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자리를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도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치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우수한 결과를 만들었지만 부족한 점이 많이 있고,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것 같다. 금년 국정목표는 여러 가지 있지만 제1 목표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3차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일자리를 강조했다. 국가고용전략회의는 올해 1월21일 첫 회의를 열었다. 거시지표는 회복되는데 고용지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이 대통령의 우려가 반영됐다. 골격이 마련된 첫 회의에서 두 가지 방향의 대책이 제시됐다. 경제위기로 악화된 고용을 시급하게 회복하기 위한 ‘2010 고용회복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단기대응이 하나고, 구조적 개선대책이 또 다른 하나다. 정부는 구조적 고용창출 대책과 관련해 올해 안에 제도개선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관련법을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고용사정 ‘엇갈린 해석’
 
고용전략회의가 열린 지 보름여 뒤에 발표된 고용사정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통계청은 실업자가 121만명에 달한다는 ‘1월 고용동향’을 발표했다.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98년과 99년 이래 10년여 만이다. 실업률도 5%를 기록했다. 최근 발표된 ‘2월 고용동향’도 비슷한 추세를 이어 갔다. 실업자는 116만9천명, 실업률은 4.9%에 달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의 해석은 달랐다. 기재부는 “고용여건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나, 경기개선에 따른 고용회복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낙관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취업자수 증가 폭이 확대돼 2월 중 취업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만5천명 늘었다는 이유를 댔다. 공공행정부문 취업자수가 소폭 줄었는데도 제조업과 서비스업 일자리를 중심으로 취업자수가 증가했다는 근거도 추가했다. 지난달 공공행정 취업자는 1만7천명 감소하고 제조업은 4만5천명, 서비스업은 31만명 늘었다.<그래프 참조>
 

기재부는 실업률이 여전히 높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실업자 감소 속도가 더딘 이유에 대해서는 “경기개선에 따른 구직자들의 기대감과 공공부문 일자리 사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전망도 장밋빛이다. 기재부는 “앞으로 경기회복세가 확대되고 공공부문 일자리 사업이 본격화됨에 따라 취업자 증가 폭이 확대되고 실업률이 낮아지는 등 고용지표가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용시장, 외환위기 이어 금융위기로 ‘흔들’
 
그러나 고용사정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지표인 고용률과 관련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고용률은 2008년 2월 58%에서 지난해 2월 57%로, 다시 올해 2월 56.6%로 거듭 폭락했다. 이는 비경제활동인구의 급증과 맞닿아 있다. 비경활인구는 1월에 사상 처음 1천630만명을 넘어서더니 2월에는 1천638만명으로 1천640만명 선에 바짝 다가섰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싶어 하는 단시간노동자나 구직을 단념하고 비경제활동 상태에 빠진 사람 등 사실상 실업자도 379만2천명에 달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는 대기업에서 소기업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급속히 재편됐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2008년 1~4인 사업체는 전체 사업체의 83.1%인 271만6천곳으로 전체 고용인원의 29.9%인 487만명을 고용했다. 5~99인은 사업체수가 16.5%, 고용인원이 46.3%에 달했다.
 
사업체의 99.6%에 달하는 100인 미만 기업이 고용인원의 76.2%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은 2천898개(0.1%)로 13.5%인 218만9천명을 고용했다. 외환위기 이전인 95년 대기업에서 251만명을 고용한 것을 감안하면 32만명의 대기업 일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대기업의 고용비중도 18.4%에서 13.5%로 감소했다. 실제로 한 취업포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757개 상장기업은 올해 지난해보다 11.5% 줄어든 1만8천여명만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조사에서 채용을 하겠다는 기업은 2008년 47.8%였는데 올해는 32.3%에 불과하다. 공기업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인턴만 양산하고 있는 공공기관을 비롯해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 창구역할을 하는 서비스업 일자리는 대개 열악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은 업소당 2.8~2.9명이 일해 7명 이상인 일본이나 14명 안팎인 미국에 비해 크게 적었다. 국내 서비스업의 영세성을 보여 주는 지표다.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은 제조업보다 100만명 많은 426만명이 일하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빈곤층은 2008년 21.1%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빈곤층 비중은 2006년 20%, 2007년 20.2%였다. 황수경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위기가 한 번 올 때마다 살아남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간의 격차가 벌어진다”며 소득불평등 확대를 우려했다.
 
정부 고용대책, 노동시장 혼란 예고
 
외환위기 직후 8% 중후반까지 치솟는 실업률을 잡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실업대책은 공공근로와 인턴제였다. 일괄 할당식 구조조정을 했던 공공기관들이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메우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98년 실업대책은 노동시장을 변화시켰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95년 58.1%에 달하던 상용직 비중은 99년에 48.7%, 2000년에 47.9%까지 떨어졌다. 경활조사는 종사상 지위를 상용직과 임시직·일용직으로 나눈다. 즉 비정규직이 99년에 이미 50%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공공근로에서 이름을 바꾼 희망근로와 인턴을 활용했다. 지난해 8월 기준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는 2008년 8월보다 비정규직이 공공행정에서 28만명, 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에서 6만명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직업별로는 단순노무직이 34만명 늘었는데, 이는 희망근로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노동시장 양극화 이유를 정규직 고용 과보호에서 찾고 있다. 단체협약으로 고용을 보장받고, 회사가 이를 유지하기 위해 원·하청 기업 간 불공정거래를 획책하고 있다는 식이다.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한다거나 탄력적근로시간제와 단시간근로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은 이 같은 인식에서 비롯됐다. 고용서비스시장 민간위탁을 포함한 전면적인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소장은 “경제위기 이전에 12%를 넘나들었던 독일의 실업률이 경제위기 국면에서 폭증하지 않고 오히려 8% 수준으로 안정되고 있다”며 “독일의 실업률 감소는 노동 유연화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의 효과”라고 충고했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19건에 달한다. 이 중 고용보험제도와 관련한 내용은 한나라당과 민주당·민주노동당이 제출해 놓은 상태다. 주요 내용은 구직급여를 받기 위한 피보험기간을 비정규직에 한해 한시적으로 180일에서 120일로 줄이고(강성천 한나라당 의원), 피보험기간을 완화하고 자발적실업자의 수급권을 인정하자(김상희 민주당 의원)는 것이다. 또한 특별법을 제정해 한시적으로 실업부조를 제공하고(김재윤 민주당 의원), 수급기간 완화와 더불어 실업부조제도를 고용보험법에 명시하자(홍희덕·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는 내용도 있다. 이들 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다뤄질지 주목된다.
통상 고용지표는 경기에 6개월가량 후행한다. 정부는 지난해 고용보험기금 사용을 늘리면서 위기를 넘겼다. 경제지표의 호조와 함께 고용유지지원금을 비롯해 각종 지원제도를 이전 상태로 돌리고 있지만 정작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는 내일도 추운 겨울이다. 한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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