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지역의 한 아파트에서 환경미화원으로 4년 가까이 일한 김아무개(52)씨는 계약기간이 남았는데도 지난해 연말 관리소장으로부터 해고를 통보받았다. 평소 청소상태가 깔끔하지 못하고 입주민에 대한 태도가 불손하다는 이유였다.

김씨는 입주민들이 서명을 통해 관리소에 자신에 대한 징계를 요구한 사실을 알게 됐다. 서명을 주도한 입주민은 평소에도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그의 등살에 못 이겨 회사를 그만둔 동료도 여럿 있었다. 김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결국 해고기간 동안의 급여를 받는 조건으로 입주자대표회의와 화해했다. 김씨는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서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싫어 복직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노동위 단골 출석자, ‘입주자대표회의’
 
경비원·시설관리자·환경미화원 등 아파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지노위 심판회의 일정을 보면 ‘000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라는 사업장에 대한 심문회의가 자주 눈에 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많으면 두세 건이 몰린다. 서울지노위의 한 심판위원은 “심문회의 2~3회에 한 번씩은 아파트 부당해고 건을 다룬다”며 “단일직종으로는 가장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의 경우처럼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직접 해고하는 경우도 있고,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은 용역업체가 해고하기도 한다. 해고사유도 다양하다.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고용승계가 되지 않거나, 계약서상 계약기간이 끝나 고용관계가 해지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런 사건은 노동자가 법적인 구제를 받기 어렵다. 대법원은 판례에서 용역업체 간 고용승계 의무는 없는 것으로 본다. 문서를 통해 매번 계약을 갱신했다면 무기계약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되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 사용자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정당한 해고로 인정되지 않는다. 김씨처럼 징계해고돼 구제신청을 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해고절차나 해고목적이 정당하지 않아 부당해고 판정이 나오기도 하고, 명백한 업무과실이나 비위·근태불량 등으로 기각되기도 한다.

징계해고나 징계성 전보의 경우 관리사무소의 관리자보다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의견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업무를 위탁받은 용역업체도 직원들의 채용이나 인사이동에 입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지만, 입주민들이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법적 사용자인 입주민들이 관리소장 등에 대한 채용·교체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파트에서 4년 동안 일하면서 관리소장이 3번이나 바뀌었다”며 “부임한 지 채 한 달밖에 안 된 관리소장은 자기도 (해고될까 봐) 불안하니까 나에게 사직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입주자대표 정권교체에 ‘물갈이’도
 
입주자들의 권한이 절대적이다 보니 표면적인 징계 이유와는 달리 입주자들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논란이 불거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구로구 소재 한 아파트에서 3년간 관리소장으로 일한 성아무개(58)씨는 지난해 9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해고돼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입주자들은 잦은 음주 등 불성실한 근무태도를 이유로 주민총회에서 성씨의 해고를 결정했다. 또 성씨가 과거부터 수차례 그만두겠다는 말을 했고, 해고되기 한 달 전 사직서를 내고 퇴직금을 받았기 때문에 근로관계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성씨는 사직서를 제출한 적이 없고, 구두로 해고통보를 받았을 뿐이라며 부당해고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노위는 “성씨가 사직의사를 밝혔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없고, 사용자가 근로관계 종료를 구두로 통보했기 때문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성씨의 손을 들어줬다.

노동위는 해고의 절차를 문제 삼았지만 성씨는 입주자대표자회의 회장이 바뀐 것이 부당하게 해고된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가 해고되기 직전 전 회장이 현 회장과의 갈등 끝에 입주민들의 불신임을 받아 회장직에서 물러났는데, 자신에게 불똥이 튀었다는 것이다. 성씨는 “전 회장이 해임되면서 나도 해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서울지노위 근로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성우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국장은 “입주자대표자회의의 ‘정권’이 바뀌면서 전 회장 라인의 사람들이 쫓겨나는 케이스들도 꽤 된다”고 말했다.
 
입주자들 노동법 인지도 떨어져
 
부당해고 판정을 받는 아파트 노동자 해고사건을 보면 아파트 입주민들이 대부분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위탁관리 아파트가 아니라면 입주민들이 법적 사용자이고 실제로도 사용자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기업과는 달리 노무담당 인력이 따로 없기 때문에 노동관계법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해고의 목적과 절차 등에 대한 법적 검토 없이 징계와 해고 등을 남발하는 일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인사문제뿐 아니라 수당지급 등과 관련해서도 법정기준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렇다고 법적으로 사용자가 아닌 위탁관리 아파트의 입주자대표자회의라고 해서 노동자들의 인사·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위수탁계약을 맺을 경우 입주자대표회의와 업체가 논의해 직원들의 보수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계약서에서 직원들의 인사나 채용에 입주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협의 또는 합의하게 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노동부는 지난 2004년과 2006년 ‘아파트종사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에 관한 지침’을 각 지방노동관서에 시달했다. 일부 지방관서에서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노무관리 교육을 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중앙 차원에서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위탁관리 아파트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노조 조직률이 떨어지는 것도 아파트 사업장의 부당해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원인이다. 노동계에 따르면 현재 아파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2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노조로 조직된 수는 4천여명에 불과하다.

이종화 전국시설관리노조 조직국장은 “통계를 내기 힘들 정도로 조직률이 떨어지는 반면 입주자들의 영향력은 커지면서 각종 사건에 대응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신승현 전국아파트노련 위원장은 “위수탁업체가 바뀔 때마다 해고돼 노조가 없어지면서 조직률이 계속 떨어진다”며 “위탁관리 아파트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하청업체나 도급업체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가 발생하면, 실질적인 사용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다. 외부업체에 위탁을 하거나 용역을 주는 위탁관리아파트 노동자들이 해고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먼저 사용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임금청구 대상을 결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수탁업체가 변경됐을 경우 고용승계 여부를 판가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법원 판례나 노동위원회 판정 등을 보면 위탁관리아파트 입주민들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외부업체에 위탁을 하게 되면 그 업체가 작업지시·직원채용·징계·보수지급 등을 자체 수행한 것으로 간주한다. 입주자들과 노동자들 간에 직접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사용자와 노동자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이 입주자들의 사용자성을 증명하려면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2008년 중앙노동위원회는 노동자들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하면서 사회보험에도 가입하고 직원의 권고사직이  가능하게 계약서에 명시했던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해 사용자성을 인정한 적이 있다.
2006년 노동부가 마련한 ‘아파트종사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에 관한 지침’에도 입주자대표회의가 직원들의 임금·인사 등에 최종 결재권을 행사하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이럴 경우 수탁업체가 바뀌더라도 고용승계가 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처럼 고의성이 다분하지는 않지만, 아파트입주자들도 ‘위장도급’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성우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국장은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는 사업체의 실체가 없다 보니 사용자로서의 인식도 떨어진다”며 “사용자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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