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우병쇠고기 수입저지 집회와 투쟁에서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제정권자인 대한국민은 헌법 제1조 제1항에서 그렇게 선언했다. 이미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헌법을 제정할 당시에 선언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인민’이 지배하는 국가여야 하고, 인민이 아닌 어떠한 개인이나 집단·계급의 지배도 용납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국왕 찰스 1세를 처형해 청교도혁명을 통해 민주공화국을 세웠다. 프랑스에서 민주공화국을 위해 혁명 과정에서 국왕 루이 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했다. 독일에서는 민주공화국을 위해 국왕 빌헬름 2세를 퇴위시켰고 국왕은 네덜란드로 달아났다. 러시아에서도 러시아혁명 과정에서 공화국을 위해 국왕 니콜라스 2세를 처형했다. 단순히 국왕의 처형과 추방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왕 등 권력자에 의해 지탱되던 기존 계급과 세력의 청산이 수반됐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일체의 권력과 재산은 몰수됐다.

우리는 이것을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서 배웠다. 이들 나라의 민주공화국을 모방해 건국한 나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나라에서도 민주공화국을 선언한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대통령 등 다양한 이름의 권력자를 처형하거나 추방했다. 또는 인민들의 분노에 도주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민주공화국을 위해 수많은 나라에서 인민의 이름으로 대통령 등 최고 권력자를 살해하고 처형하며 추방하고 있다. 만약 오늘까지도 인민의 지배에 반하는 권력자가 있다면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내일은 그 나라에서 인민의 이름으로 그 권력자 또는 그 후계자는 살해, 처형되거나 추방될 것이다. 권력자에겐 두렵고 소름끼치겠지만 이것이 민주공화국이다. 러시아혁명 등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만이 유혈이 낭자했던 것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이름으로 수많은 살인행위가 자행됐고 수많은 전쟁이 있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체가 민주공화국의 이름으로 쌓였다. 살인과 전쟁은 민주공화국의 이름으로 정당화됐다. 민주공화국을 저지하는 어떠한 행위도 민주공화국의 나라에서는 용납될 수 없고 적법한 것으로 인정될 수 없다. 이것이 민주공화국이다. 당신이 광우병 쇠고기집회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외쳤다면 당신이 무엇을 말한 것인지 생각해 보라.

위와 같은 민주공화국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의 세계에서 민주공화국은 모든 것이며 이에 반하는 어떠한 권력과 세력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떠한 사상과 이론도 정당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헌법학자가 민주공화국을 말할 때 그것은 권력자에게는 피를 부르는 주문이다. 인민이 민주공화국을 외칠 때 그것은 권력자의 퇴진을 외치는 절규다. 그럼에도 헌법학자의 교과서에서 민주공화국이 지당한 공자님말씀이라서 당신에게는 그저 졸리는 문장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래서 현실의 권력자에게는 별 해당이 없는 과거 역사의 것일 뿐이라고 읽혀진다면 이것은 헌법학자가 민주공화국을 제대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한번 집회에서 누군가의 구호에 따라 그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외친 것이라면 당신은 민주공화국을 제대로 외친 것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을 말하고 외치는 것이 권력자의 피를 부르는 주문과 절규일 때 당신은 진정으로 민주공화국을 알고 말하고 외친 것이다.

