기실이 있지만, 20명이 들어가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비좁다.
 
 김윤희씨는 “유일한 휴게공간인 대기실은 거리도 멀고 좁아서 점심 먹기가 불가능하다”며 “병원측에서 석면가루가 날릴 수 있다고도 하지만 형편상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 식당을 이용해도 되지만, 그럴 경우 한 달 식비만 12만원이 넘는다. 최저임금 수준인 한 달 83만원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다.
성신여대 청소노동자들은 남자화장실 한 칸을 휴게공간으로 쓰고 있다. 점심 도시락을 먹을 때 고약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지만 마땅한 공간이 없다.
 
식권마저 차별받는 비정규직
 
비정규직법 국회 통과로 논란이 한창이던 2007년 8월16일 점심시간. 대구 경북대병원 로비에서는 이색 시위가 벌어졌다. 간병인 40여명이 차가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전자레인지로 해동한 밥 한 덩이와 김치를 펼쳐 놓고 밥을 먹었다.

간병노동자들이 도시락 시위를 벌인 까닭은 당시 하루 12시간에 일당 3만5천원을 받고 환자의 대소변을 받던 이들에게 병원측이 한 끼에 1천원인 직원식당 식권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간병인소개소를 직접 운영했던 병원측이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혹여나 차별시정 조치 등의 영향이 미칠까 우려해 간병인의 구내식당 이용을 아예 막아 버린 것이다.

석 달 가까이 간병노동자들이 도시락 시위를 벌인 끝에 병원측은 직원 식권을 1천200원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직원보다 200원이 비싼 가격이다. 경북대병원에서 6년째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석명옥(49)씨는 “똑같은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같은 반찬에 밥을 먹는데도 200원이나 더 내라는 건 차별”이라며 “내 돈 내고 밥 먹는데도 눈칫밥을 먹는 것 같아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병원 관계자는 “직원식당은 복지 차원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며 “외부인인 간병인에게까지 혜택을 주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유통기한 지난 재고로 점심 해결하는 청소년들
 
서울 여의도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지영(19·가명)씨는 팔리고 남은 샌드위치나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점장이 한 끼 식대로 1천원을 책정해서 주지만, 된장찌개 한 그릇에 5천원이 넘는 여의도에서 시급(4천원)보다 비싼 점심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대한민국, 10대 밑바닥 노동의 현실’ 보고서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청소년 13.6%는 팔고 남은 재고로 식사를 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지급하는 경우도 1.4%나 됐다. 최근 1년간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전국의 10대 1천8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지난 3일 서울 신촌역 인근 공원에서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달라’는 청소노동자들의 행진이 벌어졌다. 이화여대·성신여대·고려대병원·덕성여대·연세대 등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다. 이 자리에서 공공노조는 올해 ‘청소노동자에게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펼치겠다고 밝혔다. 노조에 속해 있는 공공기관노조들은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청소노동자들에게 식권 지급과 휴게공간 제공을 요구하기로 했다.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는 기본권 중 기본권이다. 이들 노동자의 ‘밥상 연대’가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그날을 기대해 본다.


회사에서도 ‘친노동·친환경’ 식판 혁명을!
도심에 사무실이 위치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다수 노동자들은 사내식당을 이용한다. ‘짬밥이 그게 그거지’라고 치부하기 전에 사내식당부터 친노동·친환경으로 전환해 보는 것은 어떨까.
90년대 중반까지 사내식당은 복리후생 차원에서 직영체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식당을 외주화하면서 지금은 위탁급식 형태가 주를 이룬다. 한국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직영급식과 위탁급식을 포괄하는 전체 급식시장은 2008년 7조8천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학교 직영시장을 제외한 규모가 4조5천억원가량으로,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2.3%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사내식당 외주화 추세는 조리원·영양사 등 급식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동시에 식사의 질 하락·식대 인상 같은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지난해 5월1일 한국철도공사는 직영으로 운영되던 식당 20여곳을 모두 외주위탁했다. 대전차량정비창 노동자의 점심을 10년 넘게 책임져 왔던 직접고용 비정규직 조리원 5명이 해고됐고, 식대는 종전 2천원에서 2천800원으로 50% 가까이 인상됐다. 철도노동자들은 외주업체로 넘어간 식당에서 10개월째 점심을 먹지 않고 있다. 해고된 조리원의 고용보장과 식당 직영화를 요구하며 천막식당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식당 외주화에 대한 사측의 완강한 태도는 변함이 없다. 사실 철도노조와 같은 식당 외주화 철회투쟁은 수년간 되풀이됐지만, 대부분 급식 노동자 고용 문제 해결에 급급했던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식당이 외주화됐다 하더라도 친노동·친환경을 우선 계약조건으로 내걸고 ,양질의 식사와 급식 노동자의 노동조건 향상을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크루즈 캠퍼스(UCSC)의 경우 ‘농장에서 대학까지(farm-to-college)’ 운동을 펼친 바 있다. 학생들이 주도해 미국 최대 급식업체와의 식당 도급계약을 해지했다. 이어 유기농업과 지역 먹을거리 그리고 식당의 안정된 노동환경을 구매조건으로 입찰한 결과 학생들은 신선하고 맛까지 좋은 식사를 제공받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년간 친환경·우리농산물 직영급식 운동이 진행돼 상당한 성과를 거뒀고, 이제는 무상급식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사업장에서도 ‘친노동·친환경’ 식판혁명을 시도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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