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지방으로 권한을 이양하기로 한 노동부의 기능을 살펴보면 전문인력과 부서도 없는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할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노동부와 환경부가 나서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유해물질 제조 금지와 허가업무를 지자체에 맡기는 것과 관련해 “노동자 건강권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계는 이번 지방분권위의 결정에 대해 “그동안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지켜 왔던 산업안전보건체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우려했다.

지자체, 전문성 있나?

24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81호)에 따르면 노동자 보호를 위한 감독업무는 중앙정부의 감독·관리하에 둬야 한다. ILO는 ‘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령의 시행상 필요한 감독제도에 관한 일반원칙 권고’에서 “감독기관은 중앙 국가기관의 직접적이고 배타적인 통제하에 있어야 하고, 그들의 어떠한 직무집행과 관련해서도 이를 지방기관의 관할하에 두거나 혹은 이에 대한 어떤 책임을 물어서도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지방분권위는 사업주 감독기능 가운데 영업정지 요청·산업재해 예방활동 촉진 같은 사무를 지방에 이양하기로 결정했다. 정영숙 한국노총 안전보건연구소 본부장은 “과연 시·도에서 기업의 입김을 막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사실상 노동부가 안전보건 기능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지방분권위는 이번 결정으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업무를 이양해야 한다고 밝힌 ‘논거’ 때문이다. 유해물질 제조 금지와 허가 업무가 대표적이다. 지방분권위는 “유해물질 제조 등의 금지·허가에 관한 사무는 노동부장관이 수립한 정책·기준에 따라 노동부 소속기관인 지방노동청·지청에서 집행하는 현지성이 강한 사무”라며 “주민을 직접 상대하고 주민과 가까이 있는 지자체가 수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해물질 허가 업무는 화학물질과 작업공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어야 수행할 수 있다. 현재 노동부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기술지원을 받아 해당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김은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노동부와 환경부가 나서도 관리를 못하는 유해물질 관리를 지자체에 맡기겠다는 것은 최소한 필요한 사회적 규제마저 없애 버리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준비 안 된 지방이양 ‘혼란’ 불가피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역학조사 업무를 지방으로 이양하겠다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노동부 관계자는 “역학조사가 지방으로 이양될 경우 다시 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으로 재위탁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일부 조항만 지자체로 이양해 업무를 수행할 경우 현장의 혼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가 안전보건 업무를 맡을 수 있는 제도적·행정적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적인 낭비만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령을 집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노동부와 지방노동관서로 이어지게끔 돼 있는데 법 집행을 하나씩 잘라 지자체에 나눠 준다고 그 업무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관계부처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형식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지자체를 훈련시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지금 상황에서 업무만 이양되면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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