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시절 만도기계는 흑자를 내고도 부도처리됐다. 모그룹인 한라그룹이 경영난에 휩싸이면서 그룹 내 알짜기업이었던 만도기계마저 부도라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만도기계는 결국 미국계 로스차일드펀드 주도하에 5개 회사로 쪼개져 팔렸다. 만도기계의 3개 섀시공장(평택·문막·익산)은 (주)만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미국 JP모건 계열사인 선세이지에 팔렸다. 위니아만도(아산)는 스위스계 UBS컨소시엄으로, 경북 경주의 자동차부품 공장은 프랑스계 발레오그룹에 넘어갔다. 충북 청원 자동차용 모터공장은 독일계 보쉬가, 강원도 문막공장 다이캐스팅부문은 미국계 깁스가 인수했다.

로스차일드펀드는 분할매각 과정에서 1천100여명의 인원을 정리했는데, 주로 만도기계에 집중됐다. 한라그룹 계열사를 담보로 국내 은행에서 차입금을 빌려 부채를 청산한 뒤 매각이익을 챙기고 떠나는 전형적인 ‘먹튀’ 행각을 벌인 것이다. 위니아만도를 CVC에 재매각한 UBS, 한라건설에 (주)만도를 내다 판 선세이지도 마찬가지였다.

일각에선 글로벌 기업만큼은 먹튀자본 행태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발레오그룹은 세계 자동차부품업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글로벌기업이다. 하지만 최근 발레오그룹의 행태는 투기자본과 너무나 유사했다. 발레오그룹은 지난 99년 만도기계 경주공장을 인수한 후 11년간 초기 투자자금의 두 배에 달하는 이익을 회수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80억원의 적자를 봤다는 회사측 주장을 고려하더라도 500억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얻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런데도 발레오그룹은 국내 계열사에 대한 철수를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동차 에어컨용 냉매압축기(콤퓨레셔)를 제작하는 충남 천안의 발레오공조코리아는 지난해 10월 폐업하고 전 직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5개월여가 지나고 있지만 발레오그룹은 노조와 일체의 협의를 하지 않은 채 청산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완성차 업체에 모터·발전기를 납품하는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에서는 한 달째 직장폐쇄가 이어지고 있다. 경비직 외주화에 반발한 노조가 태업에 들어가자 회사측이 전격적으로 직장폐쇄를 한 것이다. 이에 앞서 회사측은 노조의 반발을 대비해 해외공장에서 부품을 수입해 국내 완성차업체에 납품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발레오공조에 이어 발레오전장까지 철수를 고려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이를 파악하고 있었던 노조가 외곽업무인 경비직에서 외주화가 이뤄지면 생산업무까지 확대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자동차부품업체 노조로 이뤄진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연대파업을 벌인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다. 경주지부에 속한 다른 부품기업노조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당국이 직장폐쇄 이후 곧바로 발레오만도지회장을 체포하고, 경주지부를 압수수색하면서 강경대응을 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에 납품을 하고 있는 발레오전장은 그간 원청업체에 대한 부품공급 여부에 따라 노사관계가 조율돼 온 것이 관행이었다. 부품공급에 차질을 빚을 경우 원청업체가 부품공급선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부품 노사갈등도 이를 고려해 해결돼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경우처럼 검·경이 초기부터 개입한 것은 석연치 않다. 물론 정부당국은 금속노조 경주지부의 연대파업이 불법이고, 춘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투자금 이상을 회수하고도 철수까지 고려한 글로벌 기업의 횡포는 눈감고, 노조만 때리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정부당국의 강경대응은 되레 재매각과 청산 과정에서 외국자본에 대한 불신이 강한 노동자들의 극한 투쟁만 불러올 뿐이다.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최근 조합원 총회에서 연대투쟁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를 방증하는 것이다. 이를 살핀다면 강경대응보다 대화를 주선하는 것이 사태 해결의 지름길이다. 정부당국은 더 이상 사태를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발레오그룹도 복귀의사를 밝히며 대화를 요청하는 노조의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청산과 외주화를 한다고 해서 그룹 본사가 있는 프랑스와 한국의 노동자에 대한 처우를 달리 해서야 되겠는가. 그룹 본사가 있는 프랑스에서는 청산이 불가피하더라도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재취업까지 보장하면서 한국에서는 노조와 일체의 협의조차 없이 강행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빠른 시일 내에 직장폐쇄부터 풀고, 노조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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