2. 필자는 민주공화국의 나라에서 노동을 말한다. 민주공화국에서 노동은 무엇일까. 민주공화국은 시민계급, 즉 부르조아지의 힘만으로 건설된 것이 아니다. 이미 자본주의사회가 성립돼 있는 나라에서는 노동자가 시민계급과 합세해 국왕 등 권력자와 세력을 몰아내고 민주공화국을 세웠다. 1918년 독일혁명, 1917년 러시아혁명, 1848년 프랑스 2월혁명이 그랬다. 아직 자본주의사회가 성립되지 않는 나라에서는 시민계급은 농민을 앞장세워 권력자와 그 세력을 몰아내고 세웠다. 1789년 프랑스에서, 1642년 영국에서 그랬다. 당연히 이때는 민주공화국 헌법에서 노동의 지분은 없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가 성립된 이후 민주공화국을 위한 혁명에서는 노동자의 지분을 헌법에 규정했다. 민주공화국을 위한 혁명에 무장한 노동자계급이 가세했고 그에 따라 헌법은 노동에 관한 규정을 둔 것이다. 만약 오늘 우리의 헌법을 해석하면서 단지 절대군주와 봉건귀족의 지배가 아닌 시민의 지배가 민주공화국이라고 말하고 그래서 ‘자유’이고 ‘민주’인 공화국이어야 한다고 막연히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이 자는 아직 자본주의사회가 성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민주공화국을 위한 혁명과 그 헌법을 말하고 있는 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노동운동이 전개된 이후 민주공화국을 위한 혁명이 없었던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시민혁명의 국가들, 즉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오늘날 민주공화국 헌법은 노동하는 인민이 규정됐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이러한 헌법을 모방해 제정됐다. 따라서 민주공화국을 말하면서 시민계급은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더 이상 주장할 수 없다. 오늘 민주공화국에서 노동의 지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는 나라마다 다르다. 그리고 민주공화국에서 어디까지 노동의 지분을 규정할 것이냐 하는 것도 민주공화국에서 노동운동의 전개에 달려있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의 지분은 국가권력의 조직에서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 다만 기본권 부분에서 근로의 권리와 노동기본권으로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 중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기본권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법률수준에서 그 행사가 금지되고 제한받고 있다.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여전히 파업 등 노동의 단체행동은 형사처벌의 대상이어서 국가로부터의 자유조차 획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온통 경제자유를 위한 선동과 구호가 넘쳐나고 있다. 공무원은 법률에 의해 보장된 단결권조차도 행정기관의 처분에 의해 제한받고 있다. 공무원노조 출범식은 무슨 범죄단체의 집회로 취급됐다. 이에 참가하는 공무원에 대한 징계와 처벌까지 말한다. 대규모의 파업은 거의 언제나 불법이다. 따라서 노조간부는 처벌 등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개정노조법은 교섭창구단일화를 강제하면서 단체교섭은 제한되고 금지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정 이후 4·19 혁명과 5·18 민중항쟁, 6월 민주화운동 등 국가권력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헌법에 보장된 노동의 지분을 위한 투쟁은 이와 같은 수준에서 전개된 적이 없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있었지만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노동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민주공화국은 헌법이 선언함으로써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앞에서 수많은 나라의 역사에서 배웠다. 피로 얼룩진 투쟁을 통해서 민주공화국은 세워진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민주공화국에서 노동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헌법에서 노동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그 지분을 규정하였다고 해도 오직 노동운동에 의해서만 그 기본권과 지분은 확보될 수 있다. 노동의 투쟁, 즉 노동운동에 의해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헌법에서 노동은 살아날 것이다. 혹 민주공화국은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 민주공화국은 부르조아혁명에 의해 시민계급의 지배를 위한 것이고 노동운동은 이를 넘어서야지 민주공화국에서는 진정한 인민의 지배는 확보될 수 없으며 따라서 민주공화국에서 인민의 지배는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민주공화국을 자본의 자유로 파악하는 주장과도 닿아있다. 실제 많은 자본의 이데올로그들은 그와 같이 주장하고 이론을 조직하며 설파하고 있다. 헌법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은 인민에 의한 국가 지배를 말하고 있는 것일 뿐 어떻게 그 내용이 채워질 것인지는 결국 ‘인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1789년 프랑스에서 오늘 프랑스헌법에서 보장된 노동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노동운동에 의해 확보된 것이다. 오늘 민주공화국 헌법이 앞으로 노동운동에 의해 어떻게 진화될지 알 수 없다. 공화국이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고 선언한다면 그 공화국은 누구의 차지가 될 것인가. 노동에 의한 전면적 지배에 실패한 상황에서, 그리고 다시 그와 같은 지배가 확보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조건에서, 나아가 이러한 상황과 조건을 떠나서라도 민주공화국에서 노동의 지분과 권리의 확보는 노동운동이 수행해야 할 임무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방치된 민주공화국 헌법의 노동의 규정에 관하여 새로운 접근을 가지고 해석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것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노동의 지분과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 시작돼야 한다. 이것은 단지 몇 몇 법률가 등에 의해 수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에 의해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에 복무하고자 하는 법률가들도 지금까지 대한민국 헌법에 관한 이론을 전복하고 노동을 위한 해석이론은 모색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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