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은 보통 업무상재해 여부를 판단할 때 ‘인정’과 ‘기각’ 두 가지로 판단한다.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기여도 50%’를 기준으로, 50% 이상이면 업무상재해로 100% 인정하고, 50% 미만이면 아예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법원도 같은 방식으로 판결을 내렸다. 이 때문에 업무가 질병 발생에 영향을 미친 정도가 49%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지 못해 각종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최근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판단하는 방식에 제동을 거는 판결이 나왔다. 대부분 업무상재해가 업무뿐 아니라 외부적 요인이 복합돼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판결이다.

‘기왕증 기여도’ 주목

산소촉매제품 원액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던 위아무개씨는 2007년 4월 업무수행 과정 중 발생한 안과질환으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요양승인을 받았다. 이듬해 우울증으로 추가 요양신청을 했고, 공단은 최초 질병과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승인했다.

위씨는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시력저하·안구통증으로 인한 수면부족과 불안감은 우울증의 발병 또는 악화에 30% 정도 기여했을 것”이라며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처분 중 위법하다고 본 4분의 1 부분만 1심을 취소했다. 업무수행과 질병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 25%는 업무상재해를 인정해 재해보상을 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손해배상 사건에서 검토되고 있는 ‘기왕증 기여도’ 개념에 주목했다.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요구하는 산업재해보상제도에도 이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활용해 불합리하거나 불공평한 부분을 해소할 수 있고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각종 급여는 결국 금전으로 지급하는 것이어서 가분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근로자의 질병이 일부는 업무에 기인하고, 나머지는 기왕증에 기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그 급여 신청을 불승인한 처분에 대해서는 업무에 기인한 부분에 한해 취소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부분 인정 최초, 대법 판결 주목

이를 근거로 법원은 원고 위아무개씨의 업무상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위씨의 경우 업무상질병의 치료 과정 중 우측 시신경 장애 발생·시력저하·안구통증, 이로 인한 수면부족과 불안감·절망감, 과로·스트레스 등이 우울증 발병 혹은 악화에 30% 정도 기여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원고의 질병이 기존 질환이나 개인적인 취약성에 기인한 것이지만 일부는 이 사건 최초 상병 및 치료 과정이 원인이 돼 발생했다고 본 것이다.
행정소송의 경우 지금까지 한 개의 행정처분에 따른 위·적법 여부를 판단해, 전부 취소 아니면 전부 인용의 판결이 이뤄진 것이 관행이다. 이번 판결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향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관련판례]
서울고법 2010년 2월4일 선고, 2009누18891 추가상병불승인처분취소
서울행법 2009년 6월9일 선고, 2008구단1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